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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 쓰나미가 밀어닥쳐 크나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어느 큰 교회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기본이 안 된 말을 했다지요. 불과 얼마 전 다른 큰 교회 목사는 촛불시위에 대해 ‘사탄’이라는 말로 뱉었다죠. 종교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국에 가서 개신교인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지요. 최근에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서울광장에서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기념 특별기도회를 열었지요.

 

일상으로 눈을 돌리면 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소음을 일으키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죠. 혼자 조용히 바람을 쐬고 있으면 어느 사이 다가와서 ‘복음 좀 들어달라’는 젊은 친구들도 만나볼 수 있어요.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지요. 이건 일제침략기와 한국 전쟁, 이어지는 군사독재와 반공주의가 맞물리며 태어난 역사의 비극인데요, 요즘 그 슬픈 광경이 더해가네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할 때 일명 ‘고소영’이라 하여 특정교회가 언급되더니, 지난  달에 있었던 서울교육감선거는 교회에서 투표가 이루어지더군요.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불교계가 성토하기에 이르렀지요.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은 사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네요.

 

한국 개신교는 세계에서 미국과 더불어, 그리고 그 이상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에 빠져있지요. 하나님(개신교에서는 하나님,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란 표현을 쓴다)에게 ‘선택받은 그들’은 보통 사람들을 전도해야할 ‘죄에 빠진 어린 양’으로 바라보죠. 그렇기에 합리에 기초를 하여 토론을 하고 상식에 따라 행동을 하기보다는, 편견으로 상대를 대하고 독선으로 타인을 판단하죠.

 

이럴수록 개신교에 대한 불만과 비판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욕을 하는 건 ‘자기만 옳은’ 한국 개신교와 똑같아지는 거지요. 공부를 해야지요. 이런 저런 한국 개신교 비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논리도 살펴봐야죠.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있는 약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예수에 대해서도 알아야죠.

 

예수와 개신교에 물음표를

 

김곰치가 쓴 장편소설 <빛>은 조경태와 정연경이라는 두 남녀를 내세워 예수와 개신교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에요. 사회의식을 지니고 이성주의자인 주인공 조경태가 하는 독백과 그가 ‘성령잉태설’과 ‘성경무오류설’을 믿는 정연경을 만나면서 나누는 이야기로 책은 진행되지요.

 

책 초반부에 벌써 ‘한없이 팽창한 하느님(책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표현)의 푸른 성기를 감상하였다. 성기가 뿜어내었던 허연 구름 덩어리가 점점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문장에 덜컥 마음의 빗장이 풀리네요. 아니,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 거야 하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규범과 잣대들을 돌아보게 되지요. 심지어 예수가 똥 누는 장면을 묘사하지요. 기독교인들이 불경하다고, 신성모독이라고 비난이 일 수 있는 글들을 보며 지은이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는 걸 느낄 수 있네요.

 

그렇지만 이런 표현들은 책 주제로 가는 표지판일 뿐, 이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면 지은이가 준비해놓은 풍성한 ‘생각거리’를 놓치게 되요. 책 속에 정성껏 차려놓은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면 그가 생각하는 예수를 만날 수 있지요. 그는 친구인 예수를 말하네요.

 

“요한복음 15장에 묘사된 예수는 이렇습니다. 죽기 전날 밤의 예수예요.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한 뒤,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 너희도 하느님 나라를 다 알게 되었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으니, 너희가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책에서

 

책을 읽고 나니 자신이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을 곱씹게 되네요. 예수의 마지막 가르침이 ‘서로 사랑하라’인데 예수를 따른다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하고 있나요? 그 ‘서로’는 자신들에게만 해당되나요?

 

예수야, 친구하자

 

예수의 계명을 행하면, 마음 깊이 받아들여 전심전력으로 노력하면 친구라는 얘기에 주인공은 예수와 친구가 되는 ‘선심’을 써줘요. 지구상의 물질을 가지고 끝없이 재활용하는 하느님이기에 자신이 예수보다 2천살이 더 많다는 이유이죠. 그러면서 “고매한 인격,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였고 말과 행동이 거의 완전히 일치한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 생살에 못이 박히는 십자가 참형으로 죽어갔다는 것이 너무 불쌍해 그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제 예수의 죽음에 더 이상 전율하지 말고 지금 세상에서 더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네요.

