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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거리 展’을 알리는 현수막, 현수막에는 전시를 17일까지 한다고 적혀있어 '한 갤러리’로 확인, 20일까지 11일 동안 하는 게 맞는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예술의 거리 展’을 알리는 현수막, 현수막에는 전시를 17일까지 한다고 적혀있어 '한 갤러리’로 확인, 20일까지 11일 동안 하는 게 맞는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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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유린당한 상태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해오던 여성들이 화재로 참변을 당해 충격을 주었던 군산 개복동에서 한국미술협회 군산지부(이하 미협 군산지부) 회원들이 ‘예술의 거리 展’을 한다기에 찾았습니다.

지난 2002년 1월 29일 새벽 14명의 여성이 참사를 당한 화재 이후 방치되어 오다 쇠락해가는 거리를 되살려보자는 지역 미술인들의 노력으로 개복동 상가 일원에서 열리게 된 이번 전시회에는 여성작가 13명이 참여, 의미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감시 속에서 낮에는 단체로 목욕탕에 다녀오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붉은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는 성매매업소 유리벽 안에서 화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여성들은 모두 떠났지만 아픈 추억을 간직한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거리에서 열리는 전시회라서 느낌이 남달랐습니다.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던 골목 입구. 상가는 오래전 철거되어 을씨년스럽게 보이는데요. 성매매업소는 간판만 내렸지 변한 게 없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던 골목 입구. 상가는 오래전 철거되어 을씨년스럽게 보이는데요. 성매매업소는 간판만 내렸지 변한 게 없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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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판기 미협 군산지부장은 모시는 글에서 “개복동 거리는 광복 이후 70년대 까지만 해도 <청춘옥>, <비둘기 다방>, <초원다방>, <선술집골목> 등등에서 시인들과 화가들이 서로 어우러져 예술을 이야기하고 전시회를 열던 거리였다”라며 “개복동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예술의 거리>로 변화시킴으로써 많은 시민과 예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라고 희망을 밝혔습니다. 

 ‘시네마 宇 日’ 앞에서 바라본 개복동 거리. 청춘옥, 비둘기다방, 크고 작은 주점들이 들어서 있던 길인데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직장인들과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거리였습니다.
 ‘시네마 宇 日’ 앞에서 바라본 개복동 거리. 청춘옥, 비둘기다방, 크고 작은 주점들이 들어서 있던 길인데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직장인들과 예술인들이 즐겨 찾던 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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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지부장이 소개한 <청춘옥>은 70년대까지만 해도 기관장을 비롯한 기업체 사장들이 주로 이용했던 고급 음식점으로 한정식과 냉면, 영계백숙, 그리고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장국 물이 일품인 초밥과 꼬치백반이 유명했는데, 서민들이 한번쯤 들러보고 싶어 하던 식당이기도 했습니다. 

<비둘기 다방>은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리지 않고 군산에서 활동했던 예술인들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발족한 군산 아마추어 사우회의 1회 회원전(1953년)을 시작으로 해마다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특히 홍건직, 차칠선, 이병훈, 채원석 등 장르를 초월한 원로 작가들이 전시회와 개인전 시낭송회를 개최했던 곳이었는데 오락실 간판이 붙어 있어 아스라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필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건물 2층이 당구장이었던 <초원다방>은 필자가 ‘군산 일요사진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80년대 초 몇 차례 전시회를 했던 장소라서 남다른 인연이 있고, 지역 유지와 지식층들이 주로 이용했던 다방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노름꾼과 깡패들이 모이는 장소로 변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영화 스태프들이 지금도 찾고 있어 인기 연예인들의 채취가 남아 있는 초원다방 골목. 외롭게 걸려있는 ‘초원다방’ 간판과 거미 울음소리도 들릴 것처럼 한적한 풍경이 군산의 쇠퇴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영화 스태프들이 지금도 찾고 있어 인기 연예인들의 채취가 남아 있는 초원다방 골목. 외롭게 걸려있는 ‘초원다방’ 간판과 거미 울음소리도 들릴 것처럼 한적한 풍경이 군산의 쇠퇴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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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극장(시네마 宇 日) 앞길에 있던 <비둘기 다방>과 남도극장(국도복합영화관) 맞은편 골목에 있던 <초원다방>은 극장 쇼가 들어오는 날에는 가수와 배우들이 커피를 마시며 공연 시간을 기다리던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해서 김지미나 최무룡 등 인기스타가 오는 날에는 통행이 불편할 정도로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기초단체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모 영화배우는 깡패에게 귀 뺨을 맞고 “다시는 군산에 오지 않겠다”라고 해서 의식 있는 시민들을 속상하게 했던 적도 있습니다.

<선술집 골목>은 말 그대로 대학생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골목입니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산으로 영화촬영을 오는 감독과 스태프들이 빠지지 않고 들렀던 해장국집(비둘기집)을 비롯해서 30명이 넘는 서비스 걸을 고용했던 황금마차, 요정, 막걸리 집 등이 골목을 메우고 있었지요. 날이 어두워지기 무섭게 취객들의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던 골목이기도 한데요.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없고 비어 있거나 문이 잠긴 가게가 더 많아 귀신이 나올 정도로 고요가 흐릅니다.
     
