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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의 모습
 운조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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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구례로 향했다. 여름 날씨마냥 햇볕은 뜨겁다. 남원은 춘향제로 흥청거리지만 우리는 곧바로 구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북적거림을 벗어나 한가로움을 맛
보기 위해서였다.

구례에 들어섰다. 노란 산수유 꽃으로 수놓아졌던 길가엔 꽃의 흔적은 사라지고 녹음을 드러낸 이파리만 길손을 맞이한다. 구례에서 연곡사, 쌍계사, 하동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토지면 들녘이 보인다. 들판 여기저기에 고추모종과 양파가 심어져있다. 들녘 곳곳에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농부들이 눈에 띈다.

지금 농촌은 농사준비에 바쁘다. 이 바쁜 기간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잠시뿐이다. 하동 방면으로 길을 잡다 보면 운조루라는 글귀가 보인다. 이를 따라 가면 운조루가 나온다.

운조루 앞의 연못.
 운조루 앞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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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가 있는 오미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구불구불한 고샅길은 잘 정돈되어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운조루 앞에 한 할아버지가 구기자와 땅콩 쥐포와 약초 몇 가지를 놓고 팔고 있다. 동네분이다.

차에서 내리자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에 미나리를 가득 담은 것을 가지고 다가오더니 옆에 있는 분에게 사라한다. 그 많은 것이 삼천 원이라 한다. 직접 농사지은 것인데 커다란 비닐 봉지 두 개가 가득 담긴다.

운조루에 도착하면 길손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연못이다. 연못엔 수련 잎들이 구름 속에 비치듯 떠있다. 대문 앞에 이 집의 주인인 곽영숙(35)씨가 연못의 수련을 캐어 팔고 있다. 그녀는 큰 집(중요민속 자료8호)을 지키고 보살피며 가이드 역할까지 하지만 전형적인 촌부(村婦)의 모습이다.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 운조루(雲鳥樓)

운조루를 찾으면 가장 먼저 길손을 맞이하는 호랑이 뼈. 대문 위에 걸려 있다.
 운조루를 찾으면 가장 먼저 길손을 맞이하는 호랑이 뼈. 대문 위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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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안채에 들어가면 운조루란 현판을 볼 수 있다. 230여 년 세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집을 지켜왔을 현판 운조루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희미해져 있지만 그 고풍스런 느낌만은 그대로 전해짐을 느낄 수 있다.

운조루란 택호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혹은 ‘구름 위로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의미로 고택은 지리산 산자락 아래 한 마리 새처럼 노닐듯 앉아있다. 그런데 이 운조루의 운(雲)과 조(鳥)는 도연명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고 /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라는 시구에서 따왔다고 전해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집 밖에서 바라보면 지리산에 구름이 걸려 있고, 잠시 귀를 기울이면 산새들이 조잘조잘 노래하는 집임을 금세 알 수 있는 걸.

중문.
 중문.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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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서
230년을 터 잡고
나눔의 삶이 무언가 보여주었던
운조루.

옛 주인은 새가 되어 구름 속을 노닐고
현 주인은 옛집을 지키며
옛 주인의 마음을 보듬고 있다

옛 영화는 어디 갔을까? 밖에서 바라본 운조루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이라면 안에서 들러본 운조루의 고택은 쓸쓸함이었다. 드문드문 길손들을 맞이하는 며느리 곽영숙씨와 이야길 나누며 그 쓸쓸함을 느낀 건 내 마음 때문인지 모르지만 옛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운조루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삼대가 살아가는 집, 운조루

밭에서 막 일하고 온 시어머니와 며느리
 밭에서 막 일하고 온 시어머니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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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으세요?”

집을 구경하기 전 마루에 앉아 곽영숙씨와 이야길 나누며 대뜸 묻는 말이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그녀는 “힘들긴 하죠” 한다. 그녀의 꾸밈없는 대답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진다.

시골생활의 고달픔이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지금은 시어머니(이길순·73) 한 분만 모시고 살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시할머니(작년에 작고, 96세)까지 모시고 관광객 안내하랴 농사짓는데 도움 주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그녀는 밝게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질문엔 귀찮을 듯싶은데도 미소로 살근살근 이야기해준다.

