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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땅에 사는 모든 어린이와 십대들에게 5월은 아마도 가장 크게 숨쉴 수 있는 시기일 게다. 가정의 달이라고 불리는 5월에는 그 누구라도 어린이와 십대들에게 평소보다 짐짓 너그러워지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너그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5월이 지나가고 나면, 이 땅의 어린아이들과 십대들은 분명 어른보다 더 바쁜 '그들만의 리그'에 다시 뛰어들어야 할 게다. 한국에서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은 곧 더 많은 점수를 얻고 더 높은 등수를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들이 한국 부모들이다. 그들에게 '자녀'란 자녀가 아니라 '상전'이다. 개인주의 의식이 커져가는 요즘에도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게만큼은 대체로 한 수 접힌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개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입시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전' 대우를 받는 우리 아이들은 '상전'답게 행복한가?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만 따져봐도, 우리 아이들은 '상전'답지 않게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생각할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인형처럼, 기계보다 더 기계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아이들이다. 이제는 초등학생들마저 학교보다 학원을 더 사랑하게(?) 만든 '입시 공화국'이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은 멀고 먼 이야기일까?

 

"한국은 세계 최고의 '입시 공화국'이다. 개인도 가족도, 아니 사회 전체가 대학 입시에 목을 맨다. 그리하여 고등학교까지의 학업 성취도를 보면 단연 세계 최상위권이다. (…)

 

한국인들은 입시의, 입시에 의한, 입시를 위한 교육이 국제 경쟁력 제고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한국 대학들의 국제 경쟁력은 바닥을 헤매는가? 왜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인재는 없는 것인가? 이 정도의 교육열이라면 한국인들이 그렇게 애타게 바라 마지않는 노벨상을 수상했어도 벌써 수십 명은 수상했어야 하지 않는가?" (<입시 공화국의 종말>, 5)

 

지은이는 한국에서 명문대 중 명문대에 속하는 연세대 출신이다. 혹시 서울대 출신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한 이가 있는가? 아마 지은이가 먼저 혀를 찰 게다. 독일 유학을 간 그는 한국에서라면 당연시했을 대학 서열이 그곳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점수, 등수처럼 한국 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그곳에선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또 다른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독일에서 그는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 대신 김덕영이라는 '진짜' 이름표를 되찾게 된다.

 

지은이는 한국과 다른 독일 교육 현장을 체험하던 중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어는 날 그는 독일 친구들에게 한국인들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이 독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독일 친구들이 의아해하더란다. 그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질문이었다. 어떻게 대학들 간에 서열을 매길 수 있는가, 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지은이에게 던진 것이다.

 

지은이는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서열화되는 한국 교육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름대로 한국 명문대를 나왔다는 자부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치화하고 서열화하기 위해서는 시험이란 시험은 모조리 '주어진 정답을 고르는' 꼴이 되고 만다. 사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 익숙한 한국식 시험이 지닌 가장 큰 한계이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교육 체계는 결국 한국 최대 자산이라는 인적 자원마저 등수 싸움에 내던지는 꼴을 만들어낸다.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가고 오로지 '주어진 정답을 고르는' 기계만이 있을 뿐이다. 지은이가 설레설레 손사레 치듯, 한국 교육은 늘 정답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세상 모든 것에 항상 명쾌한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 책 제목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입시 공화국'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첫 번째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입시 공화국'에 머물기를 고집한다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희망 없는 곳이 될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놓고 지은이는 한국 교육과 입시 문화를 따지고 든다. 자신이 왜 한국 교육을 질타하고 한 마디 훈수를 두려하는지를 이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있다. 1장에서는 잘못된 '인재' 개념을 지닌 한국 교육의 왜곡된 면을 파헤쳤고, 2장에서는 '명문고'에 얽힌 씁쓸한 교육 현실을 다루고 있다. 3장에서는 대학에 종속된 초·중·고교 교육 현실을 지적했고, 4장에서는 세계 속 명문대학이 지녀야 할 진정한 교육가치를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1장에서 다룬 문제점을 되짚어보면서 진정한 '인재'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진정한 '인재'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툭하면 자율성을 외쳐댄다. 그러나 그들이 입시를 통해 고등학교의 자율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대학의 식민지가 된 지 오래이다. 고등학교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이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한다." (같은 책, 291)

