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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합창단의 공연이라, 그것도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만든 합창단이라면 일단 궁금해진다. 전문음악인들의 합창단이 아니라 해도 합창이라는 것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묘한 두근거림과 포근함, 설렘 속에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16일 건국대 새천년홀 대공연장, 불이 꺼지고 단원들이 등장했다. 무대 위에 선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니 여자 22명, 남자 13명, 그리고 지휘자와 피아노 반주자 이렇게 서른 일곱 명의 대식구였다.

 

가곡의 부드럽고 고상한 풍으로 노래가 시작되었다. 신경림 시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시인들이 그토록 애창하여 불렀다는 <향수>가 흘러나오자 마음이 벌써 고향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엄마를 따라 공연장을 찾은 꼬마들이 객석에 상당히 많았는데, 이 아이들은 과연 정지용의 향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이야기가 지즐대고 실개천이 흐르는’ 그런 아름답고 기름진 고향땅의 풍광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가.

 

밀려 들어오는 수입쌀 때문에 농촌에서 쌀농사 짓는 집도 점점 줄어들고, 우리 땅에서 우리의 생명을 키워온 양식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노래를 통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고 싶다는 합창단의 정신을 생각할 때, 정지용의 <향수>는 생명의 땅을 생각하게 하는 레퍼토리였다.

 

단장 정은숙씨가 얼마 전까지 국립오페라 단장이었기 때문인지, 이어진 합창단의 오페라 곡들은 몹시 경쾌하면서도 수준이 높았다. 시민합창단이라고 절대 무시할 게 못되는구나. 그저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노래 수준도 수준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장과 지휘자도 든든하고, 무엇보다 단원들 면면을 살펴보면 금세 수긍이 갔다.
 
지난해 오디션을 통과해 단원이 된 이들 중에는 대학시절 노래패 활동을 한 사람, 40년 가까이 교회 성가대활동을 한 사람, 민요를 공부한 사람, 요들클럽 회원에 성악전공자까지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오래 전부터 노래를 해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독특한 점은 주부, 회사원, 교수 등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가 저마다 다른 이들이 모여 평등하게 조화를 이루어가며 하모니를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체가 이미 ‘평화의 나무’라는 이름을 어느 정도 성취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의 합창문화에 새 바람 전해주기를

 

선곡은 몇 가지 갈래로 이뤄져 있었다. 평화, 평등, 생명, 겨레, 통일. 그리하여 <내 맘의 강물>과 <향수>를 거쳐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흑인영가로 숨을 고른 후, 우리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고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살다보면>, <다시 떠나는 날>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겨레와 민족, 통일된 하나의 조국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들로 구성되었다. 먼저 북쪽 가극 ‘춘향전’에서 <사랑가>를 부르고 남쪽 오페라 ‘춘향전’에서 <농부가>를 불렀다. 피날레는 김민기 곡 <철망 앞에서>였다.

 

“전에는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 오늘의 노래는 그런 곡들이 많았다. 생명과 평화와 정의의 세상 그리고 겨레와 민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산소처럼 늘 마음으로 호흡하였던 파릇파릇한 청춘의 시절을 지나 생활의 염려에 허덕이며 사는 우리에게 다시금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노래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그렇게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고, 잎과 꽃을 틔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첫 정기공연이다.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순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운영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빈소년합창단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의 자부심이 되었듯,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민합창단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날이 갈수록 퇴폐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문화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새로운 대안 문화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시민 음악인들. 이들은 앞으로 정기연주회, 남북교류행사 등의 무대를 통해 평화와 생명의 문화운동을 펼치고, 평화· 상생을 테마로 노래창작, 음반제작을 하는 등 장기적으로 '평화문화프로덕션' 형태로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이다. 첫걸음이다. 이들은 토요일 오후 이틀째 공연을 마친 뒤, 평화의 나무가 울창해져 숲을 이루는 그날을 향해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날 것이다. 민족음악의 감성을 계승하면서도 팝, 민요, 오페라, 클래식, 민중음악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그 열정과 순수한 음악적 땀방울로 우리 문화에 새 바람을 불고 오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평화의 나무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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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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