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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달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003년 6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정확히 48개월 동안 신문배달을 하면서 그 4년간의 소고를 간간이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스무 살 때 경험했던 1년의 신문배달을 포함해서(1996년 12월~1997년 12월) 20대의 절반을 새벽과 씨름하는 일을 해서인지 아직도 많은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억은 한국 사회에서 신문배달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들이 늘상 따라다니기에 기억하기 싫어도 항상 되새김질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신문배달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급여의 문제, 즉 경제학적인 시각을 넘어서서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관심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배달부의 모습에서 '새벽을 여는 사람의 참된 노동', '하루를 보람차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저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과장된 부분이지만 다시 추억을 긍정적으로 회고한다는 측면에서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역시 '살빼기'에 대한 궁금증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건 단순히 체중 감량의 문제가 아니라 '아침운동', 즉 개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얼핏 보아도 과도한 노동량이 보장되는 신문배달이 과연 어떠한 신체적 압박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 압박이 과연 지속적인 효과를 보장하는지 오늘 한번 저의 생생한 체험담을 경험 삼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3개월차 이상만 신문배달의 고통을 말하라!

 

배달원끼리는 '최소 13개월차에 진입한 배달부가 아니면 고통을 말하지 말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이유인즉, 신문배달에는 사계절 제각기 여러 가지 변수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황사, 여름에는 더위 폭우, 야간취객, 가을에는 여러 가지 개인적 야외 행사들 속에서 시간관리를 해야하는 점, 그리고 겨울에는 추위, 폭설, 빙판길 등이 그것입니다.

 

짠밥이 올라가면 각 상황에 맞는 대처법이 몸에 저장되는 지라, 오직 '새벽잠'과의 고통만이 진행되지만 초창기에는 모든 자연재해(?)에 정말 처참히 무너질 뿐입니다.

 

말 그대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것을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독자들의 집'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물어보지만 사실 그것은 1주일이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라 별 고민거리도 아니랍니다.

 

즉 A라는 독자집은 항상 그자리에 있지만 그 독자집에 가는 매일의 상황은 자연의 상태에 따라서 정말 천리길도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계절적 경험을 1년간 체험하고 다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13개월차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에 대한 '반복'을 선택했다는 측면, 즉 '낙오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문배달의 처음 1년은 참으로 힘들답니다.

 

[적응기 1년] 24시간 전체를 긴장해야 하는 모드 - 10킬로그램 감량

 

결론부터 말씀드려 1년간 저는 10킬로그램이 빠졌습니다. 1년이라는 기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만한 수치는 아닙니다. 하지만 1년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음식조절이 아닌 철저한 노동으로만 뺐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살을 빼기 위해 단 10원의 자본도 지출하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초창기의 신문배달은 사실 하루 전체를 긴장하게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하루를 조절해야 하는지를 늘상 고민하였는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규칙적인 일상이 체중 감량의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문이 발행하는 월~토, 그러니까 저에게는 일~금요일의 야간은 오직 그 다음날 제대로 일어나기 위한 스케줄 관리였습니다. 당연히 술자리는 피했고, 다음날 중요한 과제가 있어도 낮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은 공포스러웠습니다. 야간방황이 줄어드니 체중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신문을 빨리 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모든 계단을 뛰어 다녔던 것도 분명한 원인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도 시간이 오히려 단축될 수 있음을 몸으로 체험하지만, 처음에는 오전 6시가 넘어 독자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실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새벽마다 도합 120층을 발바박 불 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말 그대로 다리에는 엄청난 근육들이 붙습니다. 그리고 살은 빠지는 것이죠.

 

 

또한 장마철에 비옷을 입고 배달하는 것은 간이 사우나를 몸에 설치한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물론 나중에는 비가 와도 비옷을 입지 않는 이상한 괴인의 모습으로 변하지만, 처음에는 온몸을 그 방수만 되고 통풍은 되지 않는 비옷으로 철저하게 무장을 한답니다.

 

나중에 비옷을 벗으면 땀이 너무 많이 흘려서 비옷을 전혀 입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그렇게 신문배달 1년은 최소한 '다이어트'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주 긍정적인 것입니다. 돈도 벌고 운동도 하고, 무엇보다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좋은 결과를 주기 때문이죠.

