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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정연주 KBS 사장을 축출한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그 전리품 처리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KBS 사장 자리를 일단 확보는 했는데, 그것을 통째로 먹자니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앞뒤 재고 체면을 차리자니, 그렇다면 무엇하러 온갖 욕은 다 얻어먹으면서 무리했을까,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경향>, '김인규 카드' 둘러싼 권력 내부 기류 전해

 

14일 <경향신문>이 1면에 보도한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 이후 후임 사장 인선 동향에 관한 기사는 권력 내부의 이런 기류를 잘 보여준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할 인사가 KBS 사장이 돼야 한다는 기류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 후보 선대위 방송전략실장을 지냈던 김인규 전 KBS 이사가 그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는 것.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후임 KBS 사장 문제는 김인규냐, 아니냐"는 문제로 "현재 흐름은 5대 5 정도"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차기 KBS 사장으로 유력시됐던 김인규 전 이사는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에 대한 여론의 역풍이 우려되자 "적어도 MB특보 출신은 안 된다"는 기류에 밀려 낙마가 유력시됐으나, 다시 재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청와대 '핵심참모'의 말을 빌려 "어차피 누구를 시켜도 반 이명박 세력은 반대할 것이므로 김 전 이사 선임시 정치적 부담은 있지만 정면 돌파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것과 같은 징후는 12일 오후부터 KBS를 비롯한 방송계 안테나에 잡히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인규 전 이사에게 이미 내정 사실을 통보했으며,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특히 이같은 전언은 KBS 관계자들을 통해 신속하게 퍼졌다. 그날 <조선일보> 등이 사설 등을 통해 정연주 사장 후임 인선이 중요하며, 정 사장 해임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MB맨이 후임 사장에 선임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한창 세를 얻기 시작하던 때였다.

 

김인규 전 이사에 대한 내락 통보설의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점은 그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김인규 전 이사를 비롯해 '김인규 카드'를 밀고 있던 권력 핵심 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KBS를 비롯한 방송계 안팎에서는 "결국은 김인규 전 이사가 KBS 사장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그 숱한 무리수를 감행하면서까지 정연주 사장 해임에 나섰겠느냐는 반문이다.

 

권력 내부의 기류도 간단치만은 않다. <경향신문> 보도처럼 청와대 안에서만 아니라, 뉴라이트전국연합이 12일 논평을 통해 "KBS 이사회와 정부는 새로운 사장에 대통령 측근이 가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는 등 김인규 카드를 살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KBS를 제대로 손을 보기 위해서는 KBS를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이 가야한다는 논리이자 주장이 그 뒷배경을 이룬다.

 

 

<조선> "후임 KBS 사장 MB맨 심었다간..." 사설 같은 기사까지 동원

 

하지만 김인규 카드로는 절대 안 된다는 기류도 만만치 않다. 이런 기류 내에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많다.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는 데는 한 목소리였지만, 비판여론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BS 사태가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선일보>는 '김인규 카드'를 주저앉히는 데 가장 적극적이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 해임안을 처리한 다음날인 12일 사설('KBS 사장 인선부터 이 정권 인사 바로잡아야')에서 KBS 후임 사장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정권에서 독립된 사람'을 제시하면서 그러나 "과연 제대로 사람을 임명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공기업에 대한 측근들의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등이 횡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KBS 후임 사장 인선 역시 '자신의 사람'을 앉힐 개연성을 경고했다.

 

14일자 <조선일보>의 KBS 사장 인선 관련 기사 "후임 KBS 사장 MB맨 심었다간…"은 마치 사설 같은 제목을 뽑았다. 후임 KBS 사장에 MB맨을 임명하면 "제2의 촛불 부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내부'를 인용해 정연주 사장의 '버티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도 "국민과 KBS 내부에서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이 후임 사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은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 쇼'와의 인터뷰에서 "정권 창출에 공이 많은 공신을 임명하게 되면 국민이 보기에 진짜 방송장악이 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가 사설 같은 기사를 통해 MB맨의 KBS 사장 임명 개연성에 대해 '촛불'까지 들먹이며 우려하거나, 이경재 의원 같은 이들이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경향신문>이 전한 것처럼 '김인규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며, 강행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권력 핵심에서 볼 때 "죽 쒀 개 줄 수는 없다"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그 사람들의 의사결정 패턴을 보자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KBS 이사회는 13일 KBS 사원들의 저지 집회를 피해 마포의 한 호텔에서 친여성향 이사 6명이 주축이 돼 KBS 후임 사장 인선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이 역시 9월 3일 방송의 날 이전에 KBS 후임 사장 인선을 끝낸다는 당초 시나리오 일정대로다. 이 역시 KBS 후임 사장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볼 수 있는 징후들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 권력 구조 안에서의 반발 기류 역시 만만치 않아 그 갈등이 노골화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오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전하고 있는,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 이후 권력 내부의 한 단면이다. 그 결과가 나오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을 것이다.


태그:#김인규, #정연주,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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