 

예수 스스로도 가장 간절히 원한 ‘친구 사이’가 되려면 예수만 마냥 높일 수 없지요. 위대한 인물인 예수처럼 되려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끝없이 자기 성장을 위해 애를 써야겠죠. 하지만 나약하고 기대는 게 편한 사람들은 예수를 부르짖으며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는데, 이걸 ‘거지 근성’이라고 따끔하게 꼬집네요.

 

신성화된 ‘환상속의 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그려내려 하지요. 예수도 ‘하느님의 현신’이었다고 해도 사람이었으니 똥을 누었겠죠. 그는 예수가 사람임을 보여주며 모두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존재라는 것, 천국이 저 하늘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 우리 손으로 가꾸어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죠.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죽기 전까지 예수는 가난하고 약자의 편에 서며 불의에 항거하고 사람을 위해 살았던 존경스러운 분이죠. “그대보다 나는 훨씬 오래 살 거고, 두 배 세 배로 많은 똥을 눌거야!” 라고 다짐을 하는 부분에서 예수처럼 살아서 예수와 친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네요. “에이, 모르겠다가 아니라 아아, 모르겠다입니다. 에이, 술이나 마시러 가자가 아니라 아아, 열심히 살아야겠다입니다”로 달라진 마음가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네요.

 

성경의 많은 구절 가운데 자신이 보고 싶은 거만 보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고 덜어내고 더해져서 이루어진 성경의 해석권은 어느 선택받은 자만 할 수 있는 걸까요? 왜 기독교의 원산지인 유럽과 다르게 한국의 큰 교회 목사들은 부자들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내고 있는 걸까요? 서울 밤하늘에는 빨간 십자가가 그렇게 많은데 예수처럼 사는 사람은 왜 적을까요?

 

성경무오류설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겠고, ‘성령잉태설’에 대해 놀랄만한 구절을 소개할게요. 어떻게 잉태되었는지는 마리아만이 알겠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예수도 똑같이 마리아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온 사실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상당히 신선하네요.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해도, 근데 그게 뭐 중요하노. 성령으로 생겨난 예수도 마리아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엄마 영양분을 빼앗아먹으며 자라야 했다. 열 달이 지난 뒤 양수로 몸이 번질거리는 상태로 자궁을 열고 응애!하고 나왔다. 중요한 건 그거거든.”

- 책에서

 

작가의 정성과 삶이 담겨있는 책

 

글쓴이 김곰치는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로 제 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뒤 전국 곳곳을 뛰어다니며 환경 파괴되는 현장을 취재한 르포집, <발바닥 내 발바닥>을 낸 작가예요. 그가 9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빛>은 그의 이력과 삶이 배어있죠. 주인공 조경태는 지은이 김곰치(본명이 김경태)의 분신이라 할 수 있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그답게 책에서는 시시콜콜한 실제 부산의 모습들을 담아내죠. ‘지역 출판사가 잘되어야 한다’는 평소 생각대로 부산에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어 모든 게 서울중심인 세태에 저항을 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주지 않는 곳에 시선을 주고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던 그의 르포들을 읽었기에 더 믿음이 가는 걸 숨길 수 없네요. 글은 그 사람을 말해주잖아요. 아무나 못하는 일을 꿋꿋이 하는 그 같은 이가 세상의 ‘빛’이겠죠. 그가 독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써서 마음의 우체통으로 보낸 이 책은 완결되지 않았고 읽는 이가 눈길을 줄 때 의미를 갖고 살아나는 독특한 책이에요. 그의 뜨거운 정성과 존경스런 삶이 담겨있는 이 책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곰치 지음, 산지니(2008)


태그:#빛, #김곰치, #산지니, #종교편향,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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