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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 ‘고소영’이라 하여 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신자, 영남권 출신을 대거 기용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자신이 졸업한 학교와 소속된 교회, 출신 지역을 선호한 인사에 사람들은 잘못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책 <바보들의 심리학>을 읽으면 그의 인사 과정이 심리학적 계기에 기초함을 알 수 있다. 책의 부제인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라는 말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그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줄 모르고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저자 옌스 푀르스터는 많은 사람이 고정관념과 편견,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에 대한 긍정적 관념 등에 기초하여 사고한다고 말한다. 이런 연구 방식을 사회심리학이라고 하는데, 프로이드의 전통심리학과는 달리 최근에는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한 이와 같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책의 맨 처음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편견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견은 사람 자체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 사람이 소속된 집단과 관련된 채색된 판단이다. 예를 들자면, ‘노동자는 가난할 것이다.’와 같은 판단이나 ‘흑인은 운동을 잘하고 교육을 덜 받았다.’와 같은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타인에 대해 이런 편견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나눌 수 있다. 고정관념은 특정 집단에 대한 긍정적, 중립적 측면을 포함하지만 편견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편견에는 감정이 들어 있는 반면에 고정관념은 상대적으로 감정적이지 않은 지식이다.

 

파시스트나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편견에 해당한다. ‘여자는 요리를 잘한다.’, ‘남자 동성애자는 여성적이다.’와 같은 판단들은 집단에 대한 채색된 사고지만 부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해당한다. 차별은 더욱 적극적인 개념으로 편견을 토대로 하여 부정적 관념의 테두리에 속한 사람에게 더 나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책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인 호감을 가지는 고정관념 때문에 ‘고소영’ 인사를 단행했단 말이 된다. 고려대 출신이거나 소망교회에 다니는 사람, 영남권이면 자신처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그의 사고를 지배했기 때문.

 

알고 보면 이런 편견과 고정관념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아이의 아이큐 검사 결과 그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알려지는 순간, 그 아이는 공부 잘할 가능성을 가진 아이로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여 ‘자기 성취 예언’이라 불리는 예언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실제 다른 사람보다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릴 확률이 더 높다는 것. 말하자면 사람은 자신과 타인이 믿는 대로 인생의 획을 긋는 경우가 많다.

 

저자가 전하는 심리학적 기제 중에 재미있는 것은 ‘자기에 유리한 판단 왜곡’이라는 항목이다. 사람들은 불행하고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 그 원인을 주로 밖에서 찾고, 좋은 일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자신 덕분이라고 믿는다. 이런 인간의 판단 착오와 쾌락주의적 기질은 어쨌거나 정신 건강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타인의 실패는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자신의 실패는 외부의 탓으로 해석한다. 축구 팬들에게서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자기 팀이 지면 그건 팀의 실력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운이 좋지 않았거나 심판이 공정하지 못했거나 연고지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 팀이 지면 그건 순전히 실력 부족, 동기 부족, 협동심 부족 탓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에 ‘촛불집회 등 민심 혼란은 인터넷 탓’이라고 말하는 원인을 잘 알 수 있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대통령인 자신의 탓이 아니고 타인의 탓이라고 돌리는 기본적인 심리 기제에서 나온 너무도 단순한 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평소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 특징은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는 것.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넘어진 건 계단이 이상해서지만, 한 파시스트가 넘어진 건 그놈이 멍청해서’라고 생각하면 평소 증오하는 파시스트는 또 다른 부정적 특징을 얻어 뇌리에 박힌다는 사실이다.

 

언어와 관련한 재미있는 실험 결과도 있다. 저자는 피실험자들에게 ‘증오’ ‘잔인하다’ ‘가정’ ‘식탁’과 같은 단어들을 읽게 하고, 한 집단에는 그전에 섹스와 연관된 하나의 단어, 예를 들면 ‘꼿꼿하다, 젖어 있다’와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집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증오’ ‘폭력’ ‘잔인하다’ 등의 단어를 더 빨리 읽었다. 즉 이 실험은 사람들이 섹스와 공격성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를 요약해 볼 때 인간은 집단으로 나뉘자마자 자기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며 이는 곧 자기 집단에 대한 우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타 집단의 구성원보다 자기 집단의 구성원을 더 잘 도와주며 이는 집단의 생존에 유익하다. 몇몇 기독교인들이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데에는 이런 심리학적 기제가 작용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이런 심리학적 기제의 노예가 되는 것은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바보’의 길을 걷는 거라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인 태도를 갖고 어리석은 바보가 될 것이냐, 아니면 그 길을 뛰어넘고 편견을 넘어 역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바보들의 심리학 -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옌스 푀르스터 지음, 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08)


태그:#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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