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아침 용화산 모습, 이 밑에 사는 나는 따로 피서를 안 해도...
손발이 시리고 저려...
오늘 아침 용화산 모습, 이 밑에 사는 나는 따로 피서를 안 해도... 손발이 시리고 저려... ⓒ 윤희경

어제 저녁(24일) 호우경보 속, 장맛비가 대단합니다. 검은 구름 띠가 산자락을 휘감아오더니 비가 퍼붓기 시작합니다. 별안간 숲속이 뒤집힐 듯, 산골짝을 내리지르는 골바람과 나뭇잎 갈리는 소리에 장대비가 몰아치며 우르르 꽝, 금방 바위덩이가 무너져 내리려나 싶습니다. 다시 우르릉 쾅쾅, 섬광이 번쩍, 오두막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려니 가슴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이리 무섭고 떨린단 말인가.

 

비바람 천둥이 휩쓸고 지나간 숲 속의 어둠과 고요, 머리끝이 주뼛, 또 팔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합니다. 천둥이 잠잠한 사이, 십년 단위로 지은 죄의 항목들을 몇 가지 나열해 놓고 보니, 벼락을 맞아 죽어도 싸고 억울할 게 하나도 없는 삶입니다.

 

그래도 죽기는 아까운가 봅니다. 밤 깊어 정전이 되고 사위가 캄캄해오자 또 가슴이 덜덜거리고 앞 이빨이 딱딱 부딪힙니다. 죽는 연습이나 해두자. 잠이 들었는가 싶습니다. 이번엔 허깨비 같은 것이 나타나 바지가랑이를 잡아당기며 목을 조여 옵니다.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오두막 속은 여전히 칠흑, 굵은 빗방울만 후드득거립니다.

 

 비바람 속에도 풍성하게 잘도 익어가는 내고장 과일들, 모두 웰빙식품이다.
비바람 속에도 풍성하게 잘도 익어가는 내고장 과일들, 모두 웰빙식품이다. ⓒ 윤희경

아침, 언제인 듯싶게 비가 뜸하고 해가 반짝합니다. 논물을 보고 텃밭을 돌아봅니다. 천둥번개와 비바람 속에서도 자두, 오이, 호박, 가지들이 휘어지게 매달려 있습니다. 바구니 가득 따다 대야에 쏟아놓고 샘물에 담가놓습니다. 그들먹하니 보기만 해도 배가 저절로 불러옵니다.

 

산속 개울물이 얼마나 불었는지 돌멩이 구르는 소리 우렁우렁, 물보라가 솰솰 솟구치고 고꾸라져 한바탕 개울청소를 해댑니다. 물 구경을 가려고 배낭을 챙기니 어린 흰둥이가 눈치를 채고 발 앞에 알짱거립니다. 잡 털 하나 안 섞인 발발이입니다. 힘이 들면 낑낑대는 바람에 산행이 자꾸만 더디어집니다. 안고 가다 열이 나면 배낭에 넣어 지고 올라갑니다. 우리는 올여름 동반자입니다. 어서 쑥쑥 커 산을 치달렸으면 합니다.

 

 잡털 하나 안 섞인 흰 발발이, 나의 동반자
잡털 하나 안 섞인 흰 발발이, 나의 동반자 ⓒ 윤희경

산을 오르자니 백도라지 피어 하얗습니다. 얼마만인가. 이북 황해도 지방에서 즐겨부른다는 도라지 타령을 떠올리며 두 뿌리를 캐어냈습니다. 백도라지가 기침, 해소, 천식에 효험이 크다 해 욕심을 내 본 것입니다.

 

 백도라지,,,여름 기침과 해소에 효험이 크다고...
백도라지,,,여름 기침과 해소에 효험이 크다고... ⓒ 윤희경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은율(殷栗) 금산포(金山浦) 백도라지

한 뿌리 두 뿌리 받으니 산골의 도라지 풍년일세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저기 저 산 밑에 도라지가 한들한들

<도라지 타령>

 

아, 이게 웬 복일까. 우리 누나가 살아서 좋아하던 산옥잠과 좀비비추도 만났습니다. 모양새가 옥비녀를 닮아 부르는 이름입니다. 밤에 피기 시작해 새벽녘에 마무릴 하건만, 비가 오다 날이 컴컴하니 아직도 꽃물을 열고 있나 봅니다. 희미한 산 빛과 안개 아래 바라보는 꽃빛은 우아하다 못해 처연해 보입니다. 마치 이 세상 쓴 단맛을 다 겪어낸 중년여인의 뒷모습 그대로입니다. 

 

 누나를 닮은 꽃, 산옥잠
누나를 닮은 꽃, 산옥잠 ⓒ 윤희경

오랜만에 산속에서 산옥잠화 만나 먼저 간 영혼을 일으켜 세우며 누나를 불러봅니다. 어릴 적 내 누나는 은하수 잔물결, 해맑은 웃음, 하얀 숨소리, 뽀얀 살 내음 그대로였습니다.

 

간간이 스쳐가는 산골짝 바람 사이로 ‘누나’하고 불러보건만 아주 먼 곳에 계십니다. ‘누나야, 옥잠화 냄새 좋다’더니 어쩌다 혼자 남아 산 속에서 누나 뒷모습만 바라보게 하는가.

 

 겨울에 얼음이 언듯..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포말이다.
겨울에 얼음이 언듯..시원하게 흘러내리는 포말이다. ⓒ 윤희경

하산을 하다 보니 산골짝 물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발을 씻어 내립니다. 발을 물에 담그고 동안 농사짓느라 오그라든 발가락과 찌든 발바닥을 자꾸만 닦아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뼈가 저리고 발목이 빠질 듯 온몸이 시려옵니다.

 

다음은 발을 닦으며 물소리가 하도 시원하고 듣기 좋아 찍은 동영상입니다. 선선하게 튀어 오르는 폭포, 부서지는 하얀 포말, 끊일 줄 모르는 물소리….

 

후텁지근하고 짜증나는 장마와 무더운 복더위를 무사히 넘기기 바랍니다.

 

▲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용화산 골짜기의 물소리
ⓒ 윤희경

관련영상보기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산골짝 피서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