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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사동에 새로 문을 연 갤러리현대강남점. 외부와 내부
 강남 신사동에 새로 문을 연 갤러리현대강남점. 외부와 내부
ⓒ 갤러리현대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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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을 주도해온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가 2008년 9월 3일 강남점을 열었다. 이는 한국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한 징조인가. 경제가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하여간 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 등 강남일대에 새로운 문화벨트가 생긴 셈이다.

그동안 갤러리현대는 오지호, 도상봉, 김기창,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임직순, 윤중식, 이대원, 김흥수, 권옥연, 천경자, 서세옥,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김종학 그리고 박생광까지 한국의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다 거쳐 나갔다.

특히 1995년 '박수근30주년기념전'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소박한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의 작품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연일 수많은 인파가 넘쳐났다.

현대인은 문명과 가까워지다 보니 자연과는 자연히 멀어진다. 그래서 전보다 더 미술에 대한 욕구가 더 높아지고 그림으로 자연과 못하는 교감과 소통을 나누려고 하는지 모른다.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 조형으로 세계화시킨 추상1세대, 김환기

김환기 1966~1968년 추상화 연작들
 김환기 1966~1968년 추상화 연작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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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1층에 우선 김환기(1913~1974) 작품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는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나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 속에서도 모더니스트의 한 전형으로 살았다. 오직 미술을 사랑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서울과 동경, 파리와 뉴욕을 유성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는 한국적 남도정서를 세련되고 현대화된 조형으로 세계화시킨 한국추상미술1세대다. 그의 색감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고 지역적이면서 지구적이고 동양적이면서 서양적이고 그래서 드디어 예술의 보편성과 세계성, 창작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획득했다.

김환기 1966~1968년 '무제' 등 추상화 연작들
 김환기 1966~1968년 '무제' 등 추상화 연작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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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조국을 한없이 그리워하며 뉴욕생활 7년째인 1970년 정월 어느 날 일기장에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고 적으며 향수를 달랬다.

이 세상에 청색계열이 많지만 그만의 청색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의 고향에서 본 밤하늘과 물결치는 푸른 바다의 색감이 정제되고 세련된 감각으로 화폭에 오롯이 수놓고 있다.

김환기 '겨울밤' 등 1966~1968년 추상화 연작들
 김환기 '겨울밤' 등 1966~1968년 추상화 연작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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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색의 신비한 색감에 빠져 황홀경을 맛볼 수 있은 사람은 행복하리라. 하늘과 바다의 푸름이 무수히 많은 점과 선과 만나, 별과 꽃처럼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다.

그림과 교감이 이루어지면 눈물과 환희가 겹쳐지고 언어를 뛰어넘는 고요와 평화를 맛보게 된다. 김환기 같은 예술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 아니 무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잉태한 신세계 속에 들어가면 우리도 모르게 새로운 인간이 될 것 같다.

비디오를 붓으로, 물방울을 혼으로 변형시킨, 백남준과 김창열

한국미술의 두 거장 백남준과 김창열. 2층 전시실에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와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
 한국미술의 두 거장 백남준과 김창열. 2층 전시실에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와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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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1932~2006)과 김창열(1929~), 그들은 엇비슷한 세대로 1969년 백남준이 김창열을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시키는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이때부터 김창열은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어릿광대 같은 백남준의 광기와 구도자 같은 김창열의 열정으로 넘치는 두 사람이 같이 서 있는 사진을 보니 서로에게 응원의 손짓을 보내면서 눈빛이 단번에 통하는 것 같다. 백남준의 천진무구한 웃음과 김창렬의 과묵한 표정이 음양의 조화처럼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김창열 물방울 연작 '회귀(Recurrence) SHP3000(1993, 왼쪽)'와 'SH08002(2008)'
 김창열 물방울 연작 '회귀(Recurrence) SHP3000(1993, 왼쪽)'와 'SH08002(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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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의 물방울, 모든 물질의 근원이자 모든 이들에게 생명의 젖줄을 주는 어머니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이 세상에서 물보다 두루 이익을 주는 것이 없다는 비유가 떠오른다.

그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물방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파리의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또 마음에 안 들어 유화색채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위에 물을 뿌려놓았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습니다."

또한 김창열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자신과 예술에 대한 정체성을 찾으려 누구보다 고심한다. 바로 그때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깨끗이 씻어줄 것 같은 물방울이야말로 자신에 맞는 오브제라 생각한다. 또한 물방울이 불교의 공(空)이나 도교의 무(無)와 같은 동양적 세계관을 잘 상징하기에 이에 몰입한다. 

