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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집 속에 숨은 노래 팸플릿
▲ 가집 속에 숨은 노래 가집 속에 숨은 노래 팸플릿
ⓒ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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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 늙거다
무스(무슨) 거슬(것을) 내 알든가
울 아래 황국(黃菊)이요 안상(案上. 책상 위)의 현금(玄琴, 거문고)이로다
이중에
일권가보(一卷歌譜, 악보 한 권)는 틈 없은가 하노라

-김수장 <해동가요>, '이제는 다 늙거다' 모두

가을이 점점 깊어지면서 예쁘게 물든 단풍잎이 갈빛으로 변해 바람이 불 때마다 투둑투둑 낙엽비 되어 떨어진다. 저만치 은빛 머리칼에 낙엽비를 맞으며 홀로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이 한 폭 풍경화로 빚어진다. 어디선가 덧없는 인생을 쓸어 담은 구성진 노래가 풍경화를 타고 나직하게 들려올 것만 같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해묵은 기억을 슬며시 꺼내 가을이 남기는 빈자리를 채우며 쓸쓸함을 달래기도 하고, 흘러간 옛 노래를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스스로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기도 한다. 한 해를 낙엽비로 마무리하는 가을을 추억과 사색의 계절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듣는 옛 노래. 그중에서도 낡은 노래책 속에 파묻혀 자칫했으면 영원히 잃어버릴 뻔만 했던 옛 노래는 더욱 정겨우면서도 살갑다. 조상들이 남긴 옛 노래 속에 숨겨져 있는 우리 역사와 그 역사를 살아낸 조상들의 삶. 그 삶이 어찌 지금 우리들 삶과 다르다 할 수 있으랴.    
 
잊혀진 김수장 <해동가요> 7편 새롭게 복원된다
                               
낡은 노래책 속에 파묻혀 자칫했으면 영원히 잃어버릴 뻔만 했던 옛 노래
▲ 가집 속에 숨은 노래 낡은 노래책 속에 파묻혀 자칫했으면 영원히 잃어버릴 뻔만 했던 옛 노래
ⓒ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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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흥겹고, 애절하며, 때로는 아정하고 은은한 우리 가락에 반해 보낸 세월이 어느새 35년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국악 분야 중 특히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가져다주는 가곡에 매력을 느껴 지난 96년 첫 무대를 가진 뒤 다시 용기를 내 중요무형문화재 30호 가곡전수관 이름을 내걸고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이수자 이정희, '모시는 글' 몇 토막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경남 마산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송당가곡보존회가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29일(수) 저녁 7시30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되는 '가집 속에 숨은 노래-김수장의 해동가요 중에서'가 그것. 후원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번 공연은 조선시대 가객(歌客) 김수장이 엮은 가사 모음집 '해동가요'(海東歌謠)에 들어있는 노랫말 9곡 중 7곡이 전통 성악곡인 가곡 형태로 새롭게 복원돼 20세기 이후 처음으로 불리워진다. 김수장 '해동가요'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소박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공연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 가곡전수관장과 영송당가곡보존회, 가곡을 사랑하는 학자들 모임인 '곶고리회' 회원 등이 출연한다. 이번에 초연되는 곡은 평조 두거 '해 뜨면 일하고', 계면조 이삭대엽 '내 소리 담박한 중에', 계면조 대받침 '오날이 오날이 소셔' 등 7편이다.

이번 공연을 연출한 여창가곡연구회 이정희 회장은 "김수장 해동가요집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있지만 지금 불려지고 있는 곡은 50여곡 정도"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18~19세기에 사랑받던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내 가곡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가집 속에 숨은 노래-김수장의 해동가요 중에서' 공연 팸플릿
▲ 가집 속에 숨은 노래 '가집 속에 숨은 노래-김수장의 해동가요 중에서' 공연 팸플릿
ⓒ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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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시간이 멈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오날이) 오날이소셔
매일(每日)의 오날이쇼셔
져므려지도(저물지도) 새지도 마르시고
매양에(늘)
주야장상(晝夜長常, 밤낮 항상)에 오날이 오날이쇼셔

-계면조界面調 대받침[歌畢奏臺] '오날이 오날이소셔' 모두

노랫말 해설을 맡은 권순회(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오날이 오날이소셔'는 축제의 노래이자 환희의 노래"라고 설명한다. 권 교수는 "매일이 오늘과 같은 환희의 나날이면 얼마나 좋으랴! 여기서 시간이 멈춘다면 더 없이 좋으련만이란 뜻이 담긴 '오날이'는 가곡의 조종(祖宗)이라 할 만한 노래"라고 못 박는다.

