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마당 깊은 민박집 마당에서 다 함께 만찬 중인 고등학교 2학년생 30명.
 마당 깊은 민박집 마당에서 다 함께 만찬 중인 고등학교 2학년생 30명.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여름방학 때 경남 남해 쪽 상주해수욕장으로 학급 수련회 갈까 한다. 어뗘?"
"와~~~~~~~~! 좋아요!!"

여름방학 두어 달 전부터 교실 탈출(?) 계획을 세웠다. 30명이 함께 자려면 민박집 한 채를 빌려야 했다. 무엇보다 교감·교장 선생님의 결재가 필요했다. 학부모 동의를 받는 일도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일사천리였다. 얼음에 박 밀 듯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남해 민박집 아줌마는 올해 들어 방마다 에어컨까지 설치했다며 흔쾌히 예약을 받아주셨다. 교감·교장 선생님은 '안전사고 유의'만 강조하고 기안 서류에 사인을 하셨다. 학부모님들은 가정통신문에 딸린 참여 동의서에 동그라미를 해주셨다. 내키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대비 차원에서 여행자 보험도 들어뒀다.

지난 7월 26일부터 27일까지 '바다 찾아 추억 만들기'라는 제목을 달고 학급 여행을 다녀왔다. 인문계 고교 2학년생 30명 그리고 담임교사인 나는 대전에서 남해까지 사각 교실을 벗어나 드넓은 바다에서 후회 없이 즐겨보기로 했다.

26일(토) 오후 3시에 출발, 저녁 6시 30분경 남해 상주해수욕장 인근 민박집에 도착했다. 방을 배정한 후 여장을 풀고 저녁 잔치를 준비했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행복을 느꼈다

밥을 위한 기도? 밥은 언제쯤 다 되는 걸까?
 밥을 위한 기도? 밥은 언제쯤 다 되는 걸까?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고교 2학년 남학생들이 여섯 조로 나뉘어 밥을 짓고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였다. 다소 서툴고 부족했으나 조별 만찬을 하며 배불리 먹었다. 하나 둘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담임의 입 안에 넣어주는 제자들의 손길에서 행복을 느꼈다.

밤바다 모래사장에서 체육 활동을 했다. 닭싸움과 씨름이었다. 지난 5월 체육대회 때 5연승으로 씨름 우승을 거머쥔 문진이와 근호가 접전 끝에 무명 신인들에게 무너지기도 했다. 샅바 없이 바지춤을 잡았으니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했으리라. 아무튼, 이변이 속출하면서 즐거움도 가득했다.

샅바 없는 씨름이라 바지가 찢어져 속옷이 보이네?
 샅바 없는 씨름이라 바지가 찢어져 속옷이 보이네?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체육 활동을 마치고 모두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가슴 위 수심까지는 근접도 하지 않았다. 입이 닳도록 안전교육을 한 탓이었다. 밀치고 물에 빠트리며 도망 다니며 물싸움을 하고 민박집에 들어왔다.

우물가에서 속옷만 걸친 채 집단 샤워를 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라고 하지만 성인다운 몸매가 느껴지기도 했다. 벗은 옷은 빨랫줄에 올려졌다. 빨랫줄을 떠받치고 있는 대나무 작대기가 정겹게 느껴졌다. 담임인 나는 제자들을 떠받쳐주는 작대기가 되고 싶었다. 빨랫줄에 다양한 종류의 옷가지들이 널렸다. 그것이 다양성이고 개성이리라. 정감이 넘쳤다.

"물이 그렇게도 싫어? 좀 들어가 보자니까!"
 "물이 그렇게도 싫어? 좀 들어가 보자니까!"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첫날밤, 우리는 마당에 모두 모여 과자 파티를 하며 자유롭게 회포를 풀었다. 밤하늘 별들이 우리가 머무는 민박집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간 기다란 폭죽을 30명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하며 느꼈던 나쁜 감정을 모두 태워버리자고 주문했다. 일제히 불을 붙였다. 반짝이며 타들어가는 폭죽을 빙빙 돌리기도 하며 둥근 원 안에 새로운 다짐을 담아두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면서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늦게 잠이 들었다.

"바람 조심해서 잘 넘겨 봐!"
 "바람 조심해서 잘 넘겨 봐!"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다음 날 아침, 나는 힘차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피곤도 잠시, 졸린 눈을 비비며 하나 둘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조별로 준비된 다양한 메뉴가 선을 보였다. 된장찌개·카레라이스·라면, 아침 식사로는 무리일 것 같은 삼겹살·참치찌개·주먹밥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백사장에 모여 비치발리볼 경기를 했다. 야속한 바람, 어설픈 실수, 팽팽한 접전 등 모든 분위기가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점심 전까지 신나게 해수욕을 즐겼다.

매주 한 번은 교실 밖 여행을 떠나고 싶다

"돌아가려니 우울한데…, 좀 웃어 봐!"
 "돌아가려니 우울한데…, 좀 웃어 봐!"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3시경 버스에 올랐다. 30분도 안 되어 모두 잠이 들었다. 꿀잠이었다. 대전에 도착하기 직전에 버스 안에서 종례를 했다.

"부모님께 감사드리자!"

여행 후 이틀째. 아이들의 눈빛이 매섭다. 여행 후 마음을 새롭게 다잡은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름방학 방과후학교(교과 및 자율학습)가 8월 12일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실제 방학은 일주일밖에 안 된다. 사실 그 일주일마저 입시경쟁에 몰입하게 되니 차라리 방학은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주 한 번은 교실 밖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대학 진학 앞에서 그런 생각은 현실에 역행하는 사치다. 기쁘게 마무리해야 할 글이련만 탄식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도대체 언제쯤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밥 먹고 충분히 잠자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하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


태그:#수련회, #여름 방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