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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절인 소금은 천일제염이 제격. 두어 달 전부터 사다가 간수를 충분히 뺀 덕분에 약간은 짠 맛이 바치지만 팔팔했던 배추 아파리가 낭창낭창하게 물러졌다.
▲ 천일제염으로 잘 절인 배추 배추를 절인 소금은 천일제염이 제격. 두어 달 전부터 사다가 간수를 충분히 뺀 덕분에 약간은 짠 맛이 바치지만 팔팔했던 배추 아파리가 낭창낭창하게 물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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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차갑다. 단지 피부로 느끼는 체감온도 때문이라기보다, 우리네 사는 형편도 헛헛한 게 많아져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웃음이 엷어졌다. 요즘 행복하냐? 즐거우냐고 묻는 자체가 조심스럽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어둡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도 남는다. 달력을 쳐다본다. 달랑 한 장 남았다. 그렇게 이문 남은 게 없지만 참 바쁘게 살았다. 좋은 일과 궂은일들이 씨줄과 날줄로 번갈아 선다. 세밑을 향하여―.

동물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어떻게 할까. 딱히 지켜본 대상은 없지만, 흔히 귀동냥으로 듣고 아는 바로는 다람쥐가 겨울채비에 가장 부산을 떤다고 한다. 다람쥐는 자신이 겨우내 먹을 산열매를 물어다 땅에 묻는다. 알밤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다람쥐는 자신이 어느 곳에 밤을 묻었는지를 거의 다 기억하지 못한다. 애써 욕심을 부렸어도 스스로 생존하기에 필요한 소량의 먹을거리로 겨울을 난다.  

동물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어떻게 할까

그런데 다람쥐가 땅에 묻고 미처 먹지 못한 그 밤이 몇 년 후에 싹을 틔운다! 짐승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한다. 또한 짐승들은 자신이 먹은 만큼 자연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떤가. 모든 걸 넘치게 가지려고 한다. 때문에 남의 몫을 빼앗아야만 내 것이 많아질 수밖에. 왈가불가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니 제 정신을 가지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가능하면 어쭙잖은 이야기를 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살가움이 흠뻑 묻어나고, 행복해서 정말 살맛난다는 이야기를 붙들고 싶다. 아무리 행복이 내 생활주변 가까운 곳에 있고,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꼬리를 물고 불거지는 일들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정말 살맛난다는 이야기를 붙들고 싶다

그러나 오늘은 다 털어버리고 아침나절부터 김장을 했다. 겨울채비에 있어 김장김치에 공들이는 일만한 게 또 있을까. 모두 손을 걷어붙이고 매달렸다. 우선, 지난 오일장에서 사두었던 배추를 절였다. 배추는 손수 애지중지 키웠다는 농민으로부터 한 포기당 단돈 천원에 샀다. 정말 배추 한 포기 가격이 말이 아니다. 지난해 같으면 무려 오십 포기를 욕심냈을 터지만, 열 포기만 샀다. 물론 그것으로 겨울나기에는 부족하다.

“어디 만원으로 이만한 반찬거리를 살 수 있나? 돈으로 사 먹는 사람들이야 별 생각 없이 몇 십 포기를 당연한 듯이 사가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것도 배추가 좋다 나쁘다 하면서 이리저리 뒤적이는 사람들을 보면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참 미안하더라.”

두어 달 전부터 사다가 간수를 충분히 뺀 덕분에 약간은 짠 맛이 바치지만 팔팔했던 배추 아파리가 낭창낭창하게 물러졌다.
▲ 절인 배추 두어 달 전부터 사다가 간수를 충분히 뺀 덕분에 약간은 짠 맛이 바치지만 팔팔했던 배추 아파리가 낭창낭창하게 물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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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인 배추를 씻으며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올 같은 가뭄에도 이처럼 탄실하게 잘 자라 준 배추가 제값은커녕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세상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땅만 믿고 죽어라 일한 것밖에는 죄가 없는 농민들에게 이처럼 혹독한 일이 어디 있으랴.

