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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배달된 음식을 옮기는 모습.(자료사진)
 사무실에서 배달된 음식을 옮기는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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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일해서 300~400만원 정도 수입이 가능한 일이 필요했다. 대학을 막 졸업했지만 취업할 능력도 생각도 없던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는 예비실업자로 지낼 때다. 당장은 건설현장의 노동일이 떠올랐지만 아는 사람도 없이 몇 개월씩 계속 일거리를 찾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에 생활정보지 구인란에 넘치던 중국집 배달기사 모집을 보고 '자장면도 좋아하는데 잘 됐다'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중국집 배달기사, 이른바 '철가방' 이다.

3차 방정식보다 힘든 '배달 방정식'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보통 밤 10시가 돼야 끝나는 '철가방' 일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철가방'은 보통 중국집의 (나이로나 일의 성격으로나) 제일 막내여서,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 잡다한 심부름과 정리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오전 11시 전의 준비일이나 마지막 배달을 받는 저녁 9시 이후의 정리일이 적지 않다. 화장실 청소는 기본이고, 각종 재료의 손질이나 반찬그릇의 준비나 정리 등등….

본격적인 일은 배달 주문이 쏟아지면서 시작하는데 처음엔 배달그릇을 랩으로 싸는 일부터 막혔다. 자장이나 탕수육은 그나마 수월하지만 짬뽕이나 우동 종류의 뜨거운 국물을 새지 않게 랩으로 정확하고 신속하게 감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피라미드의 미이라 감싸듯 랩으로 덕지덕지 포장 아닌 포장을 해 가면 손님들은 랩을 벗기기 힘들다고 투덜대기 일쑤고 심지어 '니가 싸온 거, 니가 풀어놓고 가라'는 손님도 더러 있다.

배달 자체도 음식을 오토바이에 싣고 달린다는,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어서 실질적인 배달은 전화로 주문된 전표가 주방으로 넘어오면서부터 시작한다. 능숙한 배달기사는 주문전표를 받아들고 어떤 주문을 어떻게 묶어서 갈 것인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음식이 나오는 순서는 배달전표가 들어온 순서와는 많이 다르다. 바쁜 시간에 정신없이 쏟아지는 주문을 어떻게 묶어서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마치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2차 혹은 3차 방정식을 암산으로 푸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순간순간 연습장도 없이 해결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변수는 배달할 장소와 메뉴다. 주문전표를 받는 순간 배달할 장소를 고려해서 비슷한 위치나 경유지별로 함께 묶어 철가방을 꾸린다. 여기에 '메뉴'라는 다른 변수를 고려하는데 일반적으로 자장은 음식이 나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상태와 맛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최대한 빨리 손님의 입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짬뽕이나 우동처럼 국물이 있는 면 종류는 자장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고, 밥 종류는 그보다 더 융통성을 부릴 수 있는 메뉴다.

물론 메뉴와 배달지라는 두 변수 외에도 손님들의 특별한 주문이나 주방에서 일이 진행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서 방정식의 변수가 증가되면 문제의 난이도는 높아져간다.

명색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나는 방정식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한 동생 배달기사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바빴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도 볶음밥에 숟가락을 빼먹거나 고춧가루를 신신당부한 손님들 앞에서 머리를 긁적거리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한참 정신없이 배달이 밀리는데도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주방의 넘버2인 칼잡이가 "형, 비켜, 여기 내가 썰던 양파나 마저 썰어" 하고는 직접 배달음식을 챙겨 뛰어나가기 도 했다. 내가 3단짜리 철가방에 보통 두 집, 많아야 세 집 정도 배달하는 동안 다른 배달기사들은 4단짜리 큰 철가방을 2~3개씩 들고 날라 다녔다.

서울 마포구 한 중국요리집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자장면이 주방에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 중국요리집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자장면이 주방에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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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오토바이를 이용하니 체력적인 면은 힘들게 없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어서 불과 한 달 만에 6㎏이 빠지는 환상적인 다이어트 체험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한 번도 홀쭉했던 적이 없던 내 뱃살이 '철가방' 생활 3주 만에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 기쁘면서도 황당했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4개월의 '철가방' 생활에 10㎏ 정도를 뺐는데 배달 일을 그만둔 후 불과 두 달 만에 원상복귀됐다.) 

4개월 남짓의 '철가방' 생활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공간 탓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몇몇 추억 아닌 추억을 남겼다.

채 두 달을 못 넘기고 45인승 대형 버스의 측면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릎을 4바늘 꿰매고 2주 넘게 절뚝거리며 배달을 하는가 하면, 한참 동생들인 동료배달기사들의 거친 일상에 본의 아니게 얽혀서 그들의 싸움을 말리며 숙소 가득 흩어진 핏자국을 닦아내기도 했다. 그들의 손등, 어깨, 등에 그리다만 낙서 비슷한 자국들이 채 완성되지 못한 문신이라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하기도 했고, 여름휴가철에 갑작스레 도망가거나 그만둔 배달기사들 덕에 3명이 하던 배달을 한동안 거의 혼자 한 적도 있다.

