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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마다 13년째 공부모임을 같이 하는 다섯 목사가 있다. 성경과 책을 공부를 통하여 논쟁하고 토론한다. 치열한 사상 논쟁이 벌어질 때도 있다. 화석화된 사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상과 이념을 논하고, 현실 사회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하면서 시민단체 운동도 같이 하고 있다.

 

해마다 겨울과 여름에는 한 달 간 방학을 하는데 방학 전에 1박 2일 동안 여행을 떠난다. 1박 2일이 무슨 여행이냐 할 수 궁금하겠지만 목사들에게 1박 2일은 매우 긴 시간이다. 이번 여름에는 경남 통영시에 자리 잡은 욕지도로 갔다.


 

 

서울과 중부 지방에는 하늘이 뚫린 것처럼 억수 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힘들었지만, 경남 진주는 열대야와 폭염으로 짜증나는 날들을 보내던 지난 21-22일. 욕지도로 향하던 다섯 사람은 설렘으로 가득 했다.

 

욕지도는 경남 통영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25㎞ 떨어져 있는 섬으로 배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은 한려수도에 수 없이 솟은 섬들을 만날 수 있다. 상노대도·하노대도·안거칠리도·밖거칠리도·초도·소초도·연화도·우도·두미도·갈도 따위 크고 작은 섬들을 눈에 접하는 순간 뭍에서 찌든 삶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392m 천황산을 위로 두고, 팔손이나무·동백나무·풍란을 만나는 것도 욕지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욕지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은 쌀 세 말을 먹지 못하고 시집을 갔다는 옛말처럼 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굶어 죽는 법은 없는 법이다. 가파른 밭에서 나는 고구마 맛은 으뜸이다. 황토흙에서는 나는 고구마는 지금 순을 옮겨 심는다. 가파른 밭이라 경운기같은 농기계로는 밭갈이를 할 수 없어 아직도 소로 밭갈이를 한다. 올 겨울 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욕지 고구마를 먹을 것이다. 

 

 

척박한 땅이지만 욕지도는 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쉼을 준다. 쉼표다. 욕지(欲知 : 알고자 하거든)라는 이름은 선문답같은 뜻이다. 묻고 답하면서 사람과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자 할 때 떠날 수 있는, 갈 수 있는 섬이다.

 

한때는 3만 7천명이나 되었던 사람이 이제 1774명이다. 다들 떠났다. 떠난 이들이 있지만 뭍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는 욕지도는 제주도처럼 화려하지 않다. 뽐내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이 한순간 거센 파도로 욕지도를 때린다. 쌀이 풍부하지 못해 빈약하지만 고구마와 풍부한 해산물로 배고프지 않은 섬, 대단하지도 않은 소박한 풍경이 펼쳐진 섬이다.

 

특히 입석 마을에서 유동 마을로 가는 해안도로에서 만나는 '삼여'(三餘)는 경탄을 자아낸다.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하는 세 가지 여유로움을 사람은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 삼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찌들어버린 우리 인생들이 새겨야 할 말이며 삼여를 바라보면 한순간에 여유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삼여전망대에는 청마 유치환이 쓴 '바닷가에 서서'라는 시가 적힌 시비가 있다. 물론 청마가 삼여에서 '바닷가에 서서'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파도 소리가 귀를 두드리고, 깨어지는 파도는 눈을 자극한다.

 

<바닷가에 서서>

 

나의 귓전을 쉼없이 울림하고 스쳐가는 바람이여

창망히 하늘과 바다의 끝간 데 없음이여

하염없이 닥아치는 파도여

-그리움이여

옷자락처럼 네게로 네게로만 향하는 그리움이여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없다.

아니다, 나만 있다.

천지간에 나만이 있다.

아슬한 하늘 끝 파도소리 바람소리 되어 나만이 있다.

 

구름 밖의 학의 울음 같다.

젓대소리 같다.

천지는 비고

한가락 읊조림만이 남아 있어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유치환-

 

욕지도는 북쪽만 조금 평탄할 뿐 남쪽은 해식애(海蝕崖-해식과 풍화 작용에 의하여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가 발달하여 절벽을 이룬다.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해식애를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욕지도 자신 앞에 우리를 세웠다. 자랑하지 말라고, 교만하지 말라고, 제발 겸손하라고 한다.

 

 

'1박 2일' 그곳을 보고 왔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 한증막 같은 무더위가 뭍을 아픔과 짜증나게 하는 시간에 욕지는 평온하고, 깨끗하고 선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했다. 욕지는 진정 쉼터였다.

덧붙이는 글 |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여기에 실린 모든 사진은 욕지도 여행에 동행했던 '정은실 목사'가 찍은 사진입니다. 정은실 목사 허락을 받고 실었음을 알립니다.


태그:#욕지도,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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