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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0일. 100만 개의 촛불이 모여서 전국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을 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부끄러워했다. 하나는 잠깐이라도 촛불집회에 있을 수 있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지 못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6월 항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년 반 동안의 학생회 활동. 그 기간 중에 6월에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쌓여 있는 과제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을 기말고사, 해마다 있었던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정도였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조용하게 지났던 것인지, 나는 6월 항쟁에 대해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5·18 이후로 민주화가 이루어진 줄 알았다.

 

물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 마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5·18보다 그 규모는 작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때, 87년 6월에 대한민국을 살아갔던 그들에게 너무나 부끄럽게도. 모르겠다. 이제야 6월 항쟁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나.

 

2008년, 꺼질 수 없는 촛불을 들다

 

여하튼 그저 역사 속에, 그리고 우리의 정신 속에만 남아있기를 바랐던 6월 항쟁은 2008년 6월 10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시 이 땅에 나타났다.

 

87년에 외쳤던 구호가 '민주화'로 대표된다면, 2008년에 외친 구호는 정말 많았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문제점들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의료보험 민영화', '수도 민영화' 등… 자고 일어나면 구호가 하나씩 늘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촛불 속에 담긴 염원은 늘어만 갔다.

 

누군가는 장마철이 되면 이 촛불이 꺼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냄비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간 하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촛불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왜냐하면 그 촛불은 쉽게 꺼질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이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분노를 담아 든 촛불이기에.

 

2008년, 비폭력에 폭력으로 막으려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87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있다. 최루탄을 피해 엎드리던 시위대의 모습과 비슷하게, 2008년의 우리에게도 물대포와 소화탄을 피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

 

대치상황에서 예외없이 '비폭력'을 외치는,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려는 시민을 붙잡고 '비폭력'을 외치는 이들에게, 심하게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행사하려고 하는 이들을 소위 '프락치'라고 오해하는 이들에게, 물대포와 소화탄은 비폭력이 아닌 폭력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물론 집회 현장에서 직접 대치하는 전경과 의경들 자체는 죄가 없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들도 군복만 벗으면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인 것을. 오죽했으면 '양심상 촛불시위를 막을 수 없다, 육군에서 복무하게 해달라'라는 전경도 나왔겠는가. 물론 기각당하고 15일간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런 전·의경들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이들은 시민들이 든 분노의 촛불을 물대포와 소화탄으로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방패와 곤봉으로 막아서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돌아설 줄 안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끝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착각은 자유라지만.

 

2008년, 물대포와 소화탄으로는 촛불을 끌 수 없다

 

국민의 눈을 살피며,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한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고시를 강행했다. 고시를 강행하고 국민을 설득하면 다 될 줄 알았나보다. 인터넷 곳곳에 배너를 띄우고 '미국산 쇠고기 안전합니다',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하겠습니다'라고 열심히 홍보하면 국민이 믿어줄 줄 알았나 보다.
 
고시를 강행하겠다는 보도가 나간 뒤, 한 블로그에 미국에서 발표한 추가협상 내용이 올라오는 등(http://hagi87.egloos.com/517292) 이번 추가협상 결과에 대해 네티즌들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IT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은 그 IT 덕분에 누군가(!)는 공개하기 싫어할 것들까지도 일반인들이 다 알아버리는, 그들에게는 서글프고 우리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 생겨버렸다.
 
분노한 국민은 오늘(27일)도 촛불을 들고 나선다. 그래. 오늘도 물대포와 소화탄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 새벽에 1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연행했다는데, 오늘은 더 연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물대포와 소화탄으로 눈에 보이는 촛불은 끌 수 있다. 그런데 그 촛불이 전부가 아니다.
 
온라인 사이트 실타래(http://www.sealtale.com)에서 배포한 촛불을 단 블로거들이 있다. 메신저 대화명에 촛불을 집어넣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국민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 정부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그리고 쉬이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심지로 끊임없이 타고 있는, 마음 속의 촛불.
 
누군가는 이제 촛불을 내릴 때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촛불시위가 변질되었으니 그만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생각을 하든지 그건 개인의 몫이지만, 확실한 건 촛불은 그렇게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젠 비폭력에 맞서는 폭력이 아니라, 정말 '국민과 소통하는' 그들이, 정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이상 87년 6월처럼,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 부상자들과 얼마 전 사망하신 고 이병렬 열사처럼 무고한 희생이 없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6월항쟁 응모글'입니다.


태그:#6월항쟁,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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