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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창조한국당 연합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하신 후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저는 40대 후반,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제게 주어진 표는 단 한 번도 행사를 포기한 적이 없는 모범적(?)인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지난 4·9총선 때는 지역구가 달라서 한 표를 더해 드리지는 못했지만 전국구에는 한 표를 더해준 지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하는 사진을 보면서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 대표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정치 혹은 권력의 속성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가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까지 올 정도였다면 차라리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시는 것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CEO로서의 문국현, 그 이미지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4·9 총선에서 '경부대운하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나라당의 이재오 의원을 제치고 당선이 되셨을 때도 창조한국당의 3석(현재는 2석)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조금 더 힘이 실렸더라면 하는 소망이 있었지만 정치초년병인 문 대표에게 보수의 벽을 넘어서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니 박수를 보냈습니다.

 

혹시 당선이 되지 않으면 아예 정치권에서 은퇴를 하실 것 같아, 저런 분이 한 분은 정치계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선진당과 연합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듣고 안도의 한숨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두 당의 정체성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하셨지요?

 

국어사전에 '정체(正體)'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된 본디의 형체, 본심의 모양'. 그러니 정체성이 흔들리면 그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체불명이 되는 것이지요. 대운하, 쇠고기,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생각이 같다는 것이 곧 두 당의 정체성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 극과 극이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 나라에 보수와 진보가 소통하며 발전해 온 역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진보와 보수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이런 결단을 하셨다면 박수를 쳐드리고 싶지만 단순히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목적이었다면 제한적 정책연대라고 할지라도 저는 야합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국민과 연대할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표심으로 나타난 결과, 국민들과 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신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선진당과의 제한적 정책연대, 그것은 창조한국당을 정체불명의 당으로 만들 것이며 문 대표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질 않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연합교섭단체에서 2석이 모자라던 자유선진당일 것입니다. 당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이나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다르지 않습니다. 창조한국당과 선진당, 두 당의 정체성은 '그리 다르지 않다'가 아니라 '많이 달라야 한다'가 맞는 말일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다른 당과의 차별성을 위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을 위해서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따라가다보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매한 국민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을 정치지도자로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언제까지 우매한 선택을 하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국민들에 대한 믿음, 그것이 없어진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국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젠 당이 보이고, 당대당 통합이 보이면서 국민들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은 아닌지요?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무서워하십시오

 

한때 정치전선에서 국민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져갔습니까? 물론 몇 년의 잠수(?) 끝에 다시 재기한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대부분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스스로 자멸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대부분이 어떤 사안에 대해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이거나 정치에 입문한 이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 이들입니다.

 

물론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고 해서 그가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술수에 능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그러나 이번 사안은 문 대표를 국민들의 시야에서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제한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선진당과의 정책연대를 통해서 '그 놈이 그 놈인' 현실이 되는 것이지요.

 

원내교섭단체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과 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야합을 해서 원내교섭단체에 들어간들 무엇을 하겠습니까? 결국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연합교섭단체가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창조한국당의 생각과 선진당의 생각이 엇갈릴 때 창조한국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너무 정치에 대해 몰라 무식한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분에 대한 요구가 있을진데 정치권에는 이것이 없을까요? 결국 대운하, 쇠고기, 중소기업 육성에 대해서 생각이 달라졌을 때 창조한국당은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조변석개하는 보수신문이나 보수단체의 모습을 보면서도 왜 이걸 보지 못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를 계속 하시려는 의지가 있으시다면 제발, 원내교섭단체 구성 같은 것에 목을 매지 말고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국민들의 시야에 늘 머물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용만 당하다 퇴장을 당하는 불행한 정치인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소망합니다. 문국현, 참 좋은 기업가요 정치인이었다고 이 역사에 기록되기를.


태그:#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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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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