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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음식점 달항아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모임이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쓰는 인생 노트>라는 제목의 워크숍. 백 퍼센트 시어머니-며느리팀이 참석한 것은 아니고, 시누이-올케팀까지 합해 모두 21팀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 행사에 앞서 수원가족지원센터에서는 9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시어머니 교실, 며느리 교실을 각각 열어 워밍업을 마친 상태. 아침 일찍 수원을 출발한 이들은 서울에 도착해 다함께 경복궁을 돌아본 후 음식점에 도착해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바로 워크숍에 들어갔다.

 

이날의 진행자는 방송인으로도 유명한 여성학자 오숙희씨. 처음부터 편안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화법으로 참가자들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첫 프로그램은 '아는 것이 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각기 팀을 이뤄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아는 만큼 적는 시간이다. 나는 시어머니팀을 도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기뻤을 때는? 며느리가 가장 기뻤을 때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 며느리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며느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상형)은? 며느리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상형)은?

 

등등 나에 대한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며느리를 놓고도 해보는 것이다. 윗층으로 올라간 며느리들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과 시어머니에 대한 질문에 답을 했다. 이어서 며느리가 서운할 때와 고마울 때는 언제인지 시어머니들의 의견을 모아보고, 반대로 며느리들에게는 시어머니가 서운할 때와 고마울 때는 언제인지를 물어 기록하는 순서였다. 

 

응답한 종이를 걷어 정리하고 집계하는 동안 모두가 '만다라 색칠하기'에 들어갔다.

 

 
시어머니(며느리)가 서운할 때와 고마울 때를 집계한 후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맞하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이럴 때 나한테 서운할 거다, 고마울 거다' 하는 것을 잘 맞히셨는데, 의외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마음을 거의 맞히지 못했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며느리들도 놀란 듯 했다. 아무리 세대 차가 나고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며느리 시절을 경험하셨기에 어머니들이 답을 잘 맞힐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며느리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아직 시어머니가 되어 보지 않아 시어머니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리라.
 
이번에는 시어머니-며느리팀이 나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맞춰보는 시간이다.
 

 
서로가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음식이 다른 경우도 많았고, 서로의 친한 친구 이름을 아는 팀은 반 정도였다. 가장 잘 맞춘 것은 상대방의 신발 사이즈였다. 여자 특유의 눈썰미 덕이었을까. 이것 역시 내게는 뜻밖의 결과였다.
 
아무튼 상대방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를 확인하고, 한 편으로는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흐뭇하게 생각되는 시간이었다.
 
즐거워하는 혹은 너무 몰라서 미안해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의 얼굴은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이런 자리에 같이 올 정도의 고부간이라면 솔직히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시어머니 교실' 강의를 맡았던 인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참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혈연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집안의 두 기둥인 여성들이 함께 모여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살펴보며 다시 한 번 소통과 나눔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이런 기회가 확대되고 지속된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상대방이 있어 내가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수원으로 떠나는 버스를 배웅하며 돌아서는 길, 내 시어머니에 대해 나는 과연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 질문에 제대로 자신 있게 답을 한 것은 딱 한 항목이었음을 고백한다. 서로 맞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웠지 어머니를 알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부끄러웠다. 하여 결론은 하나. 나부터 노력하자! 앞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질문에 '비슷하게라도' 답할 수 있기를.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시어머니뿐만이 아니라 나를 낳아 길러주신 친정어머니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는 얼마나 무심한 사람인가.     
 
어머니가 가장 기쁘셨을 때는 언제일까?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일까?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어머니가 가장 받고 싶어하시는 선물은 무엇일까?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는 노래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일까?
어머니의 주거래 은행은?
어머니의 신발 사이즈는?
어머니의 최근 고민은?
어머니가 나와 단둘이 꼭 해보고 싶어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태그:#시어머니 , #며느리, #고부, #수원가족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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