학창시절 시위현장에서 말고는 경찰들 피해 다닐 일이 없었는데 더운 여름에 헬멧을 꼬박꼬박 착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터라 한 여름 내내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같은 '배달의 기수'로 커피를 나르는 동종업계 여성들하고 안면을 트고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주변 유흥업소 도우미들의 대기실이나 여관방을 들락거리며 속옷 차림의 여성들을 실컷 구경하기도 했다.

철가방의 고단함은 배달도 배달이지만 빈 그릇 수거도 큰 몫을 한다. 배달이 좀 한가하면 오가며 생각나는대로 챙기기도 하지만 주말처럼 배달이 정신없이 밀리는 날은 점심시간 겸 쉬는 시간인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와 저녁 8시가 넘어 배달이 뜸해지는 무렵에야 빈 그릇 수거를 하게 된다. 빈 그릇이 정확히 나와 있으면 그나마 수월한데 밖에 내놓지 않고 외출한 집이나 엉뚱한 곳에 본의 아니게 숨겨논 경우 몇 번씩 다시 방문해서 챙겨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철가방은 빈 그릇으로 인격을 평가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출신학교나 가방 끈의 길이, 사는 동네나 아파트의 평수 등으로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이러한 기준들은 지나치게 세속적이지만 어차피 천박할 정도로 세속적인 대한민국에서는 훌륭한 정보가 된다. 하지만 '철가방'들은 수거하는 빈 그릇에 담긴 인격으로 사람들을 평가한다.

일본 주부들은 배달음식 빈 그릇을 설거지해서 내놓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설마?' 했다. 하지만 자장면 잔반과 짬뽕 국물로 찰랑거리는 그릇들에 엄지손가락을 담가가며 빈 그릇을 수거하다가 실제로 깨끗하게 설거지된 빈 그릇을 직접 보았을 때, 잠시, 당황했다.

사실 설거지된 빈 그릇이라고 거기에 바로 음식을 담아내 다시 배달할 수는 없다. 어차피 빈 그릇을 수거하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함께 들어가 잔반들과 뒤죽박죽되는 그릇은 주방의 싱크대에 쏟아질 운명이다. 하지만 배달 음식과 빈 그릇에 이정도의 '예의'를 갖추는 사람들이라면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나 출신대학, 자동차 배기량 등에서 유추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품격을 지닌 이들이 틀림없다.   

그런가 하면 빈 그릇을 수거하면서 쓰고 있던 헬멧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는 경우도 있다. 일제치하 독립운동 하던 단체명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사무실에 자주 배달을 갔다. 사랑방 비슷한 용도로 사무실을 쓰면서 수시로 음식을 주문한 그 단체의 사람들은 아저씨와 할아버지 중간쯤 나이의 남자들로 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메뉴도 최소한 간자장이고 가끔은 요리와 고량주도 주문했기에 식당의 우량 고객이었다.

문제는 이 분들이 음식을 시키고 먹을 줄만 알지 그 앞뒤의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일단 음식이 도착하면 각자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야 하고 음식을 먹고 나서도 빈 그릇을 정리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이 지저분하니 얼른 빈 그릇을 수거하라고 난리다. 배달이 밀려서 조금 늦을라 치면 재촉하는 전화를 한다.

바쁜 와중에 씩씩대며 수거통을 들고 가면 각 그릇이 먹은 사람들 앞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담겨있던 그릇들에는 잔반과 뱉어 놓은 침과 입 닦은 휴지들이 지저분하게 엉켜있고 심지어 담배꽁초가 꽂혀 있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를 논하고 골프채를 휘두르며 폼을 잡는 게 너무나 가소로워서 딱 그 분들의 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복수 아닌 복수를 하곤 했다. 

어찌된 일인지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한 끼 식사에 충분한 시간과 품을 들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외식도 잦고 배달음식을 접하는 일도 많아진다. 우리나라 소규모 식당들이 위생이나 재료관리 등에서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식당음식과 배달음식 앞에서 우리는 음식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당당하다는 생각도 한다.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감이나 배려·인격·품위보다는 수요와 공급, 구매력과 고객의 권리만이 중요한 시대에 살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엔 가정에서 한 끼 식사만을 위해 시간과 품을 들이기 더 힘들다, 거기에 아이들 방학과 휴가철이 겹쳐서 '철가방'을 비롯한 배달의 기수들이 바빠지는 때이다. 가끔 신호를 무시하고 요란한 소리로 거리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들에 내가 너그러운 것은 7년 전 '철가방'의 추억과 다양한 모습의 빈 그릇을 보며 감동하고 씩씩댔던 기억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



태그:#아르바이트, #철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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