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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선택한 이명박 정부. 그러나 그들이 탄 타임머신은 아무래도 큰 고장이 난 것 같다. 분서갱유의 진시황 시대, 충언에 재갈을 물렸던 조선 왕조 폭군의 시대. 20년 전 땡전 뉴스의 시대를 정신없이 넘나드는 그 행보에 국민들은 어지럽고 불안하다. 고위 관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며 내뱉는 언론 정책과 인터넷 관련 발언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물고 살라는 협박을 반복하는 것 같다.

22일 정부는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과 관련해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에도 정부는 촛불 관련해서 여대생 사망사건을 퍼트린 40대를 구속하고, 조중동 광고 반대 운동을 한 사람들까지 출국 금지시켜 조사하고 있다.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말인가? 현재의 법으로 부족하여 또 옥상옥의 법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인터넷 강국, 여론을 통한 대의정치, 세계의 자랑'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오대양보다 넓은 정보의 바다에 조악한 그물을 던지려 하는지 그 발상이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노가리'도 모욕죄에 걸리나요?

정치인을 희화화해 풍자하고 동물에 비유해 실정을 꼬집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며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영국 총리는 이라크 파병에 동조하여 '부시의 푸들'이라는 꼬리표를 임기 내내 달고 다녔다. 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인가? 그러나 모욕죄로 처벌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서슬퍼런 5공화국. 전두환 각하는 '대머리' 이순자 여사는 '주걱턱'으로 희화화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노가리'라 하여 서민들의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지는 않았다. 대통령, 정치인들을 동물에 빗대고 희화화한 게 죄가 된다면 노가리를 씹을 때마다 그분이 연상되는 나는 아직도 처벌 대상인가?

1987년 MBC·KBS 방송인 방송 민주화 선언문 1987년 7월 25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유인물 '국민운동'에서..."앞으로 예상되는 정치일정 가운데 민주화에 역행하는 어떠한 부당한 지시와 프로그램 제작을 거부한다."-부디 그 뜻 이어 가시길...
1987년 MBC·KBS 방송인 방송 민주화 선언문1987년 7월 25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유인물 '국민운동'에서..."앞으로 예상되는 정치일정 가운데 민주화에 역행하는 어떠한 부당한 지시와 프로그램 제작을 거부한다."-부디 그 뜻 이어 가시길... ⓒ 안호덕

땡전 뉴스.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선전한 KBS, MBC였다. 독재자의 집권 야욕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시청료 거부 운동으로 맞섰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을 맞는다. 권력의 나팔수였던 방송이 국민을 위한 공영 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방송국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안밖의 시대적 요구로 KBS, MBC는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공영 방송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게 2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호기 있게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던 이명박 정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송국 사장을 갈아 치우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하고 있다.

국정홍보처와 공영방송의 차이를 알기라도 하나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KBS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이 얼마나 천박한 언론관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공영방송과 국정홍보처의 차이점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혹시 국정홍보처를 없앤다고 할 때 방송국, 언론을 장악하여 국정홍보처 역할을 대신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87년 방송민주화 지지성명서(국민운동 유인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1987년 7월 25일 찍어낸 '국민운동'중에서
1987년 방송민주화 지지성명서(국민운동 유인물)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1987년 7월 25일 찍어낸 '국민운동'중에서 ⓒ 안호덕

방송과 언론은 민심의 거울. 거울에 비친 얼굴이 실망스러우면 당신 스스로 모습을 보라. 거울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색칠하고 깨 버린다고 그 얼굴에 묻은 오물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고 거울을 새롭게 색칠하고 부실 수 있는 권한의 국민의 것.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여 국민을 따라오게 만들겠다는 80년대 타임머신… 이제 그만 내려 오시라.

두렵다. 광주의 참상이 적힌 유인물을 뿌리며 벌렁거리던 가슴.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두렵다. 인터넷에 글 하나 쓰면서도 그들이 만들어 낸 악법의 잣대에 맞추어 글을 써야 한다는 자체가 두렵다. 꼴 같잖은 글을 쓰면서도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양심을 사전 검열하고 글을 써야 할 그 세상이 두렵다. 20년 전 외쳤던 구호 '방송 민주화, 공영 방송 실현'를 또 들어야 하는 역사의 제자리걸음이 두렵다. 그러나 정권은 유한하고 국민은 무한하다. 국민과 줄당기기를 하려는 어리석음은 정권. 힘 빼지 말고 남는 힘 있거든 제발이지 민생 살리는 데 쓰시길 바란다.


#공영방송#언론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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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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