 

지은이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교육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입시' 중심 교육체계에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입시에 맞추어진 한국 교육 현실에서 가장 큰 수혜를 얻는 곳은 다름아닌 대학이다. 한국 입시문화의 정점이자 종점(!)이 바로 대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는 각 단계마다 지닌 독특함은 잃어버리고 오로지 대학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각 단계을 거쳐서 상급 단위로 올라가야하는 건 문제될 리 없다. 문제는, 초·중·고등학교가 그저 대학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 정도로 대우받고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대학이 결고 인생의 모든 것도 아니요 인생 '최종 목적지'는 더더욱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가 대학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닌 말일까? 달리 말해, 한국의 초·중·고등학교는 왜 대학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는가?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한국의 초·중·고등학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대학 입시, 그것도 이른바 명문대 인기 학과에 의해서 그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고 그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중·고등학교는 대학의 하부 체계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 136~137)

 

'인재'를 평가하는 기준도 점수 혹은 등수인 사회, '명문학교'를 평가하는 기준도 점수 혹은 등수인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인재'란 결코 사람 냄새를 풍기기 어렵다. 시키는 대로 잘 돌아가는 기계 냄새라면 모를까. 한국에서 인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같은 조건에서 1등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결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이유있는 '왕따'가 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금세 눈에 띄니까, 불손한 행동이니까 말이다.

 

줄세우기 교육의 구호라 할 수 있는 엘리트주의는 비뚤어진 한국교육을 상징하는 말과 같다. 매년 수능시험일을 전후로 벌어지는 대학입시 과정은 하나의 전쟁과도 같으며, 그 속에서는 한 아이 한 아이마다 20년 인생을 같은 기준과 같은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무한 경쟁을 해오던 다양한 사람들이 성인도 채 되기 전에 파편화되어 다시 일렬종대로 서열화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나라 대학이 비뚤어진 한국교육 현실을 상징하게 된 건은 한국사회가 다양한 인재와 생각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잊어버렸거나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가 모든 것을 일렬로 늘어뜨려 손쉽게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입시체계의 최종지점인 대학은 자의반 타의반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지시하고 통제하는 권력기구가 되버린 게다.

 

자기 스스로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준비된 인재를 거저 얻는 방식에 익숙한 한국 대학들은 지금 심심찮게 타도대상이 되고 있다. 그 타도대상 정점에 선 대학은, 참 씁쓸하게도, 한국 '명문대 중 명문대'인 서울대이다.  

 

지은이는 한국교육이 만들어내는 인재들을 허약한 엘리트라고 부른다. 자기들끼리 하는 경쟁에서 일등일 뿐, 한국교육이 엘리트주의만큼이나 신봉하는 '글로벌 인재' 경쟁에서는 힘 못 쓰는 이상한 엘리트가 바로 한국 엘리트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조건, 이미 주어진 정답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공간을 찾지 못하는 한국 엘리트주의에 지은이는 계속 경고장을 꺼내든다. 그리고, 이제 지은이는 말한다. 정답 찾기에 매몰된 허약한 엘리트가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 속에서 표현해낼 줄 아는 진정한 인재를 만들어내자고.

 

"사유의 자율성, 이것이야말로 성숙하고 자유로운 근대적 인간의 정신세계의 기본적인 특징이자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문화적 근대화의 첫걸음이다. 한국 사회도 이제 이 첫걸음을 떼야 한다. 정답을 찾는 시험을 폐기함으로써!" (같은 책, 287)

덧붙이는 글 | <입시 공화국의 종말> 김덕영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07.


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음, 인물과사상사(2007)


태그:#입시 공화국의 종말, #인재, #교육,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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