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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광우병 논쟁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더니, 여름이 다가오자 유전자조작식품(GMO) 규제를 풀어 사람들 가슴이 철렁거렸습니다. 이제 갈바람을 타고 멜라민 공포가 방방곡곡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이를 둔 부모는 이제 무엇을 먹여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을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정부의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우리 가족도 그 대열에 합류했지요. 네 살배기 큰딸 '별'과 6개월을 갓 넘긴 '솔'을 데리고 서울 청계광장으로 나들이를 몇 번 다녀왔습니다. 솔에게는 처음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이 부는 광장을 촛불 수천 개가 녹이고 있었습니다. "미국 소, 미친 소 수입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도 끼었습니다. 우리가 시위하는 장면이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아주 잠깐 나왔더랬지요.

 

눈을 깜박였으면 놓쳤을 찰나였는데 어떻게들 보았는지 가족, 친지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야, 애기 안고 무슨 짓이냐. 너희나 가지." "너희가 그런다고 바뀔 것 같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이런 핀잔을 들을 때는 그냥 웃는 게 상책이지요.

 

수많은 말을 외치며 도대체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묵인하고 혹은 은밀하게 주도하면서 저질 음식이 우리 밥상과 아이들 건강을 위협하는 마당인데, 우리가 어떻게 지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 말처럼 수억 원짜리 소고기를 먹을 수 없는 처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머리 나쁜 나보다 더 개념 없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상업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여학생이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그 친구는 "대통령은 가난해서 상고에 갔다고 들었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 선생님 의지대로 상고에 갔다"며 "어떻게 대통령이 머리 나쁜 나보다 더 개념이 없냐"고 절규했습니다.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미안했고 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엄마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은 시도 때도 없이 "또 촛불 하러 가자"고 한참을 졸랐습니다.

 

사실 저희 집 밥상에 쇠고기가 올라오는 날은 한 해에 몇 번 되지 않습니다. 자주 안 먹는 대신 한살림 같은 유기농 매장에서 삽니다. 이유식을 시작한 솔에게도 먹을거리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마 젖이 신이 주신 선물이라면, 이유식은 세상 음식을 맛보고 적응하는 첫 단계입니다. 어떤 먹을거리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아이 입이 길들여지는 것도 다릅니다. 별과 솔에게는 엄마 젖을 먹였고, 나중에는 엄마가 만든 이유식을 먹였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이유식을 먹이면 편합니다. 물을 끓였다가 타서 먹이면 그만입니다. 분말로 되어 있어서 저장하는 것도 쉽습니다. 집에서 만든 이유식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보관에 신경 써야 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주지 않으려고 아침에 이유식을 만듭니다.

 

제가 일어나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내는 솔이 이유식을 만듭니다. 지금은 솔이 제법 커서 쌀에 호박과 두부, 고구마 혹은 된장국 등을 곁들여 먹고 있습니다. 큰딸 별은 엄마와 밥을 먹고, 솔은 제가 먹여줍니다. 가끔 아내와 내가 역할을 바꾸기도 하지요. 이유식을 시작한 뒤로 거르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 집 아침 풍경입니다.

 

유기농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지

 

뭐 피곤하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최고 음식을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슈퍼마켓에서 파는 이유식에도 유기농이 있습니다. 좋은 것 먹이고 싶으면 사서 먹여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서 먹이는 게 그렇게 꼭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널리 알려진 회사 다섯 곳에 내놓은 유기농 표시 이유식 제품 63개를 검사한 결과 3개사 18개 제품에서 GMO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식약청 검사 결과 이유식에 들어간 수입 콩에서 GMO가 발견되자 이 회사들은 뒤늦게 해당 상품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업들은 유기농 식품에서 GMO 검출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에는 반대했습니다.

 

정부는 회사들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GMO 성분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유기농' 표시를 못하도록 했는데, 지난 6월부터는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식품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유기농 제품에 GMO가 의도하지 않게 3%가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 것이지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식품수입업자가 유전자를 조작한 콩을 유기농 콩으로 속여 유명한 식품업체에 팔았습니다. 당연히 이 업체들은 유기농이라고 소개하며 팔았지요.

 

그러니 밖에서 사서 먹이면 아무리 유기농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에게 GMO를 선물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와 아이들의 밥상에 올라온 먹을거리가 누가 어떻게 지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확인할 수 없다면, 우리 건강은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웃는 얼굴로 독 주고 싶지 않다

 

미국 쇠고기 수입 논쟁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떻게 길렀는지 알기 어려운, 제대로 검역했는지 신뢰하기 힘든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누가 반길까요. 만에 하나 잘못되면 치사율 100%에 육박하는 병에 걸릴 위험을 감수하면서 '싸고 질 좋은 쇠고기'에 환장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20% 초반으로 급락한 것이겠죠.

 

문제는 더 있습니다. 소는 풀을 먹고 살도록 신이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연한 육질을 만들려고 조금 더 빨리 키우려고 소에게 고기를 먹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이 세운 질서는 가볍게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장로 대통령은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파괴하는 사탄의 도전에는 왜 당당하게 응전하지 않을까요. 왜 그를 목회하는 목회자는 이 사실을 일러주지 않을까요. 머리 나빠 상고에 들어갔다는 그 여학생도 아는 문제를 장로까지 된 사람은 모를까요.

 

최근 일고 있는 멜라민 공포 속에서도 우리는 어이없게 속고 쉽게 용서해주라고 강요받습니다. 더 많이 팔아보려는 얄팍한 상술 때문에 이유에 물을 섞고, 잘 섞이라고 플라스틱과 접착제, 화학비료에 쓰는 멜라민을 넣는다니! 먹는 것, 그것도 우리 갓난아이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 분노하는데, 정부는 자꾸 안심하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판정 받은 음식에서 4일 만에 멜라민이 나오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벌이고 있습니다.

 

젖을 떼는 아이에게 멜라민으로 적당히 섞은 우유나 GMO 곡물이거나 광우병 위험이 도사리는 '값 싸고 질 낮은' 고기를 처음으로 맛보게 하고 싶은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직접 이유식을 만들지 않고 편하게 사서 먹이려고 하는 순간 웃는 얼굴로 아이에게 독을 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한마디씩 하는 소리도 마음에 걸릴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친척들을 만난 적 있습니다. 솔이 낯설어하며 울자 고모할머니가 쥐머리로 추정되는 물체가 나왔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과자를 쥐어주었습니다. 울음도 딱 그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잠깐 망설이다가 솔이 손에서 과자를 빼앗았습니다. 겨우 진정한 솔이 울고 친척들이 차가운 시선을 날렸습니다. 잠시 뒤 "너만 애 키우냐", "참 별나네" 같은 말이 뒤를 이었습니다. 먼저 결혼해 다섯 살배기 딸은 둔 사촌동생도 "우리 애는 백일 때부터 과자 먹였어도 아무 탈 없는데 뭘 그러느냐"고 거들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편하게 침묵해야지요.


태그:#육아일기, #이유식, #멜라민, #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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