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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보고 두 번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빗속의 여인을 기억하며", "아름다운 이 강산에 너가 있고 내가 있네"라며 짧은 머리의 단정한 노신사가 옅은 체리색 빛나는 정장을 입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시작한다.

 

"이런 날이 있을 줄 알았던 것 같이 첫째는 베이스를 치고 둘째는 건반을 치고 셋째는 드럼을 치고 있군요." 

 

이 노신사는 누구일까?

 

"오랜만에 공연에 서서 그런지 잘되지 않네요"라면서도 여유 있는 입가의 미소를 흘리는 이 신사는 바로 '록의 대부' 신중현.

 

신중현은 은퇴했다. 그리고 은퇴 후 또 공연무대에 올랐다. 2008년 11월 16일 일요일 오후 6시,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400명 남짓한 관객 앞에 섰다.

 

1부에서는 큰아들인 신대철씨가 시나위의 열정을 선보였다. 2부에서 둘째 셋째아들인 윤철·석철은 서울전자음악단의 몽환적인 전자음악과 함께 신선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어진 3부에서 아버지 신중현과 그 아들들은 관객에게 완성된 음악을 들려주고 감동을 주었다.

 

 

신중현은 1963년에, 신대철(첫째)은 1985년, 신윤철(둘째) 1988년, 그리고 신석철(셋째) 1996년에 데뷔를 했다.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 신씨 가족은 대한민국 음악의 산 증인이자 큰 기둥이다.

 

 

관객층은 다양했다. 힙합 모자를 쓴 청년에서부터 곱슬곱슬한 파마머리의 오십대 아줌마, 흰머리의 정장신사까지, 모두가 세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함께 땀을 흘리고 열광했다.

 

앉아있던 중년층이 "이제 일어서야지 우리 차례다"면서 십대의 열정을 보인 것은 공연이 시작되고도 한 시간 반이 지나고 신중현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그들은 시나위의 세련된 공연을 여유 있게 즐겼고 서울전자음악단의 귀여운 공연을 격려 하다가, 신중현이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년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같이 따라 불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인다는 '신 부자들'의 공연에서 첫째 대철은 가끔 아버지가 놓치는 리듬을 부드럽게 이어갔다. 둘째 석철과 셋째 윤철은 관객을 압도하는 아버지가 귀여우면서 든든한 듯 연신 미소를 지었다.
 
또한 신중현은 관객들에게 "아들들의 실력을 자랑 좀 하겠다"며 곡 중간에 아들들에게 시간을 주었다. 불혹의 나이 언저리에 있는 그들은 칠십이 다되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게', 하지만 자랑스럽게 연주 실력을 뽐냈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고 했던가? 신중현은 마지막 노래로 <리듬속의 그 춤을>을 불렀다.

 

"제가 1980년대 놀고 있을 때 김완선이란 친구가 와서 곡을 부탁해서 이곡을 만들어 줬습니다."

 

신중현이 댄스곡을 부르자 관객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이내 하나가 되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아름다운 강산>을 앙코르 곡으로 불렀다. 공연이 끝나고 '신중현 부자'가 무대를 떠나도, 관객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서로 "정말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공연장 밖에서 갈색점퍼를 입은 노인을 보았다. 신중현이었다. 그리고 그를 한 사십대 청년이 꽤나 많은 LP판을 들고 뒤따른다. 여태껏 신중현의 공연은 빠지지 않고 다 보았다는 이 중년의 남성은 "선생님 사인해주세요"라며 LP판을 내민다. 상기된 그의 표정을 보고 신중현은 펜을 찾는다.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이제서 수줍게 내민 그 LP판들을 보며 "어이구 꽤나 많네"하면서도 모두 사인을 한다. 그 주위에 몰려든 팬들은 "무대에서는 그렇게 거인같이 보이던데"라면서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 열정과 매력이 발산되는지 신기한 듯 쳐다봤다.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신중현의 아들'들이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닌 '저희 집 식구들의 공연입니다."

 

신중현 가족의 공연은 세대를 초월한 관객에게 숨겨진 젊음과 열정을 발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태그:#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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