 

[침체기 3년] 같은 노동량임에도 전혀 줄지않는 체중

 

인간의 몸이란 아주 신기합니다. 어떠한 힘든 일이라도 가장 편한 동선을 자체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소한 1년의 2킬로씩, 그래서 3년간 최소 6킬로는 더 빠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 듯한데 저는 오히려 2킬로가 더 증가했습니다. 그 3년 중 1년은 돈이 급해 5시간가량을 배달한 적도 있었는 데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죠. 왜 그럴까요? 역시 살빼기라는 것은 '긴장'이 무너지는 순간 이미 끝장나는 듯합니다.

 

우선 단지 잠을 깨우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마셨던 자판기 커피 1잔이 배달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4~5잔으로 증가하고 말았습니다. 초창기에는 그냥 눈인사만 하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매일 새벽 비슷한 시간에 동종업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저절로 동료애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이 지역에서 한 잔, 저 구역에서 한 잔,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다 모여서 종합 토론회로 마무리됩니다. 그렇게 늘어나는 커피가 최소 3잔이상이었고 나중에는 중독이 되었는지 혼자 그렇게 마시면서 배달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1년정도가 지나면 배달용 오토바이에 매우 익숙해지고 배달 자체에 대한 시간적 압박도 굉장히 줄어듭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정말 하루를 위한 워밍업하고 돈을 벌었다는 자부심마저 들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단축이 또한 자연스러운 친목도모로 이어졌습니다.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컵라면을 사먹기도 하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얼큰한 국밥 한 그릇을 먹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관리됩니다.

 

배달자체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개인적 '하루'에 대한 관리가 당연히 소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밤 12시 전에는 반드시 잠을 자야한다고 생각했던 처음과 달리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소주를 들이키고 집에 와서 입가심으로 맥주를 한 잔 더하는 날도 잦아졌습니다. 즉 어느 순간부터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게 통제되지 않아도 배달 자체에는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기에 일상의 긴장을 아예 놓쳐 버린 것입니다. 사실상 배달고수들은 거의 '졸면서(?)'도 완벽한 배달을 한답니다. 몸의 기억이라는 것은 이토록 무서운 것 같습니다.

 

[신문배달 이후 1년] 원상복귀

 

하지만 긴장이 풀렸다고 체중 자체가 심각하게 증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신문배달 자체의 절대적 노동량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몸이 가장 편한 것을 찾아 다닌다고 하여도 여름에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땀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신문배달은 시간대비 노동 강도가 상당한 일이랍니다.

 

어쨌든 그렇게 4년을 살았건만, 배달을 그만둔 지 1년이 지나자, 저의 체중은 원상복귀되었습니다. 배달을 한 기억이 몸에 남아있었는지 갑자기 증가하지는 않더군요. 1~2달에 1킬로씩 슬며시 슬며시 증가하더니 이제는 이 몸이 과연 신문배달을 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다시 헬스장도 다니고 집앞 산책로를 열심히 달리기도 한답니다. 그럼에도 살은 잘 빠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운동을 한다고 하여도, 하루 4시간씩 움직이고 120층을 올랐던 그 강도가 나오진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주 6회, 같은 시간'이라는 규칙적인 생활패턴으로 열량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기에 체중의 원상복귀가 결국 오고야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신문배달을 할 때 정말 비 오는 날이 싫었습니다. 배달하는 도중에 비가 오는 것은 더 싫었습니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1주일 전에만 들려도 짜증이 났습니다. 눈이 오는날은 더 짜증납니다. 눈이 오고 도로가 얼어 붙었을 때는 미치도록 짜증납니다. 왜냐하면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문배달부는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게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상의 긴장감이 신체의 압박을 가능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공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배달을 그만두고 나니 공포는커녕 비 오는 날에는 막걸리 한 잔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체중의 원상복귀를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요기 집 앞에 XX신문사 지국에서 배달원 모집한다고 하는데…."

 

이거 이러다가 "다시는 새벽2시에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만두었던 그 새벽의 광기를 다시 체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상 긴장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http://blog.daum.net/och7896


태그:#신문배달, #신문,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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