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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방영된 KBS <환경스페셜> '야생의 반쪽 수컷'
 지난 15일 방영된 KBS <환경스페셜> '야생의 반쪽 수컷'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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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화면의 주인공, 누구일까요? 15일 밤 KBS <환경스페셜> '야생의 반쪽 수컷' 편을 보신 분이라면, '아! 저 사람'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봄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도 시청하셨다면, 더욱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신동만(43) KBS 자연다큐 전문PD입니다.

그럼 화면 속에서 신 PD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촬영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자연의 위대함 때문"이라며 방송 주제를 직접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프롤로그입니다.

시작할 때만 잠깐 하고 마는 것도 아닙니다. 쌍안경으로 물꿩을 바라보면서, 카메라로 원앙을 촬영하면서, 고라니를 찾아 운전을 하면서, 심지어 바닷물 속에서도 신 PD의 현장 내레이션은 계속 됩니다. 유독 "지금 무엇이 어떻게 하고 있다"는 말도 자주 나오고, 그만큼 현장성도 팍팍 느껴지죠. 성우 내레이션 역시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따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전달 방식에 자연다큐 PD로만 13년 동안 일한 경력, 그리고 연어 촬영을 위해 스쿠버 다이빙까지 배운 이력까지 합쳐진 결과인 듯합니다. 지난 3월 방영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편이 13%를 넘는 시청률을 올렸던 것도 우연이 아니겠지요.

'공존실험-까치' '봉암사의 숲', 감동 먹었지요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 blog.naver.com/geni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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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동만'이란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그의 자연다큐를 한 번쯤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겁니다.

우선 2001년 방영됐던 '공존실험-까치'가 떠오릅니다. 과수원에서 과일은 본체만체, 벌레만 잡아먹는 까치는 확실히 놀라움을 안겨 줬었죠. 2003년 '봉암사의 숲'도 잊지 못합니다. 참선 중인 스님, 스님 신발 속에 있는 두꺼비.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공존에 무척이나 감동 먹었습니다.

그러니 신 PD가 2008 피스앤그린보트에 승선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평화와 환경이란 나무'의 엑기스가 바로 공존일테니까요. 누구는 잘났고 누구는 못났다는 식, 무엇만 중요하고 무엇은 덜 중요하다는 식으로는, 평화도 없고 환경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겠지요.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신 PD는 "사람만 잘났고 동물은 못났다는 식의 생명관으로는 환경 문제는 물론 다른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답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로 생태계 전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공존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지요.

자연다큐 전문PD로서의 애환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시청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PD가 아닐까 했는데 착각이었더군요. "오랜 시간과 제작비가 투자되는 만큼 암묵적으로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있게 마련이고, 또 자연 다큐는 투자한다고 다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운도 따라줘야 하는 만큼  PD들의 부담감도 상당히 크다"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둘째 딸 아이 이름을 자신이 취재했던 지명으로 지었다고 하니, 천상 어쩔 수 없는 자연다큐 전문PD인 것 같더군요. 이번 피스앤그린보트에서 "이 세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는 신두리 아빠의 생명 이야기, 미리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애 낳는 것까지만 보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

"한동안 시청률 두 자리는 꼭 지켜왔는데, 그것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시청률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머리 숙여 반성해야지요. 또 최근 들어 드라마가 조금 강세를 띠면서 환경스페셜이 약세로 접어든 점도 작용한 듯합니다." <블로그 '신동만 PD의 야생 속으로'>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 blog.naver.com/geni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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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를 보니까 시청률에 대한 소회가 있더라. 어제(15일) 시청률은 어느 정도 나왔나.
"서울은 10.9% 나왔는데, 전국 평균은 8.4%였다. 보통 센 드라마가 나오면 상대적으로 다큐 시청률을 뺏긴다. 올해도 9월 이후 3사 모두 센 드라마 나오지 않았나. 최근 조금씩 (다큐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까먹을 수 없지 않나. 나름 선방했다고 본다."

- 자연다큐 PD들은 그래도 시청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는 않다. 오랜 시간과 제작비가 투자되는 만큼, 1차적으로는 완성도지만 암묵적으로 시청률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기 마련이다. 완성도와 시청률이 다 실현되면 물론 좋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특히 자연 다큐는 투자한다고 다 찍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자연다큐 PD들의 부담감도 상당히 크다."

- 원하는 장면을 원하는 순간에 찍는다는 보장도 없고.
"원한다고 되면 자연이 아니지 않나.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무대뽀' 정신 등 여러 가지를 갖춰야 한다."

- 집에서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출장이 길다 보니까(웃음). 국내에서는 28일 동안 출장을 간 적도 있었다. 집사람이 둘째 애를 가졌을 때 일인데, 하필 출산 당일에 현장에 가야 했다. 그래서 애 낳는 것까지만 보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서러웠겠나."

