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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9일 오후 6시]

 

위협받는 나의 식탁 나의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해서 7일 시청에 나왔다. 나는 확률상 안전하다고 안일하게 말하는 정부에게 미친 소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더 이상 굴욕적인 외교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6월 10일 모이자고 한다. 왜 6월 10일일까? 아, 87년 6월항쟁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민주화의 기폭제가 된 이들, 박종철, 이한열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어쩌면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시청 앞을 걷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천막 그중 한 곳에서 자식을 잃은 이 사람들. 박종철 아버지 박정기(80)씨와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68)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분들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소속으로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고 계셨다.

 

휘어진 허리, 깊이 팬 주름이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한다.

 

-아버지 어머님 이제는 좀 쉬세요. 이렇게 오랜 세월 고생만 하시잖아요.

"우리가 이제는 늙었잖아. 그래서 좀 쉬려고 천막으로 결정했어."

 

웃으시는 박정기씨. 어쩌면 개인사에서 매년 유월이면 악몽 같았을 그들에게 유월의 의미를 묻는다.

 

-아버지의 올해 유월은 어떤가요?

"20년 전 유월에는 동적이었고 뭔가 끊임없이 밀고 이루고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정적인 것같다. 하지만 이 정적인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고 저력이 있어 보인다. 시민들은 자발적이고 평화적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20여년 전 유월항쟁에는 분노와 열정이 섞인 로망스이고 지금의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 선진적인 집회문화이다."

 

-박종철이 대한민국에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에 인권문제 발전 소지를 제공한 인물"로 생각한다고 간단히 답해주시는 아버지.

 

-6월항쟁, 발전, 민주화, 이 모든 것을 잠시 접어두고 서라도 혹여 "왜 하필 내아들이어야 했는가?"라는 생각 해보신 적 없습니까?

 

주저없이 말씀하신다.

 

"내가 이익을 보겠다고 죽음을 남에게 담보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남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나의 행복을 챙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난 종철이가 이루어낸 모든 것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20여년간 종철이의 뜻을 이어왔다."

 

20여년 생전에 친구도 아니었던 박종철, 이한열. 그들의 부모님은 이십여년 동고동락하면서 아들의 빛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친구'에서 그랬던가.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고? 이들은 함께 있으면서 얼마나 많이 울고 얼마나 많이 의지했을까.

 

-어머니, 솔직히 20년간 두 분이 만날 얼굴 보시기 지겨우시겠어요?

"나이가 들어가니까, 우리 둘 중 하나 먼저 죽을까봐 겁이 나. 난 아버지 없으면 힘이 없어. 아버지도 그렇고. 어디를 가도 나 혼자 가면 종철이 아버지는 어딨냐고 물어보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이고. 아버지 우리 오래오래 삽시다 알았지요? 꼭 건강해야해요!"라면서 한약을 나눠 드신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자랑좀 해보세요.

눈가에 그리움이 자욱한 아버지 말씀하신다. "그런 말이 있던가? 자식 자랑은 온미친갱이고 마누라 자랑은 반미친갱이라고? 하지만 우리 종철이는 정말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생전 싫은 소리 한번도 못해 본."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중 그런 변을 당했다는 박종철씨.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옳지않은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고집만은 유별났다고. 이한열 어머니도 질새라 말씀하신다. "맞아 우리 한열이도 참 아름다운 청년이었는데… 항상 남들 배려하고… 근데 이게 불효자지 이렇게 이쁜 기억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버렸으니까"

 

-참. 보고싶으시겠어요.

"난 오늘도 한열이와 함께 왔어. 내가 가는곳들 내가 하는 일들 모든 것에 한열이가 함께있어. 난 이렇게 한열이를 기억해. 이렇게 잊지 않으려고 하는거야."

 

며칠째 밤 10시에 집으로 가기로 약속해 놓고 자정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부모님들 옆을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젊은이, 유가협 총무가 벌떡 일어나서 말한다.

 

"어머니 아버지들 오늘은 11시에 꼭 집에 가야 해요. 내일 집회 마지막 날 정리 잘해야 하고요. 또 화요일 유월항쟁 기념식이 있고요…."

 

열거되는 스케줄. 칠순 팔순이 되어가는 부모님들에게 너무 지나치다 싶지만 그들은 그냥 조용히 듣고 있다. 총무는 말한다. 유월이 될 때마다 그 의미를 논하는 사람들이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진정 알고 있는지. 유월이 되어 곳곳에 박종철 이한열을 말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얼을 안고 꿋꿋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가족들을 너무 외면하는것아니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묻는다. "저분 누구시죠? 낯이 익은데…."

 

촛불시위대들에게조차도 희미해져 버린 사람들. 이제는 행복할 권리있는 당신들의 개인사는 접은 지 21년. 아직도 대한민국 자식들이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어쩌면 종철이 한열이 그리고 또다른 젊은 영혼들이 함께 숨쉬며 이어나갈 듯한 희망에 오늘도 밤새 그들은 앉아있다.

 

"예전에는 군사독재다 뭐다 해서 적이 있었고 싸우면 들어먹기라도 하는 것 같고 변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뭐 알아듣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방법도 없는 것 같아서 참 답답하네… 발전은커녕 아주 오랜세월을 퇴보해서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시는 아버지… 이제는 쉬셔도 되는데… 나머지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이 근현대사에서 다시 배우겠지. 먼옛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앞당겼으며 그리고 그 훗날 촛불로 시청을 밝혀서 자존심을 지켜 냈다고. 그리고 그 행간마다에 이 모든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도 묻어나겠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분노하고 일어서고 이뤄내고 안도하는 것은 정당하다.

 

덧붙이는 글 | 유월 촛불시위 시청 앞을 지키고 계신 박종철, 이한열의 부모님을 만나보았습니다.


태그:#박종철, #이한열, #유월항쟁,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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