권 교수는 이어 "특히 이 곡은 임진왜란 때 김해, 웅천 등지에서 일본에 끌려갔던 우리의 도공들이 불렀던 노래로서, 지금은 일본 가고시마현 옥산신사의 <학구무가>로 남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그냥 구전된 대로 부르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만대엽, 중대엽(국악 가곡의 원형, 금합자보 1572, 양금신보 1610에 기록되어 있음) 이후 부르지 않았는데, 이번 공연에서 처음 남녀병창으로 부른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연에 선보이는 가곡 9곡은 ▲평조 이삭대엽 '성음은 각각이니' ▲평조 평거 '노래 삼긴 사람은' ▲평조 두거 '해뜨면 일하고'(초연) ▲평조 소용이 '아함 귀 뉘옵신고'(초연) ▲반우반계 반엽 '이제는 다 늙거다'(초연) ▲계면조 이삭대엽 '내 소리 담박한 중에'(초연) ▲계면조 두거 '이 몸 생긴 후에'(초연) ▲계면조 평롱 '장삼 뜯어 중의 적삼 짓고'(초연) ▲계면조 대받침 '오날이 오날이소셔'(초연)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영송당 조순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관장, 국악전용소극장 가야국악회관 관장, 경상남도 문화재전문위원, 한국국악교육학회 이사,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 이사, (사)여성장애인연대 이사, (재)한국전통무형문화재진흥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반주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연주단.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이수자 이정희
▲ 이정희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이수자 이정희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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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이수자 이정희(용원초) 교장과 전화로 주고 받은 일문일답이다.

-이번 공연의 특징은?
"김수장의 <해동가요> 속에 전해진 9곡의 노래들을 엄선하여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무대이다. 특히 계면조 남녀병창 '오날이 오날이쇼서'를 비롯한 6곡은 19세기 이후 초연되는 곡들로 영송당 조순자 선생은 물론 영송당가곡보존회 회원, 곶고리회 회원들이 가곡전수관 반주단의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가집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남겨지는가?
"가곡, 가사, 시조는 조선시대 소위 클래식한 성악 장르로서 이 노래들은 단지 구전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책으로도 남겨졌다. 우리 선조들은 악기 연주를 위하여 '금보'라고 하는 악보를 남겼고, 노랫말의 기억을 위해서는 가사 모음집인 '가집'을 남겼다.

-김수장이 남긴 '이 몸 생긴 후에'에 대해 설명 좀 해 달라.
"이 몸 생긴 후에 / 성대(聖代,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를 만나오니 / 요천일월(堯天日月, 천하 태평하던 요 나라 때의 해와 달)이 대동(大東, 우리나라)에 밝았세라 / 우로(雨露, 넓고 큰 임금)의 / 덕택이 넓으시어 못내 즐겨 하노라"로 시작되는 이 시조도 김수장이 직접 지은 것이다.

이 시조는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가 우리나라에 밝았다고 하며, 넓고 큰 임금의 은혜를 찬탄하고 있다. 이 시조를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대한 사람들 모두의 갈망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김수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조선 후기 가객이자 시조시인이었던 김수장(金壽長, 호 노가재, 老歌齋)은 1690년에 태어났으나 생몰연대는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가재는 숙종 때 병조에서 서리(書吏)를 지냈고, 1746년 영조 22년부터 <해동가요>(海東歌謠)를 묶기 시작해 1755년 제1차 작업을 마쳤고, 1763년에 제2차 작업을 마쳤다.

노가제는 그 뒤에도 1770년에 이르기까지 <해동가요>에 실린 가사를 계속 고치고 새롭게 묶으면서 자신의 시조 117편도 함께 넣었다. 노가제는 가객으로 김천택(金天澤)과 쌍벽을 이루었으며, 당시 전문 시조 가창단체인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을 이끌어온 중추적 인물이었다. 그는 말년에 서울 화개동(花開洞)에 집을 지어 그 이름을 노가재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인생무상, 충효, 안빈낙도 등 유가적인 것과 남녀 애정, 서민생활, 사생활 등 여러 가지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공연에서 불리는 가곡들은 가집의 노랫말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과도 같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통해 가집 속에 담긴 우리의 노래를 멋스럽게 향유하고 후대에 전하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을 본받아 앞으로 우리 노래의 나아갈 방향을 바로 할 뿐만 아니라 가곡의 전승과 확대사업에 발판을 놓을 것이다."


태그:#조순자, #이정희, #김수장 해동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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