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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태환아 병역거부해"는 난센스입니다>)을 쓰고서는 의석씨에게 메일을 보내서 읽어보시라고 했는데, 두 번째 글(<군대를 없애는 "알몸쇼"는 실패했습니다>)을 썼을 때는 연락을 드리지 못했네요. 말씀하신 대로 직접 연락해서 이야기하는 방법도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을 통한 문제 제기 역시 의미있는 방식이라고 판단합니다.

전 의석씨를 언론노출증이라고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론에 의해 의석씨가 소비되고 있다고 했죠. "언론노출증이라고 지적하면서 언론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는 까닭을 모르겠다"는 의석씨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먼저 사실관계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의석씨가 직접 한 행위가 공개적인 논쟁이 된 이상 매체를 통한 비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강의석씨(22.서울법대 휴학)가 1일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이 펼쳐진 강남 대치동 현대백화점앞에서 군대 반대 누드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 기습시위를 벌였다"고 이유를 설명한 강씨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도로에 뛰어들어 20여초동안 쿠키로 만든 총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 강의석씨 '군대반대' 누드시위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강의석씨(22.서울법대 휴학)가 1일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이 펼쳐진 강남 대치동 현대백화점앞에서 군대 반대 누드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 기습시위를 벌였다"고 이유를 설명한 강씨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도로에 뛰어들어 20여초동안 쿠키로 만든 총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 연합뉴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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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씨의 행위가 매체를 통해 토론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석씨는 이렇게 쓰셨죠.

"제게 공개편지를 쓰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생각과 삶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를, 문제제기된 방식으로 했으니까요."

제가 의석씨의 주장, 박태환씨에게 병역거부를 하라고 했던 것을 비판한 것은 그의 삶과 생각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뜬금없이 왜 가만있는 박태환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병역특례와 병역거부의 거리는 멀어도 한참 멉니다. 제 주장은 감옥행과 동일시되는 병역거부가 그렇게 마구 제안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박태환이 단지 유명해서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석씨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공개적인 정치적 행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로 많은 논쟁들이 많들어졌구요. 그것에 대해서 제가 공개적인 비판 글을 쓰는 것은 제가 의석씨에게 왜 박태환을 가지고 글을 쓰느냐고 비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의석씨는 글에서 평화활동가들에게 서운한 점을 하나하나 적어주셨습니다. 왜 그 때 나에게 발언을 시켰냐,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 정리해보자면 "글에서는 같이 하자고 했지만 결국 밀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냐"였습니다.

주장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제 비판에 의석씨는 책이 가득 꽂힌 자신의 책장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조금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하게 답변하고 사실관계를 따질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양심선언 이길준 의경의 기자회견과 관련된 부분은 필요하다면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의 초점은 다른 곳에 맞추고자 합니다. 먼저, 이 공간에서 그렇게 자세한 부분들을 일일히 따지는 것이 생산적이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석씨의 글을 읽으면서 제 생각이 잘못 전달된 부분과, 저의 부족함도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의석씨의 구체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었구요. 그 과정에서 이제는 조금 더 명확하게 논쟁의 지점을 잡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사회운동을 하는 강의석씨의 태도입니다

저의 비판은 "의석씨의 행동보다 다른 평화활동가들의 행동이 더 낫다. 그렇기에 당신의 것은 잘못되었고 내가 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와 같은 오만과 독선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그것이 다른 활동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연대입니다.

조금 거친 예가 되겠지만, 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방식의 선교가 전체 기독교에 악영향을 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그 분들에게도 자기식대로 포교할 자유가 있으니까 상관하지 않겠어"가 아니라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서 진심을 담아서 그 분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다른 방식을 제안할 것입니다.