백남준 '티브는 키치(TV is kitsch)' 1996
 백남준 '티브는 키치(TV is kitsch)' 1996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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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백남준의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의 상상력이 발동한 것인가. 이 천재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수학자에 가까운 과학적 이성은,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묶고, '예술과 자본'의 관계도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됨을 창조적으로 융합한 21세기형 인간표본이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이제 우리에게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간 행복한 사내였다. 이 낙천주의자의 얼굴이 찡그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창조적 작업은 동서의 벽을 넘어 모든 걸 융합시키는 '비빔밥 정신'에서 왔다.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믿었던 그는 비디오를 붓 삼아 바이올린 등을 부수는 광란으로 구시대의 우상을 파괴하고 참여와 소통을 통해 문화민주화를 추구하며 인간미가 넘치는 테크놀로지의 꿈에 도전했다. 그는 이제 하나의 신화로 우릴 밝히고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우리시대 탁월한 시인이고 철학자, 이우환

이우환 연작 '선으로부터' 1980
 이우환 연작 '선으로부터' 198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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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탁월한 시인이자 철학자인 이우환(1936~)은 동양정신과 철학으로 서양의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는 지적인 작가이나 이에 얽매이기보단 오히려 시적 직관을 택한다. 그리고 그의 예술이 철학에 바탕을 두기에 더욱 빛난다.

그는 어려서 서예를 배울 때부터 몸에 밴 하나의 습관은 선을 긋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방울 하나가 바위를 뚫듯이 그가 그린 반복되는 선은 결국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는 이제 선의 미학으로 동서양을 뛰어넘은 거장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더 일본적이고 더 유럽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스스로 만든 '5대 6대 1의 원칙'이 있다. 즉 1년의 5개월은 일본에서, 6개월은 유럽에서, 1개월은 한국에서 지낸다는 뜻이다. 그는 그렇게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떠돌이이다.

이우환 '조응(Correspondence)' 1996
 이우환 '조응(Correspondence)' 1996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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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관계망(relatum)'과 '조응'(correspondence)의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제자리에 놓을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했다. 또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는' 그래서 절제되고 순화된 감정을 표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여백의 미를 무수히 언급해 왔지만 이우환처럼 이를 제대로 소화하고 그것을 세계화시킨 작가는 드물 것이다. 이제 한국미술의 스타작가가 된 이우환은 자신의 작품이 너무 비싸게 팔리는 것을 꺼려한다. 그가 위선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우환 '바람과 함께(With winds)' 1987
 이우환 '바람과 함께(With winds)' 198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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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일으킨 '바람과 함께'에서 동양미의 극치라 할 기운생동의 본령이 보인다. 우주만물이 용트림하듯 일으키는 바람이 여기저기에 불어온다. 그 바람 중 '동아시아의 인간을 재발견하는 르네상스의 바람'이 신명나게 일기를 빌어본다.  

유럽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민주화)를 기반으로 프랑스의 대혁명(정치민주화), 영국의 산업혁명(경제민주화), 독일의 종교개혁(종교민주화)이 더해져 전성기의 토대를 쌓는다. 근현대미술도 인상파, 야수파, 표현파를 지나 다다, 초현실파, 입체파, 추상파로 전성기를 이뤘다. 결국 그 기원은 다 이탈리아의 문예부흥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1·2차 대전이 발발했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나와 유럽의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들이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드디어 문화의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그 기운은 동에서 서로 번졌다. 그리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호기를 맞아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선진사회가 되어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을 세계화시키고, 더 나아가 베이징과 도쿄와 서울을 잇는 문화벨트를 만들어 '21세기 동아시아 르네상스'에 큰 몫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현대강남점]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40-6번지 전화 02)519-0800 전시는 9월 28일까지
약도 전철 3호선 압구정역 2번출구 하차. 자세한 내용 홈페이지 참고 http://www.galleryhyundai.com
김환기, 백남준, 김창열, 이우환 외에도 유영국, 정상화, 문승근의 대표작과 지하1층에는 오치균의 '산타페전'과 3층에서는 '센시티브 일루전'전이 열린다. 전시공간은 지하1층, 지상3층의 1500여㎡(450여평) 국내에선 최대규모.



태그:#갤러리현대강남점, #김환기, #백남준, #김창열, #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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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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