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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정병 4만 명만 있다면 오랑캐를 무찌르고 압록강에서 칼을 씻고 올 터인데...”라며 울분을 토하던 한 장수가 있었다. 바로 조선 시대에 충절과 용맹으로 이름을 날렸던 임경업 장군이다. 정묘호란 당시 그는 낙안군수였다. 피울음을 삼키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던 임장군은 낙안으로 돌아와서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임장군은 1626년 5월에서 1628년 3월까지 바로 낙안군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낙안읍성 전경
 낙안읍성 전경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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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군 낙안면 동내리에 있는 낙안읍성에는 이렇듯 임경업 장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고 토속미가 물씬 풍기지만 그곳에 흐르는 역사는 결코 범상치 않은 것이다.

순천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30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 조선 시대 민속마을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는 현재 108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마을을 표주박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석성은 웅장하다기보다는 아담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모습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벙긋 웃고 있는 나무 장승들을 만날 수 있고, 그 장승들에게 반가운 수인사를 하고나면 바로 석성의 입구인 동문을 만나게 된다.

읍성입구와 석구상
 읍성입구와 석구상
ⓒ 김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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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동문 앞에서 희한한 돌조각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낙안읍성 입구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석구’상이다. 우리나라에선 개를 수호신으로 삼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 석구가 멸악산과 재석산의 사나운 기운을 물리친다 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원래는 세 개였는데, 현재는 두 개만 남아 있다.

어쨌든 이 석구를 일별한 후 정문을 통과하면 곧바로 큰 길이 나타난다. 바로 읍성마을의 주도로다. 낙안읍성마을은 총 면적 6만 8천 평 정도이며 전체적인 모습은 산들이 빙 둘러싼 분지 형태이다. 남문 누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왜 이곳에 성을 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산들이 첩첩히 에워싸고 있어 적들이 쉬 침범하기 어렵고, 편안하고 포근한 기운이 늘 서려 있어 백성들이 살기에는 아주 그만인 것이다.

다정한 부부의 대화
 다정한 부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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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낙안읍성에는 현재 230여 채의 초가집이 전통 방식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타 지역의 민속촌인 경우에는 사람들이 출퇴근하면서 형식적으로 살고 있지만 이 낙안읍성에는 정식으로 주소를 가진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고 눈길이 가는 곳이 바로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에는 관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초가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슬쩍 옆 골목으로 빠지면 초가로 만든 식당이 나타나고, 사진관과 구멍가게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또한 요리조리 지나다가 어느덧 대장금 촬영장소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이엉으로 엮은 초가집 지붕에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능소화가 아름드리 피어 있고, 늙은 호박들이 담장 위에 슬며시 걸려 있다. 초가지붕과 골목길 사이로 흐르는 옥색 구름은 흰 솜털을 풀풀 날리고, 연못가에는 창포 빛 연꽃들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그 고고한 자태에 취해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한 판소리에 귀가 솔깃해진다.

담벼락에 핀 꽃처럼
 담벼락에 핀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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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오태석. 우리나라 가야금 병창의 명인인 오태석의 흔적도 바로 낙안읍성에서 만날 수 있다. 낙안에서 태어난 오태석은 일제 시대와 해방 전후를 거쳐 가장 뛰어난 판소리꾼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가 가야금을 들고 공연을 하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박귀희 선생이 있으며, 박귀희 선생 문하에서 유명한 안숙선 명창이 탄생했다고 한다.

담장너머 초가집이
 담장너머 초가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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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마을을 세세히 다 둘러보는 데는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평일과 휴일에 많은 문화공연도 열린다. 현재 낙안읍성마을은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등록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 낙안읍성의 존재감은 우리로 하여금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전통과 원형을 보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낙안읍성과 같은 전통 마을을 잘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대장금 촬영지
 대장금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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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왕곡마을이나 영해의 전통가옥, 경주 전통 가옥들이 주로 양반과 세도가의 것이라면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민초들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고즈넉한 곳이다.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함과 정겨움, 그리고 옛 백성들의 호흡이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낙안의 정취, 낙안의 분위기. 그리고 옛 시절의 아득함을 진솔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낙안읍성으로 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제신문에도 송고함



태그:#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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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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