물론 의석씨의 행위를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석씨가 군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에, 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을 담은 비판을 하고 싶었다는 말씀입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의석씨가 대광고 시절 하셨던 1인 시위와 단식과 같은 방식도 있을 것이고, 구체적인 정책제안이나 입법운동이 있을 것입니다. 의석씨가 택하셨던 알몸 시위도 외국에서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저항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 다양한 방식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선택되어야 합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군대를 없애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박태환과 같은 유명인을 걸고넘어지면서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방식이나 탱크 앞에 알몸을 던지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니 적절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군대에 비판적인 운동 전체에 대한 반감과 비난을 더 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즈 마케팅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하죠. 신규 브랜드가 등장할 때 사용하는 기법인데 특정 사건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방식입니다. 최근 연예계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인지도가 생명인 연예인의 특성상 좋건 나쁘건 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것이 최고의 홍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노이즈 마케팅이 계속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최소한의 신뢰성마저도 잃게 하여 결국에는 사람들의 불신만을 초래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 의석씨가 사회운동을 대하는 방식이 이 노이즈 마케팅과 닮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의석씨에게는 일단 많이 알려야 한다는 강박과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언론이 주목할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사회운동은 많이 알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진지하게 설득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 설득의 가장 중요한 방식은 자신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사회운동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연예인에게는 안티도 팬이지만 사회운동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의석씨가 알몸으로 탱크 앞에 선 모습에 '비무장은 아름답다'가 아닌 '강의석 또 한 건 했네'를 이야기는 것은 노이즈 마케팅의 한계와 닮아있습니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의석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심지어 의석씨의 생각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강의석 본인이 유명해지고 싶어서 저러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랬기에 전 의석씨가 언론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소비되었으며, 결국 실패했다고 한 것입니다.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지요.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송승헌씨 병역문제가 터졌을 때, 한 팬이 저희 단체로 이런 연락을 해 주셨습니다. "송승헌씨가 병역거부를 하게 해주세요." 아마 그 팬은 병역거부를 하면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면제가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때 만약 병역거부운동이 "송승헌씨, 병역거부는 어떻습니까?" 같은 글을 썼었다면 당장 화제야 되었겠지만, 결국 병역거부운동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4년, 학교 내 종교교육의 선택권을 요구하며 45일간 단식을 했던 강의석 군.
 2004년, 학교 내 종교교육의 선택권을 요구하며 45일간 단식을 했던 강의석 군.
ⓒ 박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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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씨의 방식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군대와 관련된 운동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 군대에 대한 비판과 같이 급진적인 운동일수록 이벤트성이 강한 운동방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주장 자체가 선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방식까지 그러하면 사실상 주장의 본래 의미가 묻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군대 문제는 오랜 시간 성역화되어 있었고, 사회적인 논의 자체가 금기시된 영역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65만 명 수준의 군 인원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군사작전환경과 안보환경이 당시와 판이하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같은 인원입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군에 대한 비판과 개입이 얼마나 부재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유승준 이야기 하나로 한 연예인이 매장될 수도 있고, 자신과 자식들의 군필 여부가 공직자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는 한국 사회입니다. 안보 논리로 과대 포장된 부분은 있지만, 분단국가라는 현재의 조건 역시 중요하게 고려할 부분입니다. 이처럼 군대 문제는 참으로 뜨겁고 복잡합니다.

이전 글에서 강의석씨가 외치는 "군대을 없애야 합니다"를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와 비교했습니다. 그 어떤 사회주의자도 그러한 방식으로 운동하지 않는다고 했죠. 한국과 같이 빨갱이 콤플렉스가 거대한 사회에서 그런 방식으로는 자신의 사회주의 신념을 알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에 말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콤플렉스보다 군대에 대한 문제가 더 열악한 여론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빨갱이' 사안이었던 비전향 장기수 분들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인 2001년이 되어서 비로소 병역거부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처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제일 멸시받았던 "빨갱이"보다 못한 "병역거부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형에서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오히려 반감만을 만들 뿐입니다. 의석씨는 군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앞선 기사에 함께 실으셨지만, 그 역시 전쟁의 부당함을 정리한 후 "전쟁을 없애 버리는 길은 단 한 가지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결코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로 결론이 맺어지는 글이었습니다. 앞선 구호와 다르지 않은 추상 수준이었습니다.

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주의자로서 행동합시다

군대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이 처들어올 지 모른다는 댓글이 참 많이 달립니다. 전 그 댓글이 중요한 반론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이들이 항상 직면해야 하는 반론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은 사실상 대북한 저지군입니다. 휴전선에 전체 전력의 70%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군대를 없애자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침공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박을 해야 합니다.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군대 문제는 이처럼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기에 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없이 "군대를 없애야 합니다"는 주장만이 반복되는 것은 그 주장 자체가 힘을 잃는 것을 넘어서서 전체 평화운동에까지 악영향을 끼칩니다.

군대 문제에 다루는 과정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현실주의적 접근방식입니다. 물론 마음속에는 이상주의를 품고 있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병역거부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제가 현실주의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좀 재미있지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만큼 이상주의적인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지금 한국 병역거부운동은 대체복무제 개선이라는 구체적인 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한계를 알지만, 지금은 그것도 정말 어렵습니다.

의석씨는 앞선 글의 마지막에 간디의 비폭력 저항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간디야말로 구체적인 전략가였으며, 그가 택했던 저항은 구체적인 정세와 조건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소금 행진은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소금의 제조, 판매를 독점하는 소금세법을 시행하려 하자 이에 저항했던 비폭력 운동이었습니다. 간디는 직접 바다로 가서 소금을 만들어 쓰겠다며 소수의 인원으로 행진을 시작했죠.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전략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바다에 도착했을 때 행진 인원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만약 의석씨가 그런 간디의 선구자적인 모습에 기대고자 한다면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영국 식민지에 반대합니다'가 아니라 '강압적인 소금세법에 반대해 우리가 직접 소금을 만듭시다'가 간디의 주장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비폭력 운동의 대표적 사례인 미국의 민권운동 역시 버스의 백인 전용 좌석에 흑인이 왜 앉지 못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로 시작했습니다.

'군대폐지'보다는 작고 지협적으로 보이겠지만, 더 구체적인 영역과 행동으로 의석씨의 평화운동을 이어가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서 군대를 없애려면 백 년도 더 걸려 보이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정 빠른 길일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의석, #병역거부, #군대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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