빠뜨릴 수 없는 얘기

 ‘시네마 宇日’ 전경. 옛날에는 극장 앞이 시원하게 트여 있었는데 높은 건물이 들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군요. 고인이 된 배호와 문주란 쇼를 막내누님과 함께 관람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극장 쇼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요.
 ‘시네마 宇日’ 전경. 옛날에는 극장 앞이 시원하게 트여 있었는데 높은 건물이 들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군요. 고인이 된 배호와 문주란 쇼를 막내누님과 함께 관람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극장 쇼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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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다방 골목 입구에서 바라본 ‘국도(國都) 복합영화관’(구 남도극장). 적은 돈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고, 친구 아버지가 운영했던 극장이라서 한 번 더 쳐다봐지는 건물입니다.
 초원다방 골목 입구에서 바라본 ‘국도(國都) 복합영화관’(구 남도극장). 적은 돈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고, 친구 아버지가 운영했던 극장이라서 한 번 더 쳐다봐지는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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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홍성규 감독의 ‘춘향전’이 대결했던 1961년 얘기입니다. 당시 서울 명보극장에서 상영된 성춘향은 42만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홍성규 감독의 ‘춘향전’은 흥행에 실패했는데, 군산에서도 같은 해 같은 시기에 남도극장에서는 춘향전을 군산극장에서는 성춘향을 상영, 군산극장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당시 결과는 영화 팬들에게 군산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수준이 남도극장보다 높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후로 남도극장은 영화 두 편을 상영하는 삼류 극장으로 전락했고 군산극장은 새롭게 선보이는 외화를 주로 상영했으니까요. 90년대 초 ‘서편제’도 군산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남도극장도 건물을 신축하고 이름을 ‘국도’로 바꿔 JSA를 인기리에 상영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남도극장 사장 아들이 필자와 동창이었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반 친구 10여 명을 공짜로 영화구경을 시켜줬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면서 그 친구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습니다. 지금도 어쩌다 술자리가 만들어지면 반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던 당시를 얘기하며 추억을 회상합니다.

출품 작가들의 소회 

용비어천가 2장 1행과 2행을 적은 남전(南田) 이철우(63세 서예)씨 출품작
 용비어천가 2장 1행과 2행을 적은 남전(南田) 이철우(63세 서예)씨 출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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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지어진 용비어천가 2장 1행과 2행을 적은 작품을 출품한 남전(南田) 이철우(63세 서예) 씨는 “억울하게 죽어간 성매매 여성들의 통곡소리가 가시지 않은 거리에서 처음 개최되는 ‘예술의 거리 展’이 성공적으로 끝나 그동안 시민들에게 외면을 당하면서도 지탱해온 개복동 거리가 50년 전 영광을 되찾게 되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작품 내용에 대해 “뿌리가 깊은 나무는 고난에 흔들리지 아니해서 문화가 번성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도달하니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다”는 의미라며 “미협 군산지부도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는 모임이 될 것을 믿습니다”라며 후배들에게 덕담을 건넸습니다.

서양화가 로벤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갤러리 간판도 ‘로벤스 갤러리’로 했다는 한경자 씨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했으며 사업을 하면서도 작품활동을 해왔다며 그동안 혼자서만 작업을 해오다 ‘예술의 거리’가 생긴다는 얘기를 듣고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경자 씨가 4년 전에 완성했다는 작품인데요. 사과 궤짝 위에 마른 생선을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생선장수가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한경자 씨가 4년 전에 완성했다는 작품인데요. 사과 궤짝 위에 마른 생선을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생선장수가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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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술인들은 전시회를 할 때만 만나고 끝나면 다시 흩어진다며 ‘예술의 거리 展’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개복동이 시민과 예술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40년 넘게 미술을 해오면서 3개월 전 이곳에 갤러리를 마련하고 한국화 ‘여름’(작품명)을 출품한 한상숙(54세, 한국화) 씨는 은파 유원지의 초가을을 생각하다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며 많은 시민이 찾아와 미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기를 희망한다며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씨는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지역 예술인들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힘을 합하면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거리가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세 곳의 갤러리가 입주해 있지만, 올해 안에 10여 명의 작가들이 이주, ‘작가 스튜디오 촌’을 만들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79년 여산(如山) 권갑석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예술에 관심을 두기 시작,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4회의 개인전을 열고 대학에 출강한 경험도 있다는 한씨는 개복동 일대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군산시와 부근 상가들의 협조를 받아 거리 예술제, 거리 음악공연, 주말 벼룩시장, 애니메이션 사생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향림 한상숙(한국화) 씨 출품작 ‘여름’. 은파 유원지를 생각하며 완성했다고 해서 그런지 그림 분위기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향림 한상숙(한국화) 씨 출품작 ‘여름’. 은파 유원지를 생각하며 완성했다고 해서 그런지 그림 분위기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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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성의 전화 민은영 사무국장은 전화 통화에서 “개복동 화재 참사 건물이 방치되고 있어 다시 우범지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는데 뜻있는 예술인들이 나서주어 환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민 사무국장은 2004년 9월23일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빠져나간 여성들이 유흥가와 주택가로 침투하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해왔는데 이번 전시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성매매 집겹지가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9월10일(수) 오후 3시 뜻있는 지역 예술인들과 문동신 군산 시장, 이래범 군산시의회 의장, 예총 군산 지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가진 이번 ‘예술의 거리 展’은 이상훈(조각), 한성숙(한국화), 한경자씨 등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20일까지 11일 동안 열린다고 합니다.


태그:#개복동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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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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