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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꽃을 닮는 건 지, 꽃이 나를 닮는 건 지, 꽃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서로를 닮아가나 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꽃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슬픔에 잠길 땐 처량하게, 기쁜 일이 그득할 때에는 환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어디 꽃뿐이랴, 새소리 물소리도 매한가지다. 듣는 처지에 따라선 울음소리로, 때로는 감미로운 노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연분홍 작약 촛불
 연분홍 작약 촛불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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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엔 지금도 웬만한 농사꾼이면 소 한두 마리는 다 키우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농부들에겐 요즘 듣는 소 울음소리는 슬프기 그지없다. 처량하고 딱해서 차마 들어줄 수가 없을 정도다. 시골서 소를 잘만 키워놓으면 소장수가 찾아와 소를 팔라 치근덕대며 어수룩한 농부를 꼬드기게 마련이지만, 소장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사료 값은 잠만 자고나면 천정부지로 치솟고 소 값은 인정사정없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광우병 타령에 이래저래 농사꾼들마저 죽을 판이다. 

진분홍 작약 촛불
 진분홍 작약 촛불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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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이 열리고 있는 요즘, 산골짝 초록 속에 많은 꽃들이 피고는 진다. 세상이 하수상해 그런지 이상하게도 신록 속 피어나는 꽃들이 자꾸만 촛불을 닮아간다. 꽃이 촛불을 닮아가는 건 지, 내 정신이 허해 촛불에 홀려버린 건지 하여간 걷잡을 수가 없다.

다래꽃 촛불
 다래꽃 촛불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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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신령이 지폈나 보다. 산과 들을 헤매다 보니 꽃들이 여기서 반짝, 저기서 반짝, ‘나 여기 촛불 댕겼어요.’ 손짓을 하고 있다. 목 백합, 작약, 다래, 천남성 꽃들이 촛불을 그대로 닮았다.

야생화 천남성 촛불
 야생화 천남성 촛불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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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백합꽃은 영락없이 나무에 촛불을 달아놓은 것 같다. 이 백합은 춘천 모 여학교에 교화이며 교목이다. 그 여학교에 십여 년을 근무하며 수업을 하다 힘 들곤 할 땐 늘 이 꽃과 함께 교감을 나눴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목 백합은 어린 소녀들의 순결을 지켜낸, 배추고갱 속 같은 꽃이며 늠름한 나무이다. 아이들의 마음이 뒤흔들리거나 번거롭고 괴로워 보이면 목 백합 아래 앉아 긴긴 대화를 나누며 이 나무처럼 순수하게 살자고 다짐을 하곤 했다.

촛불을 그대로 쏙 빼 닮은 목백합
 촛불을 그대로 쏙 빼 닮은 목백합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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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귀농할 때 제일 먼저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가 목 백합이다. 십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교목(喬木)이 다 되었다. 교목은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는 큰 나무의 이름이다. 줄기가 쭉쭉 뻗어 의젓하고 키가 대략 8m를 넘는 나무를 교목이라 한다.

공교롭게도 이 목 백합이 자신을 불살라 어지러운 세상을 밝히려는 듯 촛불을 켜고 있다. 경건하고 엄숙한 순간이다. 나무야 무엇을 알까마는, 이 장엄한 순간 앞에 오늘도 촛불집회를 열며 물 대포 세세를 맞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들과 올곧은 이들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민다.

늠름한 교목을 보며 이육사 시인이 갑자기 떠오름은 어인 일일까.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湖水)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이육사 <교목> 전문

깜박이고 있는 복백합 촛불
 깜박이고 있는 복백합 촛불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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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이육사의 교목은 우뚝 솟은 지사적 정신이며 민족의 염원이었을 터. 그 어떤 바람에도 정신적 밑바닥을 흔들 수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대의 검은 그림자들은 차라리 호수 속에 거꾸러져 죽고 싶도록 답답하고 우울하다.

내 비록 산골짝 사는 하잘것없는 촌부이지만, 오늘도 촛불을 들고 자신들을 불태우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에게 여기 백합꽃 촛불 한 송일 경건한 마음으로 바친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 코리어 북집에도 함께합니다. 쪽빛 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를 방문하면 고향과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목백합 촛불,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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