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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며 안타깝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재래시장이 죽어 간다는 것이다. 비록 여건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주차하기 힘들고 여름에는 덥고 걸치적거리는 것 많고 겨울에는 춥고 카트 끌고 다닐 수도 없으니 신세대가 아이들 데리고 쾌적하게 장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상품 또한 깨끗하게 포장되지 않아 왠지 싸구려 같아 '마트나 백화점에 장보러 간다'는 말과 '시장에 장보러 간다'는 말이 격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여행을 하며 그 지방 맛을 보기 위해 백화점이나 마트를 들러본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수 있다. 분위기 즐긴다고 지방에 가서 양식을 먹겠는가, 일식을 먹겠는가, 패스트푸드를 먹겠는가? 아무리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편한 것을 찾는다고 하지만 전국적으로 동시에 똑같은 방송을 보고 똑같은 브랜드의 상품과 음식, 백화점과 음식점을 접한다면 <1984년>(조지 오웰)이 따로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빅브라더 감시 하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는 구차한 삶인 것이지.

 

새벽에 내려왔는데도 죽도시장 가는 길은 물어보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장은 열리지 않았지만 24시간 영업하는지 비 뿌리는 어둠 속에 문을 열어놓은 음식점이 여럿 있다. 포철과 오어사를 보고 낮에 찾으니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마 내가 본 재래시장 중 이만한 규모와 인파가 많은 것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우선 주차가 힘들다. 겨우 주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니 순수하게 장보러 나온 사람들보다는 구경하고 먹으러 온 사람이 반이 넘는 것 같다.

 

죽도시장은 수산물, 농축산물, 잡화 등이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주로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수산물 시장이다. 바닷가에 인접한 어시장답게 고기들은 함지 속에서 꼬리를 힘차게 파닥이며 물을 튀기고 가게마다 생선과 해산물을 써느라 정신이 없다.

 

상추 위에 올려놓은 전복, 부위 별로 써는 고래고기, 물려고 집게를 벌렁대는 대게를 소쿠리에서 수조로 담그는 주인, 커다란 문어를 시멘트 바닥에 널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 갯수를 세지 않고 대충 쓰레받기로 나무궤짝에 양을 맞춰 담는 상인, 돈을 세고 있는 상인, 참을 먹고 있는 상인, 둘러서서 회 써는 모습을 보는 구경꾼들, 오다가다 맛배기 쥐포를 집어들고 먹는 사람들이 모두 활기차 있다.

 

그러나 이만한 규모의 시장에 산매만 활발할 뿐, 돈이 되는 도매기능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침, 낮 두 번 이 구역을 돌아봤으나 지방 군소도시로 출하되는 상품집하장을 보지 못해 이곳도 예전의 명성을 잃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넓직한 시장을 돌아보며 노점에 앉아 진열해 놓은 전복 한 접시를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양념집 메뉴판을 보니 성게알비빔밥과 물회가 있다. 성게알은 으레 동해에 가서도 한 접시 시켜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지만 성게알에 비벼먹는 밥은 어떨까 궁금하고, 물회는 고작 서울에서 사이다에 섞어 먹거나 제주에서 자리물회 먹은 기억밖에 없다.

 

양념집이니 만큼 기본상은 간단하다. 싱싱한 주홍빛 속살을 드러내는 멍게가 먹음직스럽다. 드디어 밥 위에 양파 썰어 뿌리고, 성게알 덮고, 깨 듬뿍, 김과 쪽파 썬 것으로 모양을 낸 양푼 하나와 오이 무 채썰어 버무린 것에 생선회와 얼음덩어리가 들어간 양푼 하나 나온다. 성게알 비빔밥은 양념간장에 비비고, 물회는 초고추장이 아닌 일반 고추장을 넣고 물을 넣어 섞으란다.

 

젓가락으로 비벼놓으니 우선 때깔이 좋다. 성게알 비빔밥은 초가을 은행나무를 보는 듯하고 물회는 붉은 단풍을 보는 듯하다. 한 숟깔 뜨니 배릿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성게알만 먹었을 땐 바다 비린내가 입안에 퍼지는데, 사람 손맛이 들어가 길들여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반 고추장으로 섞은 물회는 또 다른 맛이다. 식초와 사이다를 넣지 않을까 했으나 이 동네 식으로 물만 넣고 비빈다. 담백하다. 옛사람들도 바다에서 고기 잡아 회쳐 먹을 때 매콤, 새콤, 달콤한 초고추장으로 먹었을까? 이렇게 먹으니 고추장 대신 된장에다 물회를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나는 밥을 급하게 먹는 편이지만 쉬이 없어질까봐 천천히 음미하며 한 숟갈씩 떠먹으며 이대로 포항을 떠나야 하나 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아 이럴 때 '쏘주' 한잔 들이킬 수 없다니...

 

"여보. 우리 여기 하루 더 있으면 안 될까?"

 

포항제철과 오어사 기사가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연세56치과-포철. 오어사 보기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죽도시장, #성게알비빔밥, #물회,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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