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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자체들이 '레드오션'으로 지목 받고 있는 저가항공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이미 직접 출자했거나 설립을 추진중인 지자체는 제주, 인천, 부산 등 전국적으로 4, 5곳에 이른다. 침체된 지방공항을 살릴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자칫 무분별한 설립으로 이어지면서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싱가포르 타이거항공과 제휴하여 인천타이거공항을 설립,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인천시 사례를 통해 지자체의 저가항공사 시장 진출에 대한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말]
"끝까지 반대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무슨…."

한 인천시의회 의원이 실명 공개를 원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장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시의원은 "같은 한나라당끼리 그렇게 해야 하겠느냐는 말을 들었었다"면서 "괜히 다 끝난 일 갖고 동료의원들에게 욕먹고 싶지 않다"고 실명 공개를 꺼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에서 할 사업은 아니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두 시의원이 공통적으로 지칭한 '사업체'는 바로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천타이거항공이다. 인천시(안상수 시장)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과 제휴하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인천타이거항공은 다음달 정기운송면허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항공사들이 '항공주권'을 외국에 팔아 넘기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최근 기존 항공업계와 인천시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인천-타이거항공 설립 주주협약 체결식
 인천-타이거항공 설립 주주협약 체결식
ⓒ 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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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의 '트로이 목마'?
인천시 "일부 항공사, 교묘한 논리로 국토부에 압력 행사"

현재 인천타이거항공 지분은 타이거항공이 49%, 인천관광공사 20%, 인천도시개발공사 16.3%, 인천교통공사 12.3% 그리고 인천시가 2.4%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항공사들은 외국정부, 외국 공공단체, 외국법인 또는 단체가 주식이나 지분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거나 그 사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을 금지한 항공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지분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천시가 항공사 운영경험이 없기 때문에 항공기 운항이나 정비, 마케팅 등 실제 사업 운영은 타이거항공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사실상 타이거항공의 지배 구조'라는 것이다. 국토가 좁아 국내선을 운영할 수 없는 싱가포르의 해외시장 우회 침투 전략에 인천시가 앞장서 '트로이의 목마' 역할을 자처하는 모양새란 것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자사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부 항공사의 언론 플레이"라고 반박한다. 13일 인천시 관계자는 전화를 통해 "산하공사 지분을 지자체 출자와 똑같다고 보는 것이 법률 자문단의 해석"이라며 "이사회 구성도 이사 5명 중 3명을 인천시 추천인사가 맡도록 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배구조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인천시 관계자는 "경영과 지배구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아니냐"면서 "항공기 운항, 정비, 마케팅 등 기존 한국시장에서는 불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오는 것을 두고, 사실상 외국 항공사의 지배구조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교묘한 논리로 국토해양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의회 의원 33명 중 32명이 한나라당인데...
설립 예산 전액 삭감, 조례 개정 자체 보류되기도

그러나 '항공 주권'보다 앞서 따져봐야 하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사업성이 있느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다음은 적합성이다. 아무리 '돈이 된다' 하더라도, 지자체가 해도 되는 사업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사업이 있다. 아울러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중요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인천시 의회 속기록을 살펴봤다.

사업성과 적합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에 반대 의사를 표시한 인천시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항공사 설립 관련 예산 40억원이 해당 상임위와 예결특위를 통해 전액 삭감되거나 항공사 설립을 위한 조례 개정 자체가 아예 보류된 적도 있었다. 인천시의회 의원 33명중 32명이 안상수 인천시장과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다. 시의회의 '불신'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년 11월 열린 항만공항물류국에 대한 감사를 통해 지정구 시의원은 "지금 그렇지 않아도 국내항공사라든가 국제항공사가 서로 경쟁이 치열해져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것을 왜 해야 되느냐"면서 "결국 발 담궈 놓고 빼지도 못하고 예산 낭비만 하지 않나 염려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성숙 시의원도 "인천시가 벌여 놓은 일이 많아 예산이 들어가는 종류도 너무 많은데, 저가항공까지 지금 이 시점에서 꼭 해야 하는 것이냐"면서 "운영 또는 허가에 대한 차분한 설득이나 준비 없이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인지 상당히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싱가포르의 타이거항공
 싱가포르의 타이거항공
ⓒ 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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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이야 망하면 끝나지만... 인천시가 무슨 영리기업이냐"
"자본금, 증자, 적자도 20년까지 타이거항공이 책임"

항공사업 진출 자체가 지자체 사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강하게 대두됐다. 박희경 시의원은 "뜨다가 한 방이면 가는 것이 비행기고,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전문항공사들도 그래서 휘청거리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면서 "민간기업이야 항공사를 하다 망하면 끝나는 것이지만, 인천시가 항공회사를 운영하다 잘못되면 결국 인천시민 모두가 손해를 본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특히 강석봉 시의원(산업위 위원장)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가항공사를 만드는 것은 큰 착오로, 인천공항의 허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이는 다른 많은 저가항공사가 인천으로 자꾸 몰리면 다 해결이 될 부분"이라면서 "그런데 우리가 왜 저가항공사들과 경쟁해서 돈 벌겠다고 하느냐. 인천시가 무슨 영리기업이냐"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측의 답변이었다. 당시 시의회에 출석한 백은기 항만공항물류국장은 "자본금 마련에 필요한 재정적인 부담은 전부 타이거항공사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협약이 되어 있다"면서 "증자도 전부 타이거항공에서 부담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 자체를 담보로 이뤄지는 장기간 대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이런 말도 있었다.