가장 큰 보람이자 안타까움 '신두리 모래언덕'

"전체 방향은 야생의 세계를 '수컷'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송입니다. 왜 암컷이 아니고 수컷이냐고요? 남들이 다 서는 쪽에서 바라보면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자연다큐 방송을 보면 암컷의 모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지만요. 이에 대한 반성이라고나 할까." <신동만 PD 블로그>

- '수컷'의 관점이라니, '마초'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더라.
"(웃음)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모성이고 수컷은 별 볼일 없다는 편견이 있다. 단순히 수컷이 암컷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는 결국 암수 조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고, 그것이 생명의 아름다움이란 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3월에 방영된 '수리 부엉이'의 경우는 특집, 어제(15일) '생명 이야기' 시리즈는 정규 다큐에 해당하는데, 이번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자연에 대한 편견이나 곡해를 바로잡아보자는 것이다."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 blog.naver.com/geni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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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전달 방식이 돋보이던데.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시청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었다. 형식상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PD가 전면에 나서 PD의 시선으로 시청자와 소통한다면, 그 과정에서 주제 의식의 설득력도 높이고 시청자들의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자연다큐 PD로 일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96년부터다. 우연한 기회에 '녹색보고-나의 살던 고향은' 제작에 참여했는데, 동물들을 만나는 과정이 싫지 않았다. 녹색보고 시리즈가 끝나고, '환경스페셜'에 결합했다. 그냥 동물들을 쫓아다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이 커지더라. 그러다 운이 따라 남들이 보지 못했던 동물들도 먼저 잡게(촬영하게) 되고…. 무슨 특별한 사명감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아니다."

- 그동안 가장 크게 보람을 느꼈을 때는?
"2000년도에 '최후의 모래땅, 신두리'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5.6%라는 아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덕분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모래 언덕의 신비로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뿐만 아니라 신두리 모래 언덕이 이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큰 성과를 얻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뜻깊은 방송이었다."

사람만 잘났고 동물은 못났다? 피해를 주면 죽여라?

"저에게 신두리는 특별합니다. 저는 매일 신두리와 함께 삽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제 딸 아이가 신두리이기 때문이죠…(중략)…방송 이후 딸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신두리'라고 지었습니다. 둘째여서 두리라고 정하고 나니 묘한 조합이 되었습니다. 신두리… 이래저래 신두리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동만 PD 블로그>

신두리 앞 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신두리 앞 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 blog.naver.com/geni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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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속상했을 때는?
"우리 노력들이 작은 실수로 수포로 돌아갈 때 굉장히 안타깝다. 신두리 모래언덕에는 해안 모래가에만 서식하는 왕쇠똥구리가 있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오히려 다 사라져 버렸다. 당국에서 소 방목을 금지시키면서, 소가 없어지니 그들(왕쇠똥구리들)도 자취를 감춘 것이다. 무지한 보호가 때에 따라서 파괴를 부를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 준 것이다."

- 자연 다큐를 만들면서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할까? 화면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주제 의식이 있을 것 같다.
"공존이다. 2001년 환경스페셜 '공존실험-까치' 편에서 '조건적 미각 기피행동'을 유도해 과수원 배는 먹지 않으면서 벌레만 잡아먹는 까치를 보여줬다. '봉암사의 숲'편에 나타난 스님과 야생동물의 관계는 결코 적대적이지 않았다. 모두 스님처럼 '아름다운 동거'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유해조수는 허가만 받으면 총으로 잡을 수 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당연히 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사람만 잘났고 동물은 못났으니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면 죽여도 된다는 이야기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잘못한다고 죽일 수 있나. 그렇게 못하지 않나.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인데도,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을 야생동물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 결국 공존이란 책임을 나누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존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이 농작물을 다 먹어치우는데 농민들만 일방적으로 참으라고 할 수 없지 않나. 다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로 생태계 전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고 본다. 또 이런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어떻게 자라나겠는가. 이들이 올바른 생명관을 갖게끔 해야만, 환경 문제뿐 아니라 사회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피스앤그린보트 "뒷 이야기, 촬영현장에서 느낀 기후변화도 함께"


"오르기만 하는 산행에서 삶을 느끼는 산길 걷기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속에서 살아있는 자연도 함께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옛길 복원은 단순히 길을 걷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길을 통해서 마음으로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관광버스 타고 북적거리는 여행을 원하신다면 지리산 옛길을 갈 필요 없습니다." <신동만 PD 블로그>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결국 과학적 자연 다큐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뭔가 입증을 통해 근거 있게 보여주자는 쪽이다. 학계에서 이뤄지는 연구들을 PD의 시선으로 작업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 스스로도 학문적 무장을 더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신동만 KBS 자연다큐 전문피디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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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앤그린보트'에서의 계획은?
"고라니 다큐 등을 통해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또 자연다큐 PD들이 야생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더라.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서 감지되는 기후변화도 소개할 생각이다."

- 승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이야기만 풀어놓기보다는,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스스로도 돌아보고 싶다. 기후변화 시대에 내가 정말 얼마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반성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이 세상의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삶 속에서 실천한다면,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나."


태그:#신동만, #환경스페셜, #KBS, #기후변화, #피스앤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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