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본격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 진행하는 '결혼식'.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자 가슴 벅찬 관문이다. 그런데 결혼식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좋은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일단 결혼식장을 구해야 하고, 신부 드레스와 신랑 예복, 사진 촬영비, 폐백과 예물교환, 그리고 양가 집안의 혼수에다 식사비용까지. 아무리 알뜰하게 치른다고 해도 수백만원은 기본이며 호텔 등에서 조금 호화롭게 하려고 하면, 수 천만원대의 비용이 우습게 나가버린다.

 

일부 악덕업체에서는 각종 화환과 꽃들을 재활용하면서도 제 값을 다 챙기거나, 예식장을 임대하는 조건에 각종 옵션을 끼워팔아 이중부담을 떠 안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선 '신부드레스' 관련 보도를 했다. 업체에서 '외국에서 제작된 고급드레스'라며 비싼 값에 대여해 준 것들이, 알고보니 현지보다 몇 배 더 비싼 값에 대여해주고 있었던 것.

 

결혼식을 올리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거품비용들은 신랑신부나 그 가족들의 기분을 망치기도 한다.

 

40년 동안 '공짜' 결혼식 할 수 있게 해준 예식장 

 

식장대여료, 폐백, 신부드레스, 신랑예복, 부케 등 이 모든 비용이 '공짜'인 예식장이 있다. 그것도 무려 40년 동안. 경남 마산에서는 이미 유명한 '신신예식장'(대표 백낙삼)이 그 주인공이다. 예식장 대표 백낙삼(78)씨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의 장인이기도 하다. 

 

1932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동아대와 중앙대 교육학을 전공한 백 대표는 사진을 찍는데 매력을 느껴 사진관을 차렸다. 그 후 1962년 결혼을 했는데 당시 가난하던 집안형편 때문에 결혼을 하고도 부인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 부터 돈을 벌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길거리 사진가로 나선다. 그리고 결혼 후 4년이 지나서야 작은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때 경험으로 자신처럼 돈이 없어 결혼을 할 수 없거나,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료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1967년 6월1일, 드디어 '신신예식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공짜' 결혼식장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41년 동안 무려 1만3천여쌍이 이곳에서 결혼을 했다. 신청자가 많을 때는 하루에 18쌍이 식을 올리기도 했고, 지금은 많이 줄어 주말 하루 평균 4~5쌍 정도가 식을 올리고 있다고.

 

게다가 전국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도 꽤 많이 해 줬다고 한다. 특히 노혼부부들이 많다는데, 가난해서 결혼식을 못 치르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고. 부산에 사는 70세 신랑신부가 결혼식을 치른 지, 6개월 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고 했다.

 

"돈 없어서 결혼식을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꺼?"

 

이곳 '신신예식장'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오는 예비부부들은 '설마'하는 의심을 하고 온단다. 설마 모든 비용이 공짜일까? 물론 아니다. 사진값만은 부부가 부담해야 한다. 그것도 모든 사진과 앨범제작까지 포함해서 30만원 정도면 된다. 그 밖에 예식실 대여비, 신부 드레스 대여비, 신랑 턱시도, 주례비, 화환, 장갑 등 모든 소품들은 진짜로 '공짜'다.

 

물론 주례도 백 대표가 직접 해주고, 부부가 원할 때는 다른 주례를 모시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눈치를 받는 일도 없다. 그리고 공짜라고 해서 절대로 값싼 드레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에 전시된 드레스는 최고급제품으로 백 대표가 미술을 전공한 딸과 함께 직접 서울에서 고급드레스숍을 뒤져 수 백만원씩을 주고 구입해 온 것들이란다. 디자인과 재질에서도 최신 유행하는 것들로만 갖춰놓고 있다고 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더. 그런데 공짜라고 싸구려 드레스를 입으모 신부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십니꺼. 그래서 예식실 꾸미는것, 드레스, 턱시도, 사진앨범 등은 최고급 품질의 것들만 사용합니더." 

 

이런 일을 하는 데 대한 원칙을 묻자 그는 "결혼식 한 번 치르고 나서 비용 때문에 부부가 마음이 상하모 되겠습니꺼"라며 "요새 너무 사치결혼이 많고, 또 업자들이 장삿속으로 결혼사업을 하다보니 정작 두 사람의 행복은 뒷전이 돼 버렸습니더"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안 되겠습니꺼"라며 "그게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원칙입니더"라고 말했다.

 

"결혼식은 경건한 약속의 시간"

 

백 대표의 자녀(1남 3녀)들도 모두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은 자식들을 비롯해 손주들까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고 있단다. 사위인 박노자 교수 또한 장인어른의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백 대표가 자녀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가정'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남겨준 글이나 교훈들이 서재를 가득 메우고 있을 정도. 백 대표는 자녀들에게 편지쓰기 공모전 같은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출전해 많은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백 대표는 요즘의 호화결혼식에 대해서, "(결혼식 비용이) 너무 비쌉니더, 그리 비싸야 할 이유도 없는데 와 그리 비싼지 모르겠십니더"라며 "양가 집안에서 마음만 먹으모 얼마든지 저렴하고 절약하면서 결혼 할 수 있는데"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예식장은 결혼식 마치고 욕을 듣습니더, 가족들 생각보다 추가 비용이 많이 나왔다는 거 때문이지요"라며 "그러나 저는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욕을 들은적이 없습니더, 오히려 1만 3천 번의 감사인사나 전화, 또는 편지를 받았습니더. 이게 얼마나 보람있는 일입니꺼"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손해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진값을 받는데 뭐가 손햅니꺼"라며 "옛날에는 하루에 10쌍 이상이 결혼을 하니까 사진값도 많았는데, 지금은 많지는 않아도 늙은 부부가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더"라고 말했다.

 

인생 말미에 찾아온 암 선고... 이 사업 죽을 때까지 할 것

 

백 대표는 현재 결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다. 서울대학병원에서 두 차례의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식이요법과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많이 호전됐다는 그는 예식이 없는 평일에는 부인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시간을 보낸다.

 

"병과 싸우는 것도 마음먹기 달렸습니더"라는 그는 "저는 한 120살까지 살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살고, 남은 생애를 이 일을 계속할 작정입니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유서를 모두 작성해 놓았다면서 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한 쌍이라도 더 공짜 결혼식을 올려줄 각오가 돼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친환경 결혼> 응모글


태그:#무료예식장, #호화결혼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키워드 부산, 영화, 문화, 종교 중심의 글을 쓰는 <뉴스M> 기자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