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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 운곡마을 들녘
▲ 보리 파종 옥룡 운곡마을 들녘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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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이 따뜻하게 느낌으로 다가온다. 담장 곁으로 국화과에 속하는 메리골드 꽃이 드문드문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부러 심어놓은 꽃나무는 아닌 듯싶다. 지난해에 심은 꽃봉오리에서 떨어진 씨앗이 용케 담장 옆에 자리를 잡아 꽃을 피운 모양이다. 주황과 노랑색으로 섞여 활짝 핀 메리골드의 진한 꽃향기 푹 빠진 표범나비는 꽃을 떠날 줄 모르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황량한 벌판이 되었다. 서리가 온다는 ‘상강’이 지난 들녘에는 차가운 바람이 주인인 냥 쌩쌩 분다. 유년시절 이때쯤이면 공놀이를 하였다. 벼 수확이 끝난 논은 시골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찬 볏짚공은 럭비공처럼 방향을 예측할 수가 없이 굴러간다.

찬바람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만큼 희희낙락 공놀이에 하루해가 짧기만 했다. 바람이 많고 거세게 불 때면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창호지에 보리밥풀 사용하여 만든 긴 꼬리 가오리연을 만들어 날렸었다. 당기고 푸는 연줄의 팽팽한 연과의 씨름에 추위를 잃곤 하였다.  

유년시절 보리파종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경운기를 이용하여 보리 파종을 하고 있습니다.
▲ 보리 파종 경운기를 이용하여 보리 파종을 하고 있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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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들판이 오늘(2일)은 시끄럽다. 아버지는 벼 수확이 끝난 논에 보리파종을 하고 있다. 경운기의 요란한 엔진소리는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경운기가 지나가자 아래통만 남은 벼 포기가 뿌리째 뽑혀 거무스레한 흙과 함께 뒤집힌다. 미리 뿌려 놓은 보리 씨앗은 흙속으로 묻힌다. 일손이 없는 시골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보리파종을 한다. 

보리밥을 주식으로 살던 어렵던 시절. 이때쯤이면 모든 논에 보리파종을 하느라 농촌들녘은 바쁜 시기였다. 가을걷이는 보리파종까지 끝이 나야 겨울 농한기를 맞이한다. 일손이 많은 유년시절 보리파종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경운기는 일정한 간격으로 깊은 골을 만든다. 구불구불한 논의 곡선을 따라 만들어진 골은 음률이 살아있는 한 폭의 시골 풍경화를 만들어 낸다.

지난여름에 수확한 보리는 씨앗으로 땅속에서 모진 겨울을 이기고 따스한 봄의 꿈을 꿀 것입니다.
▲ 보리 지난여름에 수확한 보리는 씨앗으로 땅속에서 모진 겨울을 이기고 따스한 봄의 꿈을 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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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리씨앗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괭이를 사용하여 그 골의 중간부분 흙을 평평하게 다져서 씨앗을 골고루 뿌린 다음 다시 흙을 덮어주면 파종이 끝이 났다. 고랑마다 세세한 손길이 가야 하기 때문에 팔과 허리에 통증이오는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었다. 누렁이 황소의 힘을 빌려 쟁기로 논을 갈아 보리를 심을 때는 더 흙덩이를 부서 부드러운 흙으로 만드는 과정이 힘이 들었다고 한다.

땅을 뒤집으면서 지나가는 경운기의 굉음에 놀란 여치와 거미는 논두렁위로 대피를 한다.  점점 개최수가 많아진 여치와 거미가 반갑다. 농사짓는 친환경 농법으로 달라지면서 사라져가던 곤충들이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온 것이다.

지금은 보리파종 시기

▲ 보리파종 매년 이때쯤이면 보리파종을 합니다. 시골 들녘 보리파종을 동영상에 담았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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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보리파종시기가 입동(立冬). 입동이 있어. 절서(節序)가."
"그 절서에 따라서 전3일 후3일 보리를 갈면 좋다는 거야."

입동(7일)이 되려면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힘든 일을 그만 해도 좋으련만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아버지(74)의 경운기 소리는 여전히 힘차게 들린다. 연세가 있기 때문에 작은 사고라도 날까 염려스럽다.

당장 아버지가 경운기질을 하지 않으면 옆집 함씨 할머니, 김씨 할머니 농사에 문제가 생긴다. 경운기 핸들을 한 번 잡아보자고 하자 기술이 없는 사람이 잡으면 보리 싹을 잘 띠우지 못한다고 극구 반대다. 다 큰 아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굳은 일시키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예전에는 입동을 전후로 보리파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를 앞당겨 파종을 하여도 오히려 소출이 더 좋다고 한다. 빨리 심은 보리는 작은 가지줄기가 더 많이 나와 실하게 자라기 때문에 겨울에 얼지 않고 월동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겨울을 이겨낸 녀석들은 내년 5월 말경쯤 수확을 한다고 한다.   

보리농사는 친환경 작물이다

아버지는 경운기과 함께 사신지 40여년이 넘었다.
▲ 경운기 아버지는 경운기과 함께 사신지 40여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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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나 나락 보리농사나 다 마찬가지."
"자식도 나락과 보리같이 잘 되면 수확이 많이 나지."
"자식도 잘돼서 잘되면 말년에 부모가 편치."

아버지는 경운기과 함께 사신지 40여 년이 넘었다. 승용차 10년이면 폐차장에 가야 한다. 경운기 엔진이 멈출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엔진소리는 아직도 청춘이다. 아버지의 활동하시는 모습도 청춘이다. 당신의 손에 길들여진 기계는 작은 힘으로도 쉽게 조작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기계는 힘으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운전을 해야 쉽다"고 한다.

보리농사는 친환경 작물이다. 농약을 살포할 필요가 없다. 밑거름을 한 땅에 씨앗만 뿌려 놓으면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아도 월동을 넘겨 다음 여름까지 잘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수확기가 여름장마철과 겹쳐 탈곡한 보리를 건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바쁜 농촌들녘의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일손도 없고 수매가격이 신통치 않은 보리농사가 천대 받는지는 오래다. 그러나 아버지의 농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태그:#보리, #보리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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