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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세계일보>는 '대만, "일본과 전쟁할 수도 있다"'라는 재미있는 기사를 보도했다. 전쟁 발발 지역의 사람들에겐 오싹한 소식일 테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는 한반도 사람으로 여러 모로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17일 오전) 이 뉴스는 해당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스크랩된 것으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동아시아 지정학에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일본의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그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뉴스를 다시 클릭해보았다.

 

 

그 궁금증은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사람들은 대만이 영유권 분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대리 쾌감을 맛보는 듯하다. 우리 정부가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대만과 같아야 한다고 다들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까이거, 전쟁 뭐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경고하는 동북아 전쟁 시나리오

 

<촌놈들의 제국주의>. 이 책의 원고를 처음 받아든 것은 두 달 전이다. 출판사 대표가 내게 원고를 건네주던 당시에 했던 말이 대강 이런 식이었다.

 

"지금 같은 때에 동북아 전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미친 놈 취급하지 않을까?"

 

'네, 미친 놈 되기 딱이죠.'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가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종로 한복판에서 "호외요! 동북아 3국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며 생쇼를 할 일은 없을 테니 그저 웃음으로 원고를 건네받았다. 책은 책이고 연구는 연구일 뿐, 이 책 한 권이 전쟁을 예언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고를 읽으면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단지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자는 과거 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대다수의 현대전이 해당국의 제국주의적 경제형태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이터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자기 땅 이외의 소비지를 찾아야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상 식민지 경영은 불가피한데 이미 그 지경을 넘어선 국가들이 대개 전쟁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매년 6월엔 호국영령들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던 우리에게도 이 말은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남들에게 전쟁터만 빌려준 적밖에 없는 우리가 이젠 엄연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인가.

 

저자 우석훈은 어느새 우리가 제국주의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며 그 사례를 조목조목 말해준다. 일단 이라크 파병을 이야기해볼까. 이라크 파병은 과거 베트남과 동티모르 파병과 비교해볼 때 재밌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돈을 내며 자발적으로 파병결정을 내렸다는 데에 있다.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강요에 마지못해 따른 게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가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을 강력히 원했고, 무엇보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한국 군대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원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파병 결정이 민주적 절차 측면에서 심각하게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논의가 다소 일방적으로 흐르긴 했지만, 법적 절차에서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가 원하는 전쟁을 결정했고, 국회는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이 파병에 동의한 것이다.

 

(…) '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추상적이긴 하지만, '국익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논의 자체가 파병과 전쟁이라는―일반적인 경제적 범주에서는 잘 포함되지 않는―특수한 관계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인 현상이다. 이익이 있어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의와 명분 같은 것으로 참전 혹은 파병 같은 일을 결정한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본문 70~71쪽

 

이 책에 따르면 한미FTA 또한 우리가 자발적으로 택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해외에서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식민지에 해당하는 다른 나라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경제협약 중의 하나일 뿐인 한미FTA에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집착한 것은―그리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국민들이 이를 열렬히 지지한 것은―일종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가 이로써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이것이 사실상 국정홍보처가 얘기한 '경제영토'의 실질적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오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히 현실을 짚었던 셈이다. 미국을 등에 업은 '경제영토'의 확장, 그것이 바로 '촌놈들의 제국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 <촌놈들의 제국주의> 본문 98쪽

 

지난 5월말부터 6월초까지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르완다공화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정상회담 당일에 이 대통령은 이 일정만 소화하고 나머지는 촛불시위 브리핑을 받느라 '장고의 시간'을 가졌다고 뉴스는 전한다. 이 뉴스를 보며 나는 경제영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경제영토를 넓히는 것은 21세기 자원민족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라고들 믿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남북경협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지난 10년 동안 'DJ 독트린'(햇볕정책)이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인도적 배려 차원을 넘어서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 및 기술이 결합됨으로써 열리게 될 한국 경제의 '마지막 비상구'에 관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이제 북한이라는 존재는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경제적 의미로 '식민지'에 가까워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른 먼 나라에 외부식민지를 갖기 어려운 한국 자본주의 입장에서 북한만큼 가깝고도 만만한 식민지가 또 있을까? (…) DJ 독트린의 외형은 물론, 그 안의 내용도 변한 것은 없지만, 한국 자본주의 자체가 변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이에 대한 일관된 설명일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의 차이는 북한을 내부식민지로 전환시키는 데에서 상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식민지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일종의 총독부처럼 직접 관리할 것인가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 언젠가 새로운 평화 독트린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DJ 독트린은 그 패권적 속성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본문 122~123쪽

 

우석훈, 그는 지금 시청 앞 광장에 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러 일간지 기자들에게서 저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연락처가 없습니다. 이메일을 쓰시니 메일 주소를 알려드릴게요"라고 답하면 에이, 알고 있는데 왜 그러시느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연락처가 없다. 메일 주소를 불러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존경하는 한 사람의 경제학자를 떠올리는 것도 재미있긴 하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honortomeadows@gmail.com이다. 바로 '메도우에게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도넬라 메도우(Donella Meadows)는 우석훈이 자신의 블로그나 여러 책에서 종종 언급하는 경제학자이다.

 

1960년대 후반, 세상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전직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인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모아 당시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던 MIT대학의 시스템 공학자들에게 이 질문에 답해주기를 주문했다. 이때 대학 연구팀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이십대 후반의 여성 엔지니어였던 도넬라 메도우였고, 그렇게 해서 1972년 세상에 얼굴을 내민 것이 바로 '성장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로마클럽 보고서'였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그녀는 나중에 귀농하여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저술 활동과 연구를 계속하다가 2001년 사망한다. 그녀의 유고작에는 결국 온 인류가 전쟁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연구 데이터가 남아 있지만,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한 연구진 가운데서 인류가 이 전쟁을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은 이는 그녀밖에 없었다고 한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본문 23쪽

 

저자는 동북아 3국의 전쟁을 예견하는 경제학을 펼쳐보이며 '평화라는 공공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주제에 매진하고 있다. 어떻게 이 전쟁을 막을 것인가. 누가 한국의 제국주의적 드라이브를 맞받아칠 것인가.

 

그 해답은 이 책의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을 파는 입장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순 없을 것 같다. 단지 저자 우석훈이 요즘 하고 있는 일을 알려주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연락처도 없는 은둔형 학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필즈 메달'을 거부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숲속으로 은둔해버린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처럼 버섯이나 따고 있으려나.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시청 앞 광장에 있다.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서 그는 평화경제학의 해법을 찾은 듯하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지음, 개마고원(2008)


태그:#촌놈들의 제국주의, #우석훈, #한반도 전쟁, #도넬라 메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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