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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먹을거리였던 김. 한때 귀한 식품으로, 수출품으로 사랑받았다.
 겨울철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먹을거리였던 김. 한때 귀한 식품으로, 수출품으로 사랑받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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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가 김(海苔)이다. 김은 1960~70년대만 해도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그 김이 올라온 식탁은 최고의 밥상이었다. '김 한 장이 계란 하나와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가도 높았다. 한때 선물로도 가치가 높아 소비자들에게 인기였다. 수출품목으로도 각광을 받았다.

그 시절 김양식을 하는 지역에선 '개가 1000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부(富)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양식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생산량이 늘어 지금은 누구나 쉽게 김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김의 대량생산은 우리의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김밥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의 인기는 갈수록 시들해졌다. 생산량이 많아 흔해진 탓도 있지만 양식어민들이 잡태를 없애기 위해 양식어장에서 염산을 쓴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부터다. 이러한 행위는 바다를 오염시켜 청정해역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 김 생산자인 어민과 소비자는 물론 다음 세대까지 피해를 입히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행정기관과 어민들이 양식어장에서 염산을 퇴치시키고 유기산으로 대체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이제는 김양식장에서 염산은 사라졌다.

웰빙바람이 불면서 김양식 어장에도 ‘무산(無酸)김’ 바람이 불고 있다. 무산김을 생산하고 있는 한 어민이 김양식어장에서 김을 채취하고 있다.
 웰빙바람이 불면서 김양식 어장에도 ‘무산(無酸)김’ 바람이 불고 있다. 무산김을 생산하고 있는 한 어민이 김양식어장에서 김을 채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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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친환경 농수산물이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김양식 어장에도 웰빙바람이 불어왔다. 저농약·무농약 인증 농산물을 뛰어넘어 유기농산물이 대세를 이루듯이 김양식에도 무기산과 유기산을 넘어 이도저도 넣지 않는 '무산(無酸)김'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맨 앞자리에 장흥 어민들이 섰다. 지난해 5월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회진면 어민들이 김 양식에 유기산을 쓰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또 다짐했다. '무산 김' 양식은 농부가 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유기재배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전국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김생산을 해온 어민들에게 산(酸)은 매력덩어리였다. 김양식장에 산을 쓰면 잡태가 깨끗이 사라질 뿐 아니라 김의 윤기나 색깔도 좋았다. 포자 부착도 잘돼 생산량이 많고 수확시기도 빨라졌다. 반면 산을 쓰지 않을 경우 일손이 많이 간다. 잡태를 없애기 위해 햇볕과 해풍을 이용해야 하고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이물질은 하나씩 손으로 뜯어내야 했다. 생산량도 줄 게 뻔했다.

하지만 어민들의 무산김을 생산키로 한 것은 절박한 생존전략이었다. 내만 어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장흥김의 특성상 파래 등 잡태가 많이 붙어 시장에서 늘 중저가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선 물김으로 팔기도 하지만 장흥에선 물김으로 수매하는 곳도 없었다. 생산 어민들이 직접 가공할 수밖에 없었다.

무산김 생산을 선언한 지역어민들은 "한동안 어렵겠지만, 산을 쓰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김을 다시 찾을 것이고, 또 돈도 될 것"이라며 서로서로를 격려했다. 만약 김양식장에서 산을 쓰다가 적발되면 앞으로 김양식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도 썼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요즘 장흥 바다에선 김 수확이 한창이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앞바다에서 '무산김' 양식 어민이 양식어장을 살피고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앞바다에서 '무산김' 양식 어민이 양식어장을 살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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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무산김 생산이 한창인 장흥군 회진면 대리. 이 마을 어촌계장 김백운(45)씨는 올해 처음 수확한 김 전량을 폐기했다. 산을 쓰지 않고 김을 처음 생산해 본 탓에 햇볕에 노출해야 할 시간을 맞추지 못해 잡태가 많이 섞였기 때문이다. 평생 김을 생산해 온 어민이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상품가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산김 생산 첫해인데, 가장 좋은 상품을 내야하지 않겠냐"는 이유다.

햇볕에 장시간 노출하면 매생이가 생기고, 너무 적게 노출시키면 파래가 생겨난다. 날씨와 온도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습도까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노출시간은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정해야 한다.

작업량이 두 배로 늘어 번거롭지만 이렇게 생산한 김은 산을 사용한 김보다 밀도 있게 자라 김 고유의 맛이 일품이다. 윤기는 없어 보일지라도 맛과 영양은 최고다. 불에 구워도 오그라들지 않는다. 당연히 가격도 일반김에 비해 두 배 가량 높다. 지난해 초보다 속당 2000∼3000원 비싸다.

그동안 가장 큰 걱정이었던 판로 걱정도 덜었다. 유통을 책임질 장흥김주식회사가 설립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엔 어민 85명이 주축이 돼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월 초엔 설립될 전망이다. 이 회사가 설립되면 유통단계를 줄여 어민소득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장흥김의 경쟁력까지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김생산이 이뤄지면서 어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바다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김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김갑섭 전라남도 해양수산환경국장은 "장흥에 이어 올해엔 신안군과 무안군을 대상으로 친환경 김양식어업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어업인들이 힘들여 생산한 만큼 제값을 받아 어민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브랜드 개발과 홍보 등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의 '무산김' 양식어장. 이곳 어민들은 지난해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산김' 생산을 선언하고 양식어장에서 무기산은 물론 유기산까지 추방했다.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의 '무산김' 양식어장. 이곳 어민들은 지난해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산김' 생산을 선언하고 양식어장에서 무기산은 물론 유기산까지 추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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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산김, #김양식, #장흥,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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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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