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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촛불 어디로 가야 할까요? 광주전남비상시국대팩회의는 "촛불아 흩어져라"하면서 동네마다 골목마다 촛불의 불씨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혹은 금남로 촛불집회 주변에선 '광주 촛불'의 진로를 두고 다양한 토론과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 토론'을 온라인으로 옮겨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정영대 전 <시민의소리> 기자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고비 길인가 숨고르기인가. 촛불이 '중대 기로'에 섰다. 무엇보다 6·10대회를 기점으로 참가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폭염과 장마라는 계절적 요인 탓이 크다. 피로누적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촛불이 지역으로 산개해 들어가 인원이 분산된 이유도 있겠다.

 

그래서 혹자는 단순하게 촛불의 숫자만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외연의 확대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게다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대대적인 반격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일면 타당하게 들린다.

 

초기의 자유분방함과 생동감을 잃어버린 광주 촛불집회, 이유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과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촛불문화제 집중판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만한 동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망 부재와 뒷심 부족으로 곧잘 주저앉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광주검찰청 항의방문 때 보여줬던 어정쩡한 태도야 말로 그 같은 문제의식의 집약이다. 특히 최근 촛불문화제를 보면 행사 치르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촛불을 밝힌 지 60여일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없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들인 품에 비하면 받아든 소출은 거의 빈손에 가까운 탓이다. 그래서 느끼는 체감 피로도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근래 촛불문화제를 보며 자발성보다는 의무감에 가위 눌렸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아마 그 같은 상황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인 측면에서 촛불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문화제가 진행될수록 내용과 형식에도 빠른 속도로 이력이 붙기 시작했다. 문화제를 통해 제법 많은 '촛불스타'도 배출됐다. 초기 여중·여고생이 주도하던 문화제에 다양한 계급·계층이 결합함으로써 인적인 구색도 맞췄다. 시민자유발언의 주제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서 사회적·공공적 의제로까지 확대됐다.

 

그런데도 촛불광장은 오히려 초기의 자유분방함과 생동감을 잃어버렸다. 문화제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촛불축제의 재미는 반감되고 참여인원도 줄어들기 일쑤다. 촛불정국이 내포하고 있는 절실함도 나날이 무뎌져 가는 것만 같다.

 

왜일까? 무엇보다 광장의 문법이 급속하게 바뀐 탓이 크다. 광장을 구성하는 일차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말'이다. 그런데 말에는 저마다의 문법이 있다. 여중·여고생들이 주도하던 초기 광장은 날 것 그대로의 말이 거칠 것 없이 유통됐다. 기존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분망하게 일상을 조롱하는 말에서 수많은 대중들이 웃고 박수치고 환호했다. 

 

'운동권 문법'이 접수한 광장, 촛불 스스로 자기를 해방해야

 

그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전염성이 몹시 강한 문화적 현상이었다. 유쾌·통쾌·상쾌하게 웃다가도 가슴 먹먹하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던 일탈의 언어 덕분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말들에서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들의 문법에서 미래의 희망을 감지했다. 그들의 언어는 기성세대를 광장으로 부르는 지상명령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운동의 문법이 광장을 접수했다. 운동의 문법은 광장의 말을 획일화시키고 단순화시켰다. 모든 말과 행동은 일사불란하게 통제됐다. 그것은 조급증이 불러온 병적인 징후였다. 운동의 문법이 자기를 검열하고 광장의 언어를 검열하면서부터 촛불은 자폐의 공간으로 퇴행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광주'와 과잉 '역사의식'은 촛불문화제 내내 광장을 짓누르는 외적인 강제나 마찬가지였다. '광주'가 내뿜는 무게에 눌려 문화제는 발칙함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엄숙함에 갇힌 문화는 일상을 전복하지 못했고 새롭게 태동하는 시대의 흐름에 물꼬를 내지도 못했다. 급기야 촛불의 광장에서 파닥대던 '등 푸른 고등어'의 무리들은 얼마 안 있어 광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선 난장에서는 재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촛불의 광장이 생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촛불 스스로가 자기를 해방해야 한다. 조직화에 저항하고 무정형의 촛불들과 강고하게 연대해야 한다. 조직화되는 순간 촛불은 이미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맘껏 자기를 표현하고 광장을 만끽할 필요가 있다. 광장의 주인은 바로 촛불이기 때문이다.


태그:#광주촛불집회,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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