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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별미인 호박호떡은 그 맛깔스런 향과 듬직한 크기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다.
▲ 호박호떡 겨울철 별미인 호박호떡은 그 맛깔스런 향과 듬직한 크기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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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11일) 오후, 아내랑 목욕나들이를 갔다. 목욕나들이? 그렇다. 도회지와 멀찍이 떨어져 사는 우리 부부에게는 목욕 자체가 바깥나들이다. 이번에 간 곳은 창원북면온천, 마침 휴일이어서 그런지 온천장은 입구부터 붐볐다. 아무리 사는 게 어렵다고 해도 이런 데 와서 만나는 풍경을 보면 불경기가 따로 없다.

목욕탕이 즐비하다. 어느 목욕탕으로 갈까.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쭈뼛쭈뼛 거렸다. 날씨가 추운 탓에 아내는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했다. 그렇지만 이왕에 먼 길 왔으니 좀 더 시설이 나은 곳이 없나 싶어 찾아보았다. 생각 같아선 '원탕'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어렵소! 근데 거의 다 '원탕'이란 상호를 다닥다닥 내걸었다. 요즘 세상 워낙에 '원조'가 대접을 받고 있는 목욕탕도 '원탕'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어렵다지만 불경기가 따로 없는 곳이 있다

그렇게 한 곳을 눈대중으로 정해놓고 보니 추위에 속이 헛헛했다. 어디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만한 게 없을까? 때늦은 점심을 먹은 탓에 가볍게 입가심할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찾은 데가 따끈한 '오뎅 가게'였다.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사거리 어디에나 오뎅 파는 포장가게는 쉽게 눈에 띄었다.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손님들이 오뎅가게로 들이닥쳤다.
▲ 오뎅가게 앞 손님들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손님들이 오뎅가게로 들이닥쳤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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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많은 사람들이 늘어선 곳으로 갔다. 놀랍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오뎅 꼬지 하나씩을 들고서는 덩달아 입이 부지런하다. 훅훅 뜨거운 국물은 식히는 사람들, 갓 구운 호떡을 조심스럽게 베어 무는 사람들까지 역시 먹는 일만큼은 즐겁다. 그게 소시민들이 사는 행복이 아닐까.

"오뎅 하나 얼마에요?"
"오백 원예. 우리 집 오뎅국물은 디포리에다 마른 새우로 우려내서 맑고 시원합니더. 그리고 호떡도 하나 드셔 보이소. 우리 집 호떡은예. 북면 호박을 갈아 넣어서 향기 좋아예. 또 엄청 쫄깃쫄깃합니더. 이만한 호떡 한 개가 오백 원이라예. 춥지예?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잡숴예? 오뎅국물은 아무리 먹어도 공짭니더." 

오뎅하면 어렸을 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 오뎅을 먹는 아이 오뎅하면 어렸을 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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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포리(밴댕이)와 마른새우로 잘 우려낸 국물에 알맞게 부른 오뎅
▲ 오뎅솥 디포리(밴댕이)와 마른새우로 잘 우려낸 국물에 알맞게 부른 오뎅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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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임(47·북면 화천리)씨가 오뎅 하나를 먹으려는 데도 사뭇 반긴다. 크게 대접받는 느낌이다. 바깥에 서서 온종일 일하려면 무척 힘이 들 텐데도 시종일관 아주머니의 표정은 밝고 유달리 친절하다. 그래서 그런지 쭉 늘어선 포장가게 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음식은 손맛이겠지만, 사람을 끄는 데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친절함, 걸쭉한 입심이다. 저 모습이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손님을 끄는 천성적인 친절과 걸쭉한 입심

나는 오뎅을 좋아하다. 그것도 곰삭았게 잘 부른 오뎅이라면 한 자리에서 예닐곱 꼬지는 순식간에 먹는다. 그렇지만 빨갛게 물이든 매운 것으로 단 두 꼬지만 먹었다. 그 이유는 아주머니가 자랑삼아 권하는 호박호떡을 맛보기 위함이었다. 저렇게 몸 사리지 않고 호떡을 굽고 있는데, 달랑 하나도 맛보지 않고 돌아서면 아주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알맞은 크기로 속을 넣어 떼어 놓은 호박호떡
▲ 반죽 떼기 알맞은 크기로 속을 넣어 떼어 놓은 호박호떡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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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잊은 반죽 덩어리를 알맞게 눌러 뒤집어 놓는다.
▲ 눌러주기 설잊은 반죽 덩어리를 알맞게 눌러 뒤집어 놓는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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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 덩어리를 알맞게 눌러 크기를 만들고 뒤집어서 익히면 맛있는 호박호떡이 된다.
▲ 익히기 반죽 덩어리를 알맞게 눌러 크기를 만들고 뒤집어서 익히면 맛있는 호박호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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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지켜보아도 다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이 집 호떡은 그냥 딱딱하고, 금방 굳어버리는 일반호떡이 아니다. 그 비법은 간단했다. 적당하게 숙성된 반죽에다 속을 든든하게 넣고, 알맞게 꾹 눌러주고, 부지런히 뒤집어 주는 부지런한 손놀림 하나였다. 말랑말랑한 호떡 하나에도 그런 부지런함이 알맞게 숙성되어 있었다.