이 집엔 현재 시어머니와 시아주버니(큰 아들), 그리고 막내아들인 유정수·곽영수씨 부부와 세 자녀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작년에 시할머니가 작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대가 한 집에서 산 것이다. 남편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큰 집을 관리하고 어른들을 모시는 일은 며느리 곽영수씨의 몫이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다가 집 지키러간다는 남편 따라 온 운조루. 처음에 적응하기가 낯설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웬만큼 몸에 배었다고 배시시 웃는 모습이 산나물처럼 소박하다.

마루에 나란히 앉아 이러저런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신다. 시어머니란다. 인사를 하고 뭐하고 오시느냐 물으니 고추모종 하고 온단다. 있는 땅이라 놀릴 수도 없고 해서 농사를 짓지만 힘이 벅찬 듯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안채의 모습. '운조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의 모습. '운조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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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내주시지요” 했더니 “여그가 시방 노인들밖에 없어요. 다 할머니들뿐인데 누가 농사 지어” 한다. 어디서나 농촌의 현실은 똑같았다. 젊은 사람이 없는 농촌은 운조루가 생기를 잃어가듯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슬그머니 말한다.

“남편도 저도 농사일 힘드니까 고추모종 조금만 하시라 해도 저리 하세요. 땅 그냥 놀리면 죄가 된다면서요. 편치 않지만 말려도 안 돼요. 시골 양반들 다 그렇잖아요.”

시어머니에 대한 염려가 잔뜩 묻어나는 며느리의 말에 팔순의 나이에도 농사를 짓고 계시는 시골의 내 부모님 얼굴이 겹쳐지는 건 왜일까.

나눔과 배품의 정신이 깃든 쌀독,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가 적혀있는 쌀뒤주. 베품과 나눔의 삶이 담겨있다.
 타인능해가 적혀있는 쌀뒤주. 베품과 나눔의 삶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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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가 유명한 것은 양반가의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집주인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어서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곳간채에 통나무 속을 비워 만든 쌀뒤주가 놓여있다. 뒤주 하단부에 가로 5㎝ 세로 10㎝ 정도의 직사각형에 ‘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다른 사람도 능히 마개를 열어 쌀을 가져가라는 뜻이다.

본래 쌀뒤주는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 놓아두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운조루 사람들은 안채에서 떨어진 곳에, 그것도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에 보이는 곳에 뒤주를 놓고 누구나 쌀을 빼가도록 했다. 그리고 쌀 두 가마 정도 들어가는 뒤주엔 쌀이 항상 채워져 있었다 한다. 쌀을 가지러 왔다가 없으면 낭패를 당할까 하는 염려에서다. 타인을 위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자들의 욕심을 꼬집는 말로 99석 가진 자가 1석 가진 자의 재물을 탐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운조루의 주인 유이주는 200여 년 전에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그 정신을 후손들에게 지키도록 유훈을 남겼다. 그리고 구 후손들은 그 정신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실천에 옮겼다.

이것이 동학혁명과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운조루가 온전히 남아있는 이유이다. 나만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신이 숱한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견디게 한 비밀인 것이다.

뒤주를 침묵으로 보고 있으려니 지난 세월 동안 끼니를 잊지 못한 인근의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어린 자식들과 오순도순 밥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시공간이 정지한 듯한 한옥, 운조루

돌거북이 나왔다는 부엌.
 돌거북이 나왔다는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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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둘러보며 느끼는 건 행랑채며 사당이며, 사랑채와 안채, 가빈터, 부엌 등이 200여 년 전의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엌에 서서 나란히 걸려있는 검은 가마솥 세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옛 사람과 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밥 짓는 소리가 되어 들려오는 듯했다.

시공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운조루. 지금 60여 칸만이 남아있지만 본래 99칸으로 지어졌다는 집인 운조루. 옛 영화는 세월 속에 묻혀버린 듯 쇠락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의 베품과 나눔의 정신만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이 되어 전해지리라.



태그:#구례 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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