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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법원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로 정든 법원을 떠나며…."

 

보통 매년 2월경 사법부의 정기인사철이 되면 지방법원장이나 고등법원장직에서 물러나 퇴직하는 법원장들이 하는 퇴임사의 한 구절이다.

 

법원을 구성하는 판사와 법원공무원 등을 모두 아울러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인식의 정당성을 차치하고, 이러한 표현들은 퇴직을 앞둔 법원장급 고위 법관들이 자기가 몸담았던 법원조직, 사법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도 애정을 느끼는 법원을 떠나자마자 법원은 물론이거니와 법조계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니, 퇴직을 한 법원장들이 곧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엊그제까지 몸담았던 그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의 법정에 특정사건의 변호인 또는 대리인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어제까지 법원장님이라 부른 사람을, 내일이면 변호인 석에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퇴직한 29명의 지방법원장 출신 변호사와 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들이 퇴직 후 1년 내에 최종근무법원의 사건을 수임해 변호사로 나타난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자료(이슈리포트) "법원장 출신 변호사의 퇴직전 최종근무법원 사건수임사례 조사 - 이들의 낯뜨거운 행태, 계속 방치할 것인가"를 19일(일)에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공개된 판결문과 동명이인 여부 구분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사가능한 대부분의 퇴직 법원장들이 퇴직한 지 3일 만에 또는 한 달도 안돼 자신이 마지막에 몸담았던 법원의 사건을 수임한 것이 수십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04년과 2007년 사이에 퇴직한 고등법원장 10명 중에서 7명의 퇴직 고법원장이 퇴직 후 1년내 자신이 최종근무했던 법원의 사건을 수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신정치 전 서울고법원장(2004년 퇴직),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2005년 퇴직), 강완구 전 서울고법원장(2005년 퇴직), 정호영 전 서울고법원장(2006년 퇴직), 곽동효 전 특허법원장(2006년 퇴직), 김진기 전 대구고법원장(2007년 퇴직) 등이 퇴직 1년 내에 제각각 최종근무법원 사건을 수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같은 기간 퇴직한 지방법원장 19명 중에서도 13명에게서 동일한 사례가 드러났다. 김명길 전 인천지법원장, 강병섭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황인행 전 서울가정법원장, 김상기 전 서울행정법원장(이상 2004년 퇴직), 이광렬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조용무 전 대전지법원장, 안성회 전 서울동부지법원장, 김목민 전 서울북부지법원장, 강문종 전 부산지법원장, 변동걸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김인수 전 서울행정법원장(이상 2005년 퇴직),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 이종찬 전 서울북부지법원장(이상 2006년 퇴직) 등이 바로 그들이다.

 

퇴직한 지 며칠 만에 변호사로 다시 나타나

 

개별 변호사들의 수임사건 내역 조사는 자료접근의 한계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참여연대의 조사결과도 실제 수임한 사건 중에서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또 퇴직 1년내 최종근무법원 사건을 수임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일부 퇴직 법원장의 경우에도 실제로는 수임한 사례가 많을 것이다.

 

퇴직한 지 1개월도 되지 않아 자신이 마지막에 몸담았던 법원의 사건을 수임했던 이들도 다수인데,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의 경우는 7건의 사례가 발견되었고, 김진기 전 대구고법원장과 신정치 전 서울고법원장에게서 각각 5건의 사례가 발견되었다.

 

특히 김진기 전 대구고법원장은 퇴직 후 3일 만에 대구고법의 사건을 수임했고 박행용 전 광주지법원장은 퇴직 후 6일 만에 광주지법의 사건을 수임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사법부 불신, 부채질하는 고위 법관출신들

 

이같은 낯뜨거운 사례들은 이들 퇴직 법원장들이 과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퇴직 법원장뿐만 아니라 대부분 퇴직 판·검사들이 퇴직 직후 자신이 근무하던 법원이나 검찰청 앞에 개업을 한다. 그리고 이들이 퇴직후 1~2년 사이에 최대한 많은 사건을 수임하여 경제적 이득을 챙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관예우'라는 한국적 현상이 발생하면서 개별 사건의 처리과정에 대한 재판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재판에 임한 변호사, 그리고 국민 모두가 사법부의 판결결과와 과정을 불신하게 된다.

