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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호수
 호명호수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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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목적지는 경기도 가평의 용추계곡이었습니다. 잣나무 숲이 우거지고, 암벽과 능선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가 곳곳에 천연 수영장 같은 탕을 만든다는 유명한 계곡. 어떤 이는 휴일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려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하는 곳이지요.

어떤 계곡이기에 그리 유명할까, 궁금했는데 결국은 가지 못했습니다. 태풍 '갈매기'가 집중 호우를 뿌려주는 덕분에 계곡에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위험하다는 것이었지요.

해서 급작스럽게 도보여행의 목적지가 바뀌었습니다. 가평군의 호명호수. 일반인은 사전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던 곳인데, 지난 7월 1일부터 관광객에게 개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호수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지요?

당연히 걷습니다. 호수로 가는 길을 걷고, 호수 주변의 길을 걷고, 더불어 호수까지 구경하니 어찌 좋지 않겠습니까. 비만 조금 덜 내려준다면 좋겠지만, 도보여행의 참맛은 비를 맞으면서 걷는 것이라니, 그 또한 기대해볼만하지 않을까요?

지난 20일,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호명호수 길을 10km 남짓 걸었습니다. 주로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걸었지요. 비가 쏟아질 때는 비옷을 꺼내 입고, 비가 그치면 비옷을 배낭 속에 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시원한 빗길을 걸었습니다.

호명산 정상에는 '천지'가 있다

호명호수 가는 길
 호명호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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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호수는 1980년에 청평 양수발전소를 만들면서 호명산 정상에 만든 인공호수입니다. 15만㎡의 면적에 267만7000톤 저수용량을 가졌다고 합니다. '백두산의 천지를 연상하게 하는 호수'랍니다. 사람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산 정상에 커다란 호수를 만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호명산에는 호랑이가 아주 많이 살아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호명산'인데 지금은 이름에서만 호랑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지요. 아, 청동으로 만든 호랑이상이 있긴 합니다. 퍼런 색깔의 호랑이는 솔직히 비호감이긴 하지요.

서울을 출발해서 호명호수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50분. 버스를 타고 호명호수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일행은 걸어 올라가기로 합니다. 길은 잘 포장된 2차선 아스팔트 도로입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뿌연 물안개가 흩뿌려진 길은 멀리서 보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도로는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이따금 자동차가 올라가고, 버스가 올라갑니다. 청량리 역에서 이 곳 호명호수까지 버스를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가평군내의 시내버스도 운행 중입니다.

한 시간쯤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호명호수공원 안내도'가 나타납니다. 안내도 표지판 뒤로 호수가 뿌옇게 보입니다. 무척이나 큰 호수입니다. 산 정상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호수를 둘러보고, 길을 따라 가다보니 기념탑이 나타납니다. 기념탑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홍보관 '호명정'이 나옵니다. 팔각정 모양의 2층 건물입니다. 2층은 전망대입니다.

멀리 산 아래가 내려다보입니다. 날이 맑으면 아주 멀리까지 보일 것 같습니다만 아쉽게도 흐린 날씨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홍보관 앞에서 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점심을 먹었습니다. 여럿이 둘러 앉아 먹는 도시락의 맛, 참 좋지요. 비가 내리지 않아 운 좋게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지요.

잘 가꿔진 숲길
 잘 가꿔진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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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호수 표지석. 뒤로 홍보관이 보인다.
 호명호수 표지석. 뒤로 홍보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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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치고 홍보관 아래로 난 흙길을 내려갑니다. 잘 가꿔진 숲입니다. 걷기 좋은 내리막 흙길을 가볍게 걷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전망대가 있습니다. 이름은 전망대이나 쉼터인 것 같습니다. 전망은 홍보관이 훨씬 더 좋으니까요.

나무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할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더 운치가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호명호의 이름을 새겨놓은 표지석이 나옵니다. 다시 호수 앞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표지석 뒤로 조금 전에 들렀던 홍보관 '호명정'이 보입니다.

걸어 올라간 길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 남짓 걸어가니 주차장입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시간이 덜 걸린 것은 오르막길이 내리막길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길을 이번에는 걸어서 내려갑니다. 이 길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합니다. 이 길을 따라 8km 정도 걸을 예정입니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도보여행을 할 때 비옷은 필수품입니다. 우산을 쓰고 걷기도 하지만 비옷을 입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 아주 삼삼합니다.

한여름에 비옷을 입으면 밖에서는 빗물이 흐르고, 안에서는 땀이 흐르기는 합니다. 그래서 옷이 흠뻑 젖지만 그래도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면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비에 젖어 한기가 깃들면 감기에 걸리기 쉽지요.

호명호수에도 걷기 좋은 길은 있다

녹슨 거울
 녹슨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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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옆에 동그란 거울이 서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세워졌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벌겋게 녹이 슬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손을 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들을 보면 가끔은 숙연해지곤 합니다. 오랜 기간동안 온갖 풍상을 겪어냈을 테니까요.

삼십 분쯤 내려가니 호명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등산을 하려면 그 길로 가면 된답니다. 등산로를 아주 자세하게 그린 표지판이 서 있으므로 등산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면 됩니다. 호명산의 높이는 632.4미터. 그리 높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비는 줄기가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그쳤다, 하면서 내리고 있습니다.

어, 귀곡산장이다! 길 옆에 귀곡산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한여름 밤에 귀신축제가 열린다는 산장인데,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직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진짜 귀신이 나오는 건 아니고, 살아 있는 귀신(?)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길에서는 귀곡산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는 길이 너무 구불구불해서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려면 운전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빗길에는 더 위험하겠지요. 유유자적 걷기에도 약간은 무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이따금 나타나는 자동차가 위협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자동차를 타고 휙 내려가기보다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묘미가 있습니다. 특히 가파른 등산로를 걷는 게 부담스러운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쯤 걸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두 시간쯤 걸어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이 날의 도보여행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날 걸은 거리는 얼추 10km쯤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걸은 것 같습니다. 산길이 아니라 잘 포장된 도로를 걸었기 때문이지요.

도보여행이 주 목적인지라 포장된 도로를 걸었지만, 산책을 즐기고 싶은 분들은 호명호수를 한 바퀴 돌고 산책로를 따라 홍보관까지 올라가면 충분하실 것입니다. 그 거리가 3.8km입니다. 산책하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거리지요.


태그:#도보여행, #호명호수, #호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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