겨울채비에 있어 김장김치만한 게 또 있을까

잘 절인 배추 속잎을 하나 베어 물어보니 알싸한 맛이 입안을 감친다. 배추를 절인 소금은 천일제염이 제격. 두어 달 전부터 사다가 간수를 충분히 뺀 덕분에 약간은 짠 맛이 들지만 팔팔했던 배추 아파리가 낭창낭창하게 물러졌다. 대소쿠리에 켜켜이 쌓아두고 물기를 뺀다. 아무튼 우리 집 김장김치의 첫 번째 비결은 배추 알맞게 절이기다. 이쯤이면 김치 한 보시기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다음은 갖은 양념준비. 젓갈은 봄 멸치젓갈로 한 대야 가득 떠놓고 보니 맛깔스럽게 곰삭았다. 대소쿠리에 받쳐두었다. 한 시간 남짓 그러고 나니 말간 액젓이 대야 가득 고였다. 손대중으로 맛을 본다. 짭조름하지만 고소한 맛이 넉넉하다. 이것이 우리 집 김치 맛을 내는 두 번째 비법이다.

젓갈은 봄 멸치젓갈로 한 대야 가득 떠놓고 보니 맛깔스럽게 곰삭았다. 대소쿠리에 받쳐두었다.
▲ 소쿠리에 거른 젓갈 젓갈은 봄 멸치젓갈로 한 대야 가득 떠놓고 보니 맛깔스럽게 곰삭았다. 대소쿠리에 받쳐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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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에다 마늘과 생강을 섞고 있다.
▲ 마늘생강 젓갈에다 마늘과 생강을 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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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마늘을 깠다. 잘 여물어서 통통한 오십 쪽. 토실토실한 생강 다섯 뿌리도 껍질을 까서 모두를 믹서에 갈았다. 걸쭉하게 갈아진 마늘생강이 특유의 향내를 드러낸다. 어디까지나 김치의 맛깔을 좌우하는 것은 젓갈이고, 치대는 손맛이겠지만, 마늘의 배합이 그에 못지않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김치에는 마늘이 얼굴 마담이다.

김장김치의 첫 번째 비결은 배추 알맞게 절이기다

여기에다 생조기 살점을 바르고, 생새우도 함께 간다. 취향에 따라서는 김치양념에 조기새우를 넣으면 다소 비린 맛이 염려되겠지만, 천만에, 두고두고 잘 익으면 그만한 맛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전체 양념에서 이들이 얼마만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가 하는 것, 이건 우리 집만의 노하우다.

굳이 자신 없으면 손바닥만한 생조기 스무 마리만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살을 바른 조기의 머리와 뼈는 멸치 다신물로 푹 고아서 육수로 준비해 두었다가 전체양념과 버무리면 향후 감칠맛 나는 김치를 기대할 수 있다.

생조기는 김장김치에 삭혀들어 깊은 맛을 더해 준다.
▲ 생조기 생조기는 김장김치에 삭혀들어 깊은 맛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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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새우는 김장김치의 시원한 맛을 더해 준다.
▲ 생새우 생새우는 김장김치의 시원한 맛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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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굴은 소금물에 씻어 탱글탱글하게 준비해 둔다.
▲ 생굴 생굴은 소금물에 씻어 탱글탱글하게 준비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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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에 들어가는 찹쌀풀은 배추에 켜켜이 묻는 양념을 암팡지게 달라붙게 한다.
▲ 찹쌀풀 양념에 들어가는 찹쌀풀은 배추에 켜켜이 묻는 양념을 암팡지게 달라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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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인 양념준비는 계속된다. 돌배기 머리만한 배를 통째로 갈고, 찹쌀 풀을 걸쭉하게 쑨다. 양념에 들어가는 배 즙은 김치의 맛을 시원하게 드러내주고, 찹쌀 풀은 배추에 양념이 암팡지게 달라붙도록 해주고 달착지근한 맛을 더해 준다.

싱싱한 무를 세 개 촘촘하게 썰어둔다. 똘망똘망한 생굴도 소금물에 씻었다가 물기를 쫙 빼둔다. 이로써 양념에 필요한 기본 재료준비는 다 끝났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 속양념에 미나리나 갓상치, 그밖에 쪽파 등속을 일체 넣지 않는다. 왜냐? 베추김치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맛보기 위해서다. 그래야 묵을수록 감칠맛이 더하니까.

