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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서울은 첫눈이 왔습니다. 한파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 겨울비가 내립니다. 날씨가 조금만 더 추웠더라면 폭설이 내릴 뻔했습니다. 쌓였던 눈이 겨울비의 포화를 맞아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근원이 같아 온 곳과 돌아갈 곳이 같을 터인데 참으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속수무책으로 겨울비에 녹아버리는 눈도 있고, 지들끼리 꼭 껴안고 겨울비의 횡포(?)를 견뎌내는 것들도 있습니다.

 

말랐다 젖었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그들은 흙이 될 것입니다. 지난 계절 그들이 바라보았던 하늘과 새와 나비와 곤충들과 그들이 피워냈던 꽃들과 열매에 대한 추억들을 간직한 채 그렇게 그들은 가고 있습니다.

 

 

가는 것이 있어 오는 것이 있으니 가는 것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는 것이 있어 가는 것이 있으니 오는 것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가야 할 때가 되어도 가지 않는 것은 추하기 마련입니다.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 것은 아픔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추하지도 아프지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아옹다옹 살 일도 아닙니다. 불로장생이 가능할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다 보니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래 살아도 아름다운 사람 이려면 정신이 맑아야 합니다. 정신이 맑으려면 그 마음에 품고 사는 것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음에 품은 것이 맑으려면 작은 것을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사람됨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 들려오는 소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미처 가지 못한 단풍잎의 이유를 몰랐습니다. 이렇게 남아있더라도 추하지 않게 남아있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소식은 적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식들만 들려옵니다. 나도 그들처럼 살지 않으면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고, 그저 묵묵히 땀 흘린 만큼의 대가에 만족하며 살아온 자신이 바보가 아닐까 회의감이 생깁니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이런 마음을 심어주는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국민을 위해서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만 제대로 살면 나라가 살고, 국민이 행복합니다.

 

겨울비에 눈만 녹는 것이 아닙니다. 나뭇잎들도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었습니다. 오늘 밤 저렇게 물기를 머금고 얼었다가 내일 또 녹겠지요. 그렇게 얼음과 녹음을 반복하다가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겨울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비가 내린다는 것은 날씨가 그만큼 따스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얀 눈이 내리지 않아도 차라리 겨울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난방비라도 조금 덜 들면 그것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연탄을 아껴쓰려고 불 구멍을 꽉 막아놓지. 그러면 방은 얼어 죽지 않을 정도는 되지. 한데보다야 낫지. 기름보일러보다 싸니께 그나마 다행이야."

 

이렇게 습기가 많은 날은 연탄가스 중독 위험이 높다고 합니다. 습기를 머금은 연탄에서 유독가스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인가 봅니다. 내복에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오돌오돌 떨며 지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죄입니다.

 

 

겨울비 내리는 숲은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그 숲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았습니다. 마른 덩굴 끝 자락에 매달린 비이슬에 앙상한 겨울 숲이 들어 있습니다. 저 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을 즈음이면 긴 겨울 힘겹게 살던 이들도 조금은 기지개를 켤 수 있겠지요.

 

겨울이라도 따스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식들을 듣고 보는 이들의 마음도 따스해지고, 그 따스해진 마음으로 더 따스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비도 잠시 쉬었다 오려는가 봅니다. 너무 추운 겨울에는 간혹 겨울비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겨울비, #이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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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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