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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8일 환헤지 피해 대책 마련 공청회를 여는 등 '키코(KIKO) 사태'가 정치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여당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금융 당국과 은행 쪽 역시 실효성을 대책을 내놓지 못해 중소기업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키코는 환율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수출 중소기업이 은행 권유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집중적으로 가입한 통화옵션상품이다. 하지만 환율이 급등하자, 수출 중소기업은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다. 이들 기업들은 현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날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마련한 공청회에는 키코 피해 중소기업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환율이 널뛰기 하는 건 현 정부가 무능한 경제 운용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경제 운용하겠느냐"며 이명박 정부의 환율 개입을 비판했다.

 

송영길 민주당 환헤지 피해대책위원장은 "키코 계약은 공정한 시스템 룰도 아니고,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고지도 없었다. 중소기업이 이익을 보려다 손해를 본 게 아니다"라며 "국감 때 문제제기를 하고, 추경편성을 통한 긴급 자금 4000억원을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키코 사태의 책임이 중소기업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환투기를 위해 수출대금 규모를 초과해 과도한 거래(오버헤지·over-hedge)를 한 기업에만 손실이 갔다"고 지적했고,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송영길 의원과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이 잘못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은행연합회 쪽은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에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중소기업 관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곧 망하게 생겼다. 신속한 구제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은행이 권유 안 했으면 키코에 가입했겠느냐"

 

이날 공청회에서는 키코 사태가 은행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배 째라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이 극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지원을 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구에서 섬유 제품을 생산하는 A 기업 대표는 "작년 10월 환율이 900원일 때, 은행에서 먼저 찾아와 환차손 대책이라며 키코를 권유해 가입했다"면서 "위험부담에 대한 질문에 은행은 '손실을 본 업체가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키코에 가입한 지 한 두 달 만에 환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매일 밤 미국 주식을 보고 자고, 새벽엔 미국 주식과 석유 가격을 확인한다. 자고 나면 베개에 땀이 가득하다"며 "환율 때문에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B 기업 대표는 "10월에 은행으로부터 집중적인 연락이 왔다. 후쿠오카로 2박3일 골프여행 보내주고, 특히 우리 마음이 변할까봐 은행에서 녹취까지 했다"면서 "소송 준비하고 있는데 녹취록을 보자고 할 것이다, '기업체는 절대 손해 안 본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게임 룰이 공정하면 수용하겠지만, 이건 일방적인 게임이다. 솔직해지자. 은행에서 권유 안 했으면 우리가 했겠느냐. 은행은 기업에 좋은 말만 했고, 은행은 수수료 챙기기 위해 한 것 아니냐. 어떻게 은행이 이럴 수 있느냐. 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김상인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장(수산중공업 사장)은 "1년 허리띠 졸라매서 26억원을 버는데, 키코로 2년 동안 90억 손실이 나게 생겼다"며 "기업 존폐가 걸린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날 공청회에선 "키코 관련 약관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중소기업이 과도하게 부담하게 되어있어 불공정하다"는 김두진 부경대 법학과 교수의 발제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키코 약관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금융 당국·은행 "키코 사태는 중소기업 책임"

 

 

이에 대해 이날 공청회에 나온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관계자들은 "중소기업 책임"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섬이 없었다.

 

이강용 금융감독원 일반은행기획팀장은 "2008년 6월말 현재 키코 관련 손실은 1조4781억원이지만 수출대금 환차익으로 손실 상쇄가 가능했다"며 "다만 오버헤지한 중소기업은 4019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불공정한 상품으로 볼 수 없다'는 공정위 판단에 따라, 키코 계약을 무효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면서도 "개별 사례별로 은행의 불충분한 위험고지 등 부당 판매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조억연 전국은행연합회 상무이사는 "은행이 키코와 관련해 1조원 이익을 봤다고 하는데, 그 수치를 부풀려진 것이다. 또한 거래 과정에서 위험성 고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사태의 책임을 중소기업에 돌렸다. 이에 대해 방청석에선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위험성을 고지했느냐"며 격렬한 항의가 터져 나왔다.

 

패널로 나선 김재숙 한국무역협회 상무도 강하게 반발했다. "키코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은 오버헤지를 한 기업"이라는 금감원의 주장에 대해 김 상무는 "지난 5일 키코 가입 동기에 대해 50여개 업체를 조사했다. 80%인 40개 기업이 은행의 적극적 권유로 가입했고, 오버헤지를 했다고 한 기업은 2개 기업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은행을 향해서는 "중소기업이 올해 상반기에만 키코로 본 손실이 1조4천억원인데 은행은 파생상품을 통해 1조원을 벌어들였다"며 "은행은 수출기업 손실에 대해 장기 저리 대출을 해주는 등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도 "무역 업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환율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앞이 보이는 환율 정책을 펴달라는 것"이라며 "환율에 의해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보다는 체질 개선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전했다.

 

민주당 "추경 편성 통해 긴급 자금 지원해야"

 

이날 금융 당국과 은행연합회가 밝힌 키코 사태 관련 대책은 "신속한 금융 대책이 필요하다"는 피해 중소기업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한 문제해결을 유도키로 했고, 은행연합회는 중소기업의 애로를 거래기업과 협의하여 해결한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송영길 의원은 "금융 기관은 피해 기업에 대출을 지원하고, 국회는 추경 편성 통한 긴급 자금지원을 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안 망하게 사전에 도와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또한 ▲워크아웃 통한 회생 지원 ▲은행에 소송하는 기업에 대한 보복적 대출 상환·여신 축소 행위에 대한 금융 감독 당국의 철저한 관리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상품 컨설팅 서비스 마련 등 대책을 내놓았다.

 

이날 사회자로 나선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747' 정책을 띄우기 위해 환율에 대해 구두 개입했다, 이후 완전히 신뢰 잃어 공항 상태"라며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따지겠다"고 밝혔다.


태그:#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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