 

개별 법관들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한다고 해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기어려운 게 사실이다. 재판과정에서 퇴직 판·검사(전관) 출신 변호사의 요청, 예를 들면 증거물 채택이나 증인 채택 여부에 있어 '전관 변호사'와 '전관 아닌 변호사'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불만이다.

 

또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잡아주느냐 마느냐도 얼마 전까지 법원장 또는 선배법관으로 모시던 분이 요청할 때와 전혀 그렇지 않은 변호사가 요청할 때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변호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이런 문제가 심각한데도 사법부 조직에서 지방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장을 맡을 만큼 고위직에 올랐던 이들이 전관예우 논란과 의혹을 부채질 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막을 방법, 과연 없는 것일까

 

종신법관제가 제도적으로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또 관행으로도 자리잡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위 법관들도 퇴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는 사법부와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존중하여 고위 법관들이 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여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스스로 하지 않거나 또는 변호사로서 활동하더라도 전관예우 논란을 불러일으킬 사건의 수임을 스스로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몇 년 전 퇴직했던 조무제 전 대법관은 퇴직 후 개업을 하지 않고, 동아대학교의 석좌교수로 퇴직 후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매우 드물면서도 모범 사례다. 고위법관일수로 명예심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가능할 일이다.

 

만약 자율적으로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고 또 조기에 관행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제도로 퇴직 판·검사들이 퇴직 후 일정기간동안 전관예우 논란이 심각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두 차례나 의원발의되었으나 법사위에서 제대로 검토되지 못해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지난 6월 자동폐기된 변호사법 개정안 '퇴직 판검사 퇴직 후 1~2년 최종근무법원 형사사건 수임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개선안은 18대 국회들어 지난 6월 벌써 국회에 의원발의되어 있다.

 

그동안 이런 식의 제도개선방안에 대해 법원이나 검찰 또는 일부 변호사와 변호사출신 국회의원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이 즐겨 쓴 반대논리는 퇴직 판검사와 군법무관이 퇴직 후 최종근무지 관할구역에 변호사개업을 금지한 과거 변호사법 조항을 헌법재판소가 지난 1989년 위헌이라고 결정한 사실이다.

 

그러나 1989년 헌재가 위헌이라고 한 법조항에 대한 위헌이유가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퇴직 판검사, 퇴직 후 1~2년내 최종근무법원 형사사건 수임제한'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89년 헌재 위헌 결정, 18대 국회 변호사법 개정안에 적용가능한가?

 

우선 1989년 위헌결정 변호사법 조항이 위헌이 난 이유는, 그 조항은 판사, 검사 또는 군법무관 재직 경험이 15년 이하인 사람에게만 최종근무지 관할구역내 변호사개업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판사, 검사, 군법무관으로 더 오래 근무한 사람에 비해 차별을 한다는 것이어서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전관예우 논란 때문에 만들어진 법조항의 취지라면 사실 재직 기간이 더 오래된 사람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인데, 그나마 거꾸로 되었다고 헌재 결정문에는 적혀 있다

 

또 당시 조항은, 최종근무법원 관할구역 전부에서 개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 금지범위가 너무 넓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전지방법원의 관할구역은 대전광역시만이 아니다. 대전 인근의 충청남도 지역이 모두 대전지방법원의 관할구역인데 이것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또 대전지법원장으로 퇴직한 사람이 만약 청주지법의 관할구역인 청주에서 개업을 하더라도 그는 대전지법의 사건을 수임할 수 있게 되어 애초 의도했던 전관예우형 사건수임을 막지 못한다는 허점도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일정기간 최종근무지법원의 사건수임 제한'은 이같은 위헌이유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 전국 어디서나 개업은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전관예우형 사건수임, 즉 퇴직 후 짧은 기간 내 자신이 근무했던 법원에 변호사로 등장하는 일은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법원이나 검찰 등에서의 재직기간에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

 

물론 이같은 변호사법 개정방안은 고육지책에 불과하고 이 방법으로 전관예우 문제가 싹 해결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법부와 법조계에 대한 신뢰의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참여연대가 19일 발표한 이슈리포트 입니다. 


태그:#퇴직법원장, #전관예우, #참여연대, #법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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