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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
 <아라리>
ⓒ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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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시인(31)의 두 번째 시집 <아라리>(랜덤하우스코리아 刊)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목숨>(천년의시작, 2005)에서 기이한 병적 상상력과 새로운 서정의 문법으로 시단의 주목을 끌었던 박진성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첫 시집 <목숨>에서 보여주었던 기이한 병적 상상력을 확대된 형태로 보여준다. 이러한 병적 상상력은 해설을 맡은 송재학 시인의 말을 빌리면 "한국 문학의 어떤 외로운 외연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진성의 시들은 여전히 뜨겁다. 그 격렬함은 그의 병의 체험에서 온다.

나, 동백처럼 마음 둑둑 부러뜨리며
응급실 침대에 눕고야 보았네
선운사 도솔암 흘려읽은 글자들
아니온 듯 다녀가십시오
눈동자에 번져서 동백처럼 붉어지던
꽃잎처럼 얇아서 희미하게 미끄러지던 
누가 걸어놓았을까 아니 온 듯
다녀가라는 말, 응급실 침대에서 꽃잎 흐르듯
몸 흐느적거리며 주사도 마다하고 약도 밀어내며
병원 밖으로 걸어나오네
- '동백병원' 부분.

위의 시에서 보이듯 박진성은 이번 시집 <아라리>에서도 병체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병은 '불안이나 발작 자살 충동'과 같은 정신의 병이다. 송재학 시인이 박진성의 시를 "한국 문학의 어떤 외로운 외연의 확장"이라고 명명할 때 이러한 '확장'은 바로 박진성의 시들이 한국사회에서 금기와도 같았던 정신병리학적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두 번째 시집에서 보이는 병적 상상력은 첫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자폐와 파괴, 매몰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병이라는 매개를 통해 시인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화해와 상생의 세계를 모색하는 듯 보이는데 이러한 의식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라리 시편들이다. 아라리는 음악이고 이러한 음악이 시인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다.  

모하메드, 사정을 듣자하니 한 달 치 월급을 카지노에서 다아
떼였다는, 모하메드는 소주에 얼큰하게 취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를 부르는 거였습니다
어두운 포장마차 구석진 자리 모하메드 물먹은 눈이
초승달처럼 포장마차 바깥으로 빛을 뿜어내는 거였습니다
일해도 일해도 실론 섬은 인도양 스리랑카에 떠 있는 건지
모하메드 어눌한 아라리가 내 가슴을 스리랑 스리랑 치는 거였습니다
- '모하메드 이야기' 부분.

시인은 이제 내면의 오랜 천착에서 조금은 비껴서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할, 시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시 속에서 우려내고 있다. 시집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늙은 여자들', '이주노동자', '가난한 농부', '정신지체장애자'와 같이 주변부의 삶들이다. 박진성의 시들은 이러한 버려진 삶들을 곡진한 가락, 즉 아라리의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박진성 시인
 박진성 시인
ⓒ 랜덤하우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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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시인은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극복한 듯 보인다. 그래서 시인에게 시는, "여전히 치유이고 위로이고 이상한 종교"('시인의 말' 중에서)라고 할 수 있겠다.

45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한국기준) 시대라고 한다. 이유 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라고 한다. 박진성의 첫 시집 <목숨>에서 <아라리>까지의 여정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러한 폭압적인 시대 속에서 하나의 아픈 영혼이 시대의 아픔을 어떠한 방식으로 어루만지는지 그 간절한 내면의 울림이 스스로의 가락과 깊이로 시대를 발화(發火/發話)하는 한 방식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한다.

부디 시인도 시대도 덜 아플 수 있기를…. 서로 손 잡을 수 있기를….


태그:#박진성 , #아라리, #목숨, #시집,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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