강석봉 "타이거에서 적자를 몇 년간, 계속해서 적자 나는 것, 끝까지 책임진대요?"
백은기 "끝까지…"
강석봉 "1년간? 3년간? 그냥 끝까지 적자는 자기네가 책임진답니까?"
백은기 "본 계약에 협약은 안 되어 있는데 얘기 주고받은 것이 적자에 대해서도 끝까지 자기들이 20년 간 책임지겠다 하는 것입니다."

"타이거항공이 인천시에 주식 51% 무상 양여"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청사진'이었다. 강석봉 시의원은 "적자를 인천시가 감당 안 한다는 계약은 불가능한 것이고, 국제법상으로도 그렇다"면서 "가뜩이나 국제법에 약한 우리 지방자치단체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항공사 설립을 위한 조례 개정을 위해 작년 12월에 열린 문교사회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총 자본금 200억원 중 시측에서 부담해야 되는 금액이 51%에 해당하는 102억원 아니냐"는 오흥철 시의원의 질문에 백 국장은 "102억원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거항공에서 거의 재정적인 부담을 갖는다. 인천시에 주식으로 51%를 무상 양여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달 열린 산업위원회에서 강석봉 시의원은 "여태껏 인천시가 채무를 상환해야 할 의무를 안 가지는 것으로 계속 보고했지만, 상법상 자본금 상환의무가 생길 때는 당연히 51%를 상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무상 양여가 아니란 점을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시측에서는 타이거항공측에서 돈을 다 대주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지금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몇 개월이 다시 흐른 지금, 인천시가 보고했던 '청사진'과 '진짜 그림'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초 인천시는 "관광공사가 40억, 타이거항공이 49%인 98억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특수목적법인 SPC를 설립하여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커버하겠다"고 시의회에 보고했다.

달라진 지분구조 "최종 결과로 이해해달라"
20년간 적자 책임 "강력한 주장으로 해석해달라"

하지만 현재 지분 구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실제 결과는 인천도시개발공사, 인천교통공사 등 산하 공사 지분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사 설립 관련 예산 40억원에 대한 사용 승인을 의회에 요청할 때와의 계획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13일 전화통화에서 "출자 구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쳤고 결국 산하공사를 통해 하는 것으로 귀결됐다"면서 "최종 결과라고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타이거항공사가 20년 간 적자를 책임진다고 협약했다는 속기록 발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는 "다소 오해되는 부분이 있는데 문서적인 계약이나 협약은 없는 상태였다"면서 "타이거항공사측의 강력한 주장으로 해석해 달라"고 덧붙였다.

결국 인천시의회는 '강력한 주장'을 근거로 항공사 설립 관련 예산 40억원에 대해 사용 승인을 해 준 셈이다. 당초 상임위와 예결특위를 통해 전액 삭감됐던 40억원은 2차 상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당시 항공사 설립을 반대하며 1차 상정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는 A시의원은 전화통화에서 "하도 강경하게 여기저기서 난리를 치고 시장이 중요한 사업하려고 하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압력이 여기 저기서 들어와 2차 투표에서는 손 들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시에서 장사?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냐"
"결국 치적 쌓기를 위한 이벤트 되지 않겠나"

하지만 A시의원은 "저가항공사 시장 경쟁이 이렇게 치열한 상황에서 이익을 반반으로 나눠야 하는 사업의 현실성은 백전백패라고 본다"면서 "그 때 시측에서는 무조건 '노 난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시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자체가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항공사 설립에 반대했던 B시의원은 "FTA라는 것이 단순히 식품이나 농산물만 사고 파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문화든 법률이든 다 오픈 되는 것 아니냐"면서 "능력 있고 돈 있는 국제항공사와 사고가 나서 책임 소재를 놓고 소송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인천시가 다 물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B시의원은 "항공 사업 특성상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당분간 적자가 불가피하고, 흑자가 난다 하더라도 계속 투자가 돼야 한다"면서 "최근 저가 항공사업에 뛰어들려는 지자체들이 자꾸 생기는 모양인데, 잘 안 됐을 경우가 문제다. 원래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역할을 의회가 대신 해줘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지자체가 민간 경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 적정하냐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게다가 최근 저가항공 시장 경쟁이 너무 심한 상황이다. 타당성이나 경제성이 있을 것인지는 시민들과 토론을 열어 합의를 구하고 가는 것이 정상적인 태도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결국 치적 쌓기를 위한 이벤트가 되지 않겠냐고 보는 시선들이 시민사회단체에 적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같은 당 소속 시의원들에게까지 사업성이나 적합성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던 인천타이거항공사 설립 추진에 그저 박수만 쳐줄 수 없는 이유들이다.


태그:#항공, #타이거, #인천, #싱가포르, #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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