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은 사회적 약자에게 대단히 불편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가혹한 사회이다.

 

모든 사람들이 학교에서부터 취업, 직장에 이르기까지 무한경쟁에 짓눌려 있다. 경쟁대열에서 조금이라도 낙오되면 인생이 고단해지고 인격적인 자존감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장애인과 같이 애초부터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노동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취업 기회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노동과정에서 절망과 모멸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사회적 보호와 복지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장애인들이 시민적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은 오래되지 않았기에 시민적 권리로서의 생존권, 노동권, 교육권, 접근권 등은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장애인 노동자 월평균 소득,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절반 수준

 

2005년 통계청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의 규모는 214만 8000명으로 추정된다. 이중에는 지체장애인이 100만 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외에 뇌병변장애 27만 명, 청각장애 23만 명, 시각장애 22만 명, 정신지체 12만 5천 명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존재한다.

 

특히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소득이 적은 반면 지출은 더욱 많을 수밖에 없어 만성적인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로 인해 취업과 소득기회를 얻기 어려운 데다가 장애치료를 위한 추가적 지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5년 현재 장애인 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52.1%에 불과하며, 취업 장애인의 월평균소득은 115만 원으로 상용종업원 월평균임금의 44.5% 수준이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장애인의 빈곤율(중위소득 60% 미만)은 무려 40%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장애인들은 공동체 성원으로서의 인격적 존엄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인들의 만성적 빈곤은 무엇보다 이들이 변변한 직업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취업의 문턱은 너무 높고,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다. 장애인의 미취업 원인을 고려할 경우 15세 이상 장애인 203만명 중 취업자는 69만4000명에 불과하고 실업률은 23%에 달하고 있다.

 

또 장애인들은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취업 의지를 포기한 채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설사 취업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어느 집단보다 취업과정에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비록 높은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고용기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저임금 허드렛일 종사... 생산성 올리려 장애 악화시키기도

 

일자리를 얻는 경우에도 싼 임금의 허드렛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들의 취업직종은 주로 단순노무직(27.6%), 농·어업(19.0%), 기능원·기능근로자(12.3%)에 편중되어 있다. 이들은 주로 4인 이하의 영세사업체(32.0%)에 고용되거나 50인 이상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사업체에 근무하는 경우(43.5%)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업무 선택에 제약이 주어지고, 높은 숙련이 필요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를 담당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또 많은 사용자들이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활용하려고 하기보다 장애인고용을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을 얻거나 장애인에 대한 자선과 시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결국 장애인들은 경기변동에 따라 인원조정이 필요한 경우 1차적인 희생자가 되며, 새로 일자리를 찾고자 할 때, 직업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다시 단순 반복노동에 갇힐 수밖에 없다.

 

장애인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시혜적 시각이나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의 취약한 지위는 장애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비인격적 대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가혹한 경쟁이 일상화된 작업장 문화에서 장애인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비장애인 노동자들과 비교되고 인간적 모멸감을 경험하게 된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조직내 생산성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몸에 무리가 가도록 과도한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장애가 심화되는 악순환에 직면한다.

 

이와 함께 장애유형과 장애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작업환경과 직무배치, 직무평가는 비장애인 노동자들과의 소통이나 업무 협조를 어렵게 만든다. 이는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절망감을 가져오고, 이들의 근로능력에 대한 사용자의 불만과 불신은 장애노동자의 인격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장애인 의무고용율 2004년 1.37%... 법 제도적 측면 강화 필요

 

장애인노동자들이 취업과정과 노동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인 측면과 함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장애인노동자의 문제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과 제도,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내에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법을 배우는 문화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먼저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많은 장애인들이 적절한 직업을 갖고 세금을 내는 떳떳한 사회구성원이고 싶어 한다. 2000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개정되었고,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여전히 장애인 의무고용율은 2004년 1.37%에 불과하다. 많은 기업들은 고용부담금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고 정부부문에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강화하고 고용평등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기업별로 장애인 고용현황 분석 및 고용평등 계획을 수립하고 고용평등계획 이행실적을 제출하도록 하여 그 평가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동권과 관련한 정책결정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기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장애노동자들이 대부분 저임금의 허드렛일에 종사하고 있고 경기변동 과정에서 일차적인 해고대상이라는 점에서, 장애노동자 문제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유형에 따라 장애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이 다양한데도,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직무를 개발하고 숙련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시장 정책이 없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애유형별로 적정한 직무를 분석하고 장애유형과 직무성격을 고려한 취업알선 및 직업훈련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장애인을 다수 고용한 사회적 기업을 통해 '보호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 낯선 당신, 배워라

 

마지막으로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노동자들은 작업장 내에서 차별과 소외를 당하거나 소통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것을 불편하고 낯설게 느끼고 있고, 장애인과 어떻게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툰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차이로 인식되고, 정상인들과 같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분리와 배제의 시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통합의 관점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화하되, 근로능력의 차이가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소통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태그:#장애인 노동자, #장애인 의무고용, #빈곤, #노동취약계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