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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월 26일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한 데 이어, 27일에는 CNN이 전세계에 생중계하는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다. 이를 두고 "북한이 핵포기 의지를 과시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해석과 "단순히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부정적 평가의 이면에는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유력한 수단으로 삼아온 북한이 이미 노후해진 영변 핵시설은 포기하면서 중유와 테러지원국 해제와 같은 경제적, 정치적 보상은 받고, 핵물질과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깔려 있다.

 

특히 지난 4월 하순 북한을 방문한 미국의 잭 프리처드 전(前) 대북교섭 담당 특사가 북한의 관리들이 핵무기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북한의 의도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핵 프로그램 신고 목록에 핵무기는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의구심은 더욱 강해졌다.

 

'잠정적' 불능화'에서 영구적 불능화로

 

그러나 냉각탑 폭파가 갖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북한이 핵폐기 의지를 전세계에 과시함으로써 미국 강경파의 반발을 차단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 못지 않게 기술적 의미도 크다.

 

냉각탑 폭파는 영변 핵시설 포기가 '잠정적' 불능화에서 '영구적' 불능화, 즉 폐기로 가는 첫 관문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북한이 앞으로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위해서는 불능화된 핵시설의 복구뿐만 아니라, 냉각탑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이는 북한이 적어도 앞으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 포기 의지 논란'을 야기한 프리처드의 방북 결과 설명 역시 보다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한미경제연구소(KEI) 홈페이지에 게재된 방북 보고서에 담긴 관련 내용 전체는 아래와 같다.

 

(6자회담) 다음 단계에 관해 북한 관리들이 전한 메시지는 "미국은 핵보유국 북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서, 이는 미국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2·13 합의에 서명한 내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북한 관리들은 (2단계) 다음은 경수로 제공과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논의하는 단계라며, 현존하는 핵무기는 아무리 빨라도 북미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이전에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특히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의도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우방국"이라는 점을 들어, "불과 몇 개의 핵무기만 갖고 있는" 북한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이후 협상에 대한 북한의 방침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3단계 협상의 핵심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경수로 제공을 맞바꾸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현존하는 핵무기 문제는 북미관계의 완전한 정상화 이후, 혹은 동시에 협상해야 하며, 셋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북미간의 우호관계는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원하지만, 북미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된다면 핵무기 폐기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핵포기의 과정을 세분화시킴으로써 경수로를 포함해 최대한 정치적·경제적·안보적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협상 전술도 읽힌다.

 

결국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북미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한 핵무기 포기도 협상가능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 포기 여부는 그 반대급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만치 않은 앞으로의 쟁점들

 

그렇다면 북핵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와 미국의 대북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가 '동시 행동' 차원에서 마무리된 이후의 핵심 쟁점은 무엇일까?

 

우선 테러지원국 해제 효력이 발휘되는 8월 10일 이전에 검증 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 양에 대한 검증은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것이고, 검증 대상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및 시리아 핵개발 지원설이 포함될지도 관심사다.

 

아울러 검증 주체, 전면 사찰에 대한 합의 여부 및 이에 대한 보상 문제도 중요하다. 과거의 전례와 검증이 갖고 있는 법적·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할 때, 북한은 '주권 침해'를 들어 전면적인 사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주권 양보의 대가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검증과 동시에 이뤄질 3단계 협상 의제를 짜는 것 역시 중요하다. 미국은 3단계 협상에서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보일 것이다.

 

반면, 북한은 이들 사안은 북미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기 전에는 논의하기 어렵다며, 이미 불능화 조치를 밟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경수로 제공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맞설 공산이 크다. 이러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올 한해는 3단계 협상 의제를 둘러싸고 지루한 공방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

 

한국은 어디로 갔나?

 

끝으로 남북관계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앞으로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 맞춰 어떤 형태로든 경수로,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한미합동군사훈련 등 한미연합군의 대북경계태세 완화,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 등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사안은 하나같이 한국이 핵심 당사자다. 경수로는 한국이 비용 부담 및 사업 주체이고, 평화협정을 논의할 '평화포럼'의 당사자에도 한국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내지 축소, 대규모 대북 경제 지원과 협력도 한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가 대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에서 일본을 대신해 '왕따' 신세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변 냉각탑 폭파 현장에 초청을 받지 못했고, 북핵 검증단에도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북한이 남한 사찰단이 포함된 검증팀을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더러, 미국 역시 북핵 검증단은 미국·중국·러시아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한 상황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존중 의지를 밝히고, 남북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근본문제가 논의되는 향후 협상 구도에서 한국은 '왕따' 신세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엄청난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 임기 내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달성해 냉전체제를 해체한 주역이 될 수 있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에 따라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남북경협을 적극 활용할 경우 '유라시아 대륙 진출을 통한 경제살리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기고한 글을 대폭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6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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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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