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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꼬맹이들 유치원 보내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아침 잠 많은 7살 딸, 그날 컨디션에 따라 핑계거리를 찾아가며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5살 아들, 두 꼬맹이의 등교전쟁은 매일 일상처럼 치르는 전쟁이다.

 

꼬맹이들의 유치원등교 시간은 오전 8시30분 그러나 그 시간에 가는 날은 거의 드물다. 그래도 그 시간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 꼬맹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시골학교 분교 병설유치원이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운영하는 버스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유치원 등하교 시간에는 부모들이 늘 함께 한다. 우리는 형편이 좀 다르다. 아침이면 학교, 유치원에 같이 가려고 찾아오는 동네 이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계바늘이 8시 20분을 가리키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채영아 학교가자” 그 소리가 들리면 아내의 손놀림이 분주해진다. 목소리도 점점 높아진다. 서두르지 않으면 동네 아이들과 같이 단체 지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나면 어느새 우리 꼬맹이들은 귀여운 유치원생으로 변신을 한다. 아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밖으로 나가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하고 있다. 딸 채영이가 준비를 다 마치고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며 “ 아빠! 나 유치원 갔다 올게,  저녁에 나랑 놀아 알았지!” 쉬지 않고 한마디 남기고 차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그런 꼬맹이들의 뒤 모습이 언제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등교전쟁을 치르고 꼬맹이들이 유치원에 가는 것을 보고 컴퓨터가 있는 책상 앞으로 갔다. 그때 책상 위에 반으로 접어 무엇인가를 적어 놓은 듯한 종이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필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딸이 쓴 편지 같았다. 언제 써가지고 가져다 놓았는지…. 딸이 무슨 글을 썼을까? 편지를 펴서 글을 읽고 있는데 집사람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필자를 보고 하는 말….

 

"어젯밤에 채영이가 아빠 들어오면 준다고 써놓은 거예요. 나도 한 통 받았어요."

 

아내의 말을 들으니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한편으로 어떤 내용을 썼을까 궁금했다.


 


아빠! 사랑해요. 우리 행복한 시간을, 행복한 하루를(해석불가능)습니다. 사랑해요!
 
검정색 색연필로 꼭꼭 눌러쓴 글씨체에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지인들과의 만남을 핑계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지 못했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슴에 품고, 사랑을 주는 것이 많이 부족했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 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아쉬웠다.
 
스스로 다짐했다. '이젠 가족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자! 그리고 꼬맹이들을 꼭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주자!'라고 말이다.

 

산부인과의사가 전해 주는 가위를 들고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자르고 떨림과 감격의 교차 속에서 품에 안았던 채영이가 벌써 일곱 살이 되었다.
 
말도 많고, 할 것도 많은 딸이다. 요즘은 간섭하는 것도 많다. 평소 지인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술과 담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술, 담배 냄새가 몸에 찌들어 들어오게 된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딸아이의 귀여운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빠! 술 많이 먹으면 간 나빠져서 일찍 죽는데…."
"아빠! 담배 많이 피우면 폐가 썩어 많이 아파서 수술도 해야 하고…."
"아빠! 이젠 술, 담배 하지마!"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내는 "거봐요. 애들이 아빠를 얼마나 걱정한다고요"하며 거들고 딸은 엄마의 응원에 힘을 얻어 쉬지 않고 조잘거린다. 결국엔 아빠의 무조건 항복(잘못인정)을 받아내고야 자기 할 일을 한다.
 
이런 아빠가 언제나 걱정인지 이젠 편지를 써서 아빠를 감동시킨다. 사랑하는 딸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절제와 자중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살아가야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딸이 무엇인가에 집중을 했는지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채영이 뭐하는데 꼼짝도 안 해?"
"그러게요. 가위와 색종이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아요."
 
한참 후에야 방안에서 나오는 딸. 허리춤에 무엇인가를 감추며 옆으로 다가온다.
 
"아빠! 이게 뭘까요? 아빠 선물이야! 맞추면 줄게"
 
그러게… 뭐지… 알 수가 없네…. 모른다, 맞춰봐라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엔 딸이 손을 내민다. 그건 오랜 시간 혼자서 정성을 들여 만든 색종이 꽃다발이었다. 딸이 만들어준 꽃다발을 받아들고 꽃향기를 맡아 보고 딸을 꼭 안아주었다.
 
"딸 고마워."
"응. 자! 우리 식구 이젠 같이 놀자. 아빠, 엄마, 빨리 들어와."
 
 
때로는 자기 주장이 세고, 동생하고 자주 싸우지만 그래도 끔찍이 동생을 아껴주고, 보살펴주는 너그러운 누나다. 아빠, 엄마에게는 큰 딸이자 큰 애기 말썽꾸러기 딸이지만 언제나 해맑은 모습을 간직한 사랑스러운 딸이다.
 
그러고 보면 난 정말 행복한 가장이다. 한 아들과 두 여자의 사랑을 언제나 넘치도록 받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딸! 아빠 앞으로 잘할게. 딸도 언제나 맑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 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 U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킴이, #가족, #김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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