갖은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둔 젓갈에다 버무린다. 우선 잘 말려 빻은 태양초고춧가루(배추 열 포기 담는데 고춧가루 네 근을 빻았다)를 넣고 젓갈에 찬찬하게 융화될 때까지 휘젓는다. 이때 우악스럽게 젓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저어야 한다. 김장김치에 있어 젓갈과 고춧가루가 만나는 순간이 엄청 중요하다. 천천히 배어들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걸쭉하게 갈아 둔 마늘생강을 인사시키고, 이어서 생조기생우 간 것을 배합한다. 갓 볶은 통깨땅콩도 듬뿍 넣는다. 이때 양념이 좀 팍팍하다 싶으면 조기몸채로 우려낸 육수로 양념의 끈기를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찹쌀 풀로 양념의 매기를 조정한다. 이로써 양념준비가 끝났다.

고춧가루는 잘 말린 태양초를 네 근 빻았다.
▲ 태양초 고춧가루 고춧가루는 잘 말린 태양초를 네 근 빻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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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재료를 다 넣어 버무린 양념
▲ 갖은 양념 갖은 재료를 다 넣어 버무린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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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 나는 김치


다 준비한 양념을 한소끔 재웠다가 잘 절어 물기를 쏙 뺀 배추 속에다 양념을 골고루 버무린다. 이때부터는 손맛이 김치 맛을 좌우한다. 물론 대부분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을 치대겠지만, 은근한 김치 맛을 원한다면 손끝이 아리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맨손으로 매만지는 것이 또 하나의 비결이다.

어쨌거나 김치 맛은 손맛이다. 그리고 금방 먹을 김치는 생굴을 넣어 굴 특유의 상큼한 맛을 더하고, 취향에 따라서는 재피가루를 넣어 화끈한 맛을 내면 색다른 김치 맛을 덤으로 맛볼 수 있다. 이번 우리 집 김장은 칠순의 어머니 손맛을 전수받는 의미에서 전적으로 아내와 내가 도맡아서 해냈다.

아내는 올해로 어머니의 김치 담그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 김치를 버무리기 시작한 아내 아내는 올해로 어머니의 김치 담그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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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김장김치를 담그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 초벌 버무리기를 하고 있는 필자 나도 김장김치를 담그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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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조연으로 뒤치다꺼리를 해도 되겠다. 너희들이 의좋게 김치 담그는 것을 보니 올해 우리 집 김치는 머잖아 바닥이 나겠다. 하지만 김치를 다 치대고 나도 양념장이 이렇게 남았으니 모레 장날에는 쪽파김치도 담고, 우엉김치도 담가야겠다. 요즘 세상 먹을거리가 흔해져서 그런지 속에 안 찬다. 예전 같으면 백 포기나 좋게 담았을 김장김치가 올해는 고작 열 포기만 하고 마는구나. 요것 가지고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그랬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동생 내외랑 함께 김장을 하였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는 섭섭해 하셨다. 이유인즉슨 아직까지 묵은 김치가 냉장고를 턱하니 자리하고 있는 마당에 김치 고픈 줄 모르고 사는 때문이다. 아들도 객지 공부하러 떠난 지금, 단출한 가족, 그다지 많은 양의 김치를 에둘러 가며 애써 준비해 놓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김장김치 한 포기면 밥 한 공기가 뚝딱!
▲ 밥 한 공기 김장김치 한 포기면 밥 한 공기가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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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 김장하느라 집안이 시끌벅적했는데 오늘만큼은 정말 소소하게 겨우살이를 끝냈다.

때늦은 점심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서 김치에 싸서 먹었다. 하지만 난 그래도 밥심이다. 아내는 연방 돼지수육보쌈을 주문했지만. 오후에 화왕산에 올랐다.

이 시간 어머니는 김치냉장고를 부시고 있다. 아무래도 한 칸도 다 차지 않은 김치가 못내 아쉬운 듯 자꾸만 김치가 적다며 잔투정을 하신다.

산지 처분하는 배추가 지천이다

밭머리에서 마른 담배를 태우는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애환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먹을거리가 많아졌다고 해도 김장김치만큼은 두둑하게 마련해 두는 것이 겨울나기에 든든한 힘이 아닐까 싶다. 김치 애찬가가 아니더라도. 이 밤 가수 정광태의 '김치 주제가'를 듣고 싶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다 담은 김장김치를 한 포기 담았다.
▲ 김장김치 다 담은 김장김치를 한 포기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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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장김치, #비결, #비법,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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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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