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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하늘만큼이나 자유로워 보인다.
▲ 저자 서명숙 등 뒤의 하늘만큼이나 자유로워 보인다.
ⓒ 시사인 한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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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변방 제주도에서도 가장 남쪽 서귀포 읍, 매일 시장통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말을 더듬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운동이라고는 공기놀이밖에 못하는. 엄마가 매를 들면 기정길을 타고 내려가 천지연 근처를 맴돌면서 아이는 간절하게 꿈꾸었다. 얼른 자라서 갑갑한 이곳에서 벗어나 번쩍거리는 불빛과 높은 빌딩이 있는 서울로 가게 되기를."
- <제주걷기 여행> 서문 중-

내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처음 만난 것은 한의사 이유명호씨와 마포 감자탕집서 번개를 칠 때였을 것이다. 열댓 명이 모였던 번개가 거의 파장을 항해 갈 무렵, 여성학자 오한숙희씨가 웬 아줌마와 나란히 나타났다. 오한숙희씨는 그 아줌마와 남은 음식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면서 얼마나 좌중을 웃겼던지 그날은 집에 돌아오면서도 피식피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한숙희씨가 단짝 친구처럼 늘 붙어 다니던 그 두루뭉술한 이가 바로 전직 <시사저널> 편집장인 서명숙이였니, 그이가 여성신문사에서 연수를 받을 때  강사로 온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으니, 나도 참 사람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번개에서 우연히 만난 '왕뚜껑'

어쨌거나 '왕뚜껑'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그이와 이런저런 여성계 행사에서 만났고 그이의 집 근처에서 칼국수 번개를 치기도 했다. 한 번은 오한숙희씨와 같이 개화산을 오르다 난데없이 배낭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들더니 일일이 담배 꽁초와 휴지를 줍는 것이었다. 그 날의 산행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어쨌거나 그이는 참 따뜻하고 눈물이 많은 반면, 날카로운 시각, 촌철살인의 맵짜고 빈틈없는 글솜씨를 지녀 왜 오한숙희씨가 러브콜을 날려 단짝이 됐는지 이해가 됐다.

어쨌거나 신나게 한 2년 여성계 행사 자리나 뒤풀이 자리 등 늘 노는 자리서 보이던 그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오마이뉴스> 게릴라본부장을 맡아 언론계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난 수만명의 시민기자 중 한 사람이었고 그이는 그 수만명 시민기자와 수십명의 상근기자를 진두지휘하는 위치로 바뀌었으므로 공적인 자리에서 그이와의 만남은 지극히 의례적인 것이 되었다. 더불어 사적인 자리의 만남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처음 봤을 때 생기발랄하던 모습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다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책을 받으러 간다든지 회의를 하러 가면서 얼핏 본 서 국장은 늘 피곤해 보였고 바빠 보였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났을까?  그이를 세계시민기자 포럼에서 만났는데 몰라보게 날씬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이는 <오마이뉴스>를 그만두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떠났다. 산티아고를 다녀오는가 싶더니 그 다음에는 네팔 트래킹을 다녀오며 맷돌크기만한 야크치즈를 사와 거리 투쟁 중이던 <시사저널>(지금의 시사인) 기자들을 먹였다.

그이는 이전의 명랑한 모습을 되찾았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팔과 다리는 야생의 소녀처럼 구릿빛으로 건강했으며 어깨에는 마치 날개라도 되듯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배낭이 매어 있었다. 날렵해진 그이는  알 수 없는 풍요로움과 여유까지 풍겨 보는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제주올레, 까미노를 만들다

놀멍 쉬멍 걸으멍 인생의 길도 찾아질까?
▲ 제주걷기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 인생의 길도 찾아질까?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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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걷기 탐험을 마친 그이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로 돌아가 올레 길을 열고 ,<제주 올레> 이사장으로 멋진 이모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주걷기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는 책을 출간해 아직도 이모작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길 위에 홀로 서볼 것을 권하고 있다.

18년간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려 늘 쫒기며 살던 그이는 심한 길치에 걷기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이가 몸도 마음도 극도로 지쳐있을 때 선택한 것이 바로 걷기 수행이었다. 그이는 걸으며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조바심을 털어냈고 비곗살을 떼어내며 몸과 마음이 투명해져 갔다.

그리고 산티아고로 떠났다.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쳤을 때 그이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 준 사람은 바로 헤니라는 영국인이라고 한다.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면서 나는 헤니에게 큰소리를 쳤다.
"앞으로 5년에 한 번씩은 땡빚을 내서라도 산티아고에 올 거야!"
헤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하던 나. 우리나라엔 왜 아름다운 걷는 길이 없나, 불평만 일삼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찾아왔다. 아, 내가 직접 길을 만들 수도 있구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걷던 내 고향 제주의 길을 내내 떠올렸는데...... 그곳에서 길을 내면 되겠구나. 제주올레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  <제주걷기여행> 중 -

그이는 약속대로 제주올레라는 까미노(Camino, 길)를 만들어 당신들도 어서 그 길 위에 서보라고 손짓하고 있다. 길을 걷다 생의 터닝 포인트를 돌아서 멋진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  어찌 그이만의 것이랴.

권해효. 서명숙, 오른쪽 끝에 가이드 북을 만든 무적전설 박성기
▲ 시사 인 1주년 기념식에서 권해효. 서명숙, 오른쪽 끝에 가이드 북을 만든 무적전설 박성기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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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서있다. 우리의 생 자체가 순례의 길이고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므로. 다만 천천히 걸으며 끊임없이 사색을 익혀가던 걷기를 멈춘 순간부터 사색의 깊이도, 삶의 깊이도, 자연과 교감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샘솟던 생의 희열마저도 그 깊이를 잃어갔을 뿐이다.

무한경쟁에 내몰려 끝모를 질주에 지친 몸과 영혼, 그 틈새를 메운 비곗살로 인해 삶이 감당하기 힘든 짐처럼 여겨질 때, 머잖은 곳에 일상을 훌훌 털고 오롯이 설 길이 있다는 사실이 생의 보험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어쨌거나 그 보험을 사용하기 전에 <제주걷기 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는 친절한 안내서를 잘 숙지하여 초행길의 실패를 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제주걷기 여행-몰멍 쉬멍 걸으멍>은 제주도에 걷는 길을 만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글을 북하우스에서 엮은 것입니다. 부록으로 박성기가 만든 < 제주걷기여행 가이드 북>이 끼워져 있습니다.



제주 걷기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북하우스(2008)


태그:#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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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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