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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건너에서 찍은 임진강...멀리 점으로 황포돛배가 보인다.
▲ 임진강 다리건너에서 찍은 임진강...멀리 점으로 황포돛배가 보인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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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이 나서 자유로를 달렸다. 파주를 갈 때는 뭐니뭐니 해도 자유로를 달린다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임진강의 멋있는 경관에다 철새들이 수를 놓고 있으니 금상첨화, 도나우강이 안 부럽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면 바로 장어다.

임진강 가까운 곳에 장어 마을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손꼽는 집은 경치까지 끝내주는 대형 장어구이집. 우리는 워낙 크고 손님이 많아 식당이 아닌 기업이라고 말했고, 한 시간씩이나 기다려도 군소리 없이 먹었다. 연례행사로. 물론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다.

"설마 그 많은 장어를 전부 임진강에서 잡은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고, 아마 양식일 거야. 그래도 국내산이겠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걸 보면 말야. "


"양식 어종에 '말라카이트그린'이라는 발암물질이 있다지만 그래도 뭐 괜찮겠지. 자주 먹는 건 아니니까" 이런 생각이 장어를 먹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심시켜 주었다. 그런데 모방송사 소비자고발프로그램에 눈에 익은 그 집 전경이 스쳐지나갔다. '에그 그 집도 별 수 없구만.' 딱 그 말만 하고 나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러면 그런 거지. 그런데 이 사람 또 장어 타령이다.

"우리 올해 장어 못 먹었지?"
"어이구, 두 번이나 먹었잖아, 아산에서. 우리가 먹고 맛있다고 어머니 오셨을 때 모시고 갔잖아. 정어정식말야. 그 비싼 걸."
"아아,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 기억을 못하지."
"총기를 몽땅 마누라한테 뺏겼나 봐. 도대체 왜 그래. 그리고 그 장어 국내산도 아닌 중국산이라는데 뭘 또 먹어."
"그렇지, 참. 그럼 뭘 먹지. 여기서 두지리까지는 너무 먼 데."


그렇게 고민에 빠졌던 이 남자, 그 마을을 지나쳐 두지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래서 다시 그 집으로 갔다. 1년만이었다. 이 남자 참게를 무척 좋아한다. 비싸다고 내가 엄살을 했는데도 참게장을 꾸역꾸역 사서 들고 올 정도다. 그 집은 옛날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라 그 대형 장어구이 집보다는 좁고 불편하다. 경치도 그렇고. 그래도 맛이 있는 데다 국내산일 거라는 믿음이 우리를 그리로 이끌었다.

메기 매운탕 1인분 12000원, 참게 매운탕 1인분 15000원. 메뉴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 남자 은근히 참게에 미련이 있는지 눈길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종업원이 다른 손님에게 대답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아, 예 메기만 국내산이고, 나머지는 수입산이네요."
 
메기(국내산)와 참게(수입산)를 1인분씩 섞어서 끓인 매운탕...
▲ 매운탕 메기(국내산)와 참게(수입산)를 1인분씩 섞어서 끓인 매운탕...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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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이집 아주 시원시원하네. 메기는 양식이 된다고 들었고, 빠가사리는 양식이 안 돼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참게는 워낙 귀해서 참게 치어를 방류해 어획고가 늘었다고 들었다. 장어야 며칠 전 소비자 고발 프로에 나왔으니 국내산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거고. 

그런데 그럼 참게와 빠가사리까지 수입산! 겨우 양식이 되는 메기만 국내산이구. 어째 시원은 하다만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기껏 중국산 장어 피해서 부랴사랴 달려왔는데.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고...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난 참게를 먹고 싶은데…, 여기 1인분 씩도 되나요?"
"예 그렇게도 해 드려요."
"그럼 참게와 메기를 같이 넣고 끓이나요?"
"네."


참게는 살이 별로 없어 먹기도 불편한데, 굳이 왜 먹겠다는건지. 수입산이라는데…. 못마땅하지만 어쩌겠는가, 먹고 싶다는데. 잠시 후, 매운탕이 나왔다. 이 집의 특이한 점은 양은 냄비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당 주는 그릇도 하얀 멜라민 접시가 아닌 옛날 스테인레스 대접이다. 대파와 미나리만 수북했던 매운탕은 끓으면서 차차 내용물을 드러냈다.
 
참게!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니.. 난 이렇게 묻고 싶었다.
▲ 참게... 참게!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니.. 난 이렇게 묻고 싶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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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냄비라면 납작해서 양이 많아 보일 텐데, 양은 냄비다 보니 우묵 들어간 부분이 보이질 않아 그렇게 양이 많은지 몰랐다. 2인분이었지만 셋이 먹어도 될만큼 양이 많았다. 참게도 노란 알이 꽉 차 있었다. 우리 신랑 처음엔 참게가 한 마리인 줄 알고 노란 참게 알을 내 대접에 놔 주기까지 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다섯마리나 됐다.

그런데 수입산을 당당히 밝혀 시원시원했던 처음과 달리 영 떨쳐 버릴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그것, 찝찝함이었다. 그 느낌이 입안을 뱅뱅 돌아 모르고 먹었던 옛맛을 반감시키고 있었다.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나도 처음 알았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 된다는 말도 있다지만, 알고는 이것 먹으러 일부러 찾아 올 것 같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두지포구 옆이니까, 그 집만 가면 당연히 그곳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해 줄 거라 생각했었다, 잠재적으로. 임진강 옆의 장어집에도 임진강 장어가 아닌 엉뚱한 중국산이듯, 이곳 매운탕 집도 직접 잡은 물고기가 아닌 양식이거나 수입산인 것이다.

의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먹은 생선회나 그 많은 강옆의 매운탕집들, 그리고 유명한 산그늘에 자리잡은 산채전문점까지 의심의 눈초리는 겨눠진다. 그럼 차라리 포구나 강 옆이 아닌 수입산이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곳에 식당을 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건 정말 상식적이지 않은 기대였다. 하루에 한두 번 끓이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매운탕을 날구장창 끓이는데 강에서 어떻게 그 많은 양을 잡아 올리겠는가. 더구나 사시사철 비수기도 없이 끓여대는데. 나는 딱딱해서 살이 잘 발라지지 않는 참게를 내 그릇에 담으면서 문득 그것에게 묻고 싶어졌다.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니', 그리고 새삼 그것의 이력도 궁금해졌다. 어느 나라 강에서 언제 어부에게 잡혀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만일 양식이라면 어디서 알에서 깨어났고 어떤 조건(항생제나 성장호르몬제, 등 약품명을 기입한)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경로(방부제 여부나 교통편)를 거쳐서 왔는지를 말이다.
 
두지나루에 가보니 황포돛배는 멀리 떠나고 이렇게 비어 있었다.
▲ 황포돛배 모형과 두지나루 표석 두지나루에 가보니 황포돛배는 멀리 떠나고 이렇게 비어 있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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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만 묶여서 흔들거리는 나루터. 여기서 물고기가 잡히긴 할까?
▲ 두지나루 빈 배만 묶여서 흔들거리는 나루터. 여기서 물고기가 잡히긴 할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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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 표시제' 정말 요란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부딪치고 보니 궁금증이 더 많아졌다. 수입산, 또는 중국산이라고 말해줘도 명확하게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참게장 노래를 부르던 우리 신랑 밥값만 치르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도 수입산 참게장은 먹고싶지 않았나 보다.  

매운탕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황톳배는 멀리 떠나 아슴하게 눈에 들어왔고, 고기잡이 배는 나루터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난 불편한 진실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13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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