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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은 감옥도 마다하지 않고 물들었다.
▲ 어느 구치소의 벽을 따라 온 가을 가을빛은 감옥도 마다하지 않고 물들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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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거리, 높다란 블럭담과 철조망이 쳐진 인도를 사이로 하고 자란 은행나무가 자유의 하늘과 구속의 하늘을 동시에 접하고 서 있다. 담과 철조망, 그것이 자유와 구속의 공간을 가른 그 곳에서 나는 촛불 집회 배후로 지목되어 구속된 후, 지난 13일부터 단식투쟁을 시작했다는 감옥에 갇힌 선배를 생각했다.

자유의 땅과의 거리는 고작 담 높이 만큼도 안되건만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천리 길보다도 더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자유, 평화
▲ 철조망에 갇힌 가을빛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자유, 평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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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철조망, 언젠가는 걷히겠지 꿈을 꾸다가도 때론 개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차마 그 꿈이 개꿈인들 꾸지라도 않으면 영영 통일이 오지 않을까 싶어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며칠 전 '통일은 됐어!'하며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사는 것을 꿈꾸었던 문익환 목사의 시비 제막식에서 나는 통일을 꿈꾸는 몽상가들의 꿈이야기를 들었다. 요원할 것만 같은 꿈, 그러나 그 꿈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철조망 너머로 핀 가을
▲ 철조망 철조망 너머로 핀 가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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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마음에,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은 철조망들이 자리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철조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철조망은 우리네 마음 속에 있는 철조망보다 걷어내기가 수월할 것이다. 철조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마저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박힌 철조망은 나무살을 깊게 파먹은 철조망같이 우리 영혼 속에 깊이 박혀있다. 나는 그것이 더 무섭다.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갈등, 이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같은 것들은 피차 선한 단어들로 무장한 채 우리 삶으로 다가오기에 우리를 충분히 파멸시킬 수 있는 무서운 철조망인 것이다. 너무 무서워서 그냥 못 본 채, 알지 못하는 척 지나치는 때가 많다.

철조망 없는 세상을 꿈꾸는 가을빛
▲ 철조망 철조망 없는 세상을 꿈꾸는 가을빛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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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에 갇힌 가을, 감옥에도 가을은 왔다. 감옥 안에도 꽃 피어있겠지. 감옥 안이라고 다른 가을빛으로 피어나진 않았겠지. 새들도 꽃도 나무도 어느 곳에서든 자기의 빛깔로 피어나지만 자유를 뻬앗긴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겠지.

어느 노시인은 칠년 동안 독방에서 살았단다. 그것도 모자라 양 옆의 방도 모두 비워진 채 통방도 하지 못하고 칠년을 살았단다. 그렇게 칠년을 살면서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 칠년이라는 세월, 풀씨 하나 보고 희망을 품었단다. 그렇게 모질게 살아왔건만 사람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하더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달만 그렇게 살아도 미칠 거에요'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곳일까?
▲ 어느 구치소의 벽면 세상과 소통하는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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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는 곳일까? 가끔 저 곳으로 자유로이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높은 담과 철조망, 그 사이 허리를 숙여 얼굴을 들이대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잠시 허리를 숙여 자유의 땅에서 구속의 땅을 훔쳐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겠지. 그렇게 극과 극의 공간을 쉽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지 않았겠지.

떨어지지 못하고 거미줄에 걸린 은행잎이 구치소 벽에 걸려있다.
▲ 낙엽 떨어지지 못하고 거미줄에 걸린 은행잎이 구치소 벽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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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던 은행잎이 구치소 담장 거미줄에 걸렸다. 그곳 어딘가에 거미가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자유의 땅과 구속의 땅 구분이 없구나 싶다. 새들처럼 혹은 하늘처럼, 저 나무와 들꽃처럼.

철조망에 가로막힌 자유 그리고 평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다 구속된 선배의 영혼은 감옥밖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보다 오히려 자유롭다. 구속된 삶, 그것은 어쩌면 세상 밖에서 자유로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다.

덧붙이는 글 | 촛불집회 배후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된 한상렬 목사는 전태일 열사가 죽은 11월 13일부터 단식기도를 시작했으며, 국가보안법 제정일인 내달 1일까지 19일간 옥중 단식투쟁을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철조망, #한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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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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