"아주머니, 이 호떡은 일반 호떡과 무엇이 달라요?"
"거야 먹는 사람들이 잘 알지예. 우선 호박호떡은 일반호떡에 비해 뭐라카꼬예. 부드럽고, 호떡이 크지예. 그라고 입 안에서 호박향이 솔솔 난다카데예. 그래서 입소문이 좀 났지예. 덕분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아입니꺼."

"다른 집은 다 그냥 일반호떡을 파는데 아주머니만 특별히 호박호떡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지야 그런 것 모릅니더. 시어머니가 호떡범벅을 무척 좋아하시는 데, 해 드리려고 준비해 놓고, 일 나올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그만 호떡 재료와 섞어 버린 거라예. 그래서 낭패 났다 싶었지예. 어쩔 수 있습니꺼. 눈에 보이는 호박 건더기만 대충 걷어내고 가지고 와서 호떡을 구웠지예. 손님들한테 참 미안했심니더. 눈치가 보여갔꼬예. 그런데 말이지예. 그날 호떡을 먹어본 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지예."

잘 익은 호박호떡은 기다리는 손님에게로 간다
▲ 호박호떡 잘 익은 호박호떡은 기다리는 손님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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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호떡은 먹기 좋게 일회용 종이컵에 따로 넣어준다.
▲ 호떡하나 뜨거운 호떡은 먹기 좋게 일회용 종이컵에 따로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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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발명품들은 우연의 소산인 게 너무 많다. 그냥 반짝하는 아이디어로, 그냥 실수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냄비나 주전자 커피 포터 수증기 구멍을 바로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호박호떡은 실수의 소산일망정 말랑말랑한 그 손맛이 보통이 아니다. 따뜻한 정성과 훈훈한 인정이 듬뿍 묻어 있다.

따뜻한 정성과 훈훈한 인정이 듬뿍 묻어 있는 호박호떡

겨울 하면 으레 생각나는 게 붕어빵과 오뎅, 그리고 호떡이다. 대개 이들은 한 곳에서 만난다. 일반적으로 붕어빵과 오뎅을 찰떡궁합이고, 오뎅과 호떡은 그런대로 때깔이 좋아 보이나, 붕어빵과 호떡은 그다지 좋은 만남은 아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계절 별미로 찾아오는 이들이 있기에 이 겨울 혹한 속에서도 서민들의 마음이 한결 미덥고 따뜻해지는 게 아닐까.

갖은 재료로 우려낸 국물에 오뎅이 팔팔 끓고 있다.
▲ 오뎅솥 갖은 재료로 우려낸 국물에 오뎅이 팔팔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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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워진 호박호떡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 잘구워진 호떡 잘 구워진 호박호떡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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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별미, 호떡.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가 조선에 육군 3000여 명을 파견, 이때 청나라 상인 40명도 같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후 청나라가 망하고 한국에 남아있던 상인들이 생계를 위해 만두와 호떡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즉, 한국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 자장면처럼 생계를 위해 만들어서 팔던 음식이다.

그런데 왜 호떡이라고 했을까? 호떡의 '호(胡)'란 지난날, 중국에서 북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로,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다. 조선은 우리나라를 침입한 청나라를 비하하여 그 전쟁의 이름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나 정묘호란(丁卯胡亂)이라고 하기도 했다.

왜 호떡이라고 했을까?

또 '호'란 중국을 뜻하는 말로, 중국에서 온 밀을 '호밀(胡밀)'이라고 했고, 박씨전, 임경업전 등에서 보면 중국의 군인을 '호병(胡兵)'이라고 했다. 즉, 호떡이란 '중국인이 만든 떡' 또는 '중국의 떡'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호빵'이란 낱말은 중국과 관계없다고 한다. 그것은 '따끈따끈하므로 호호 불면서 먹는 빵'이란 뜻으로 1970년대 초 모 제과회사에서 만든 브랜드 이름일 뿐이다.

한참을 구워냈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호박호떡 가게
▲ 호떡사게 손님들 한참을 구워냈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호박호떡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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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현듯 궁금한 게 또 하나 떠올랐다. 다 같은 밀가루 음식인데, 호두과자는 과자고, 건빵은 빵이고, 호떡은 떡이며, 붕어빵은 빵인 이유는 뭘까? 빵은 재료에 발효제(이스트)를 넣어서 반죽을 만든 다음, 발효를 시켜 부피도 크게 하고 맛도 좋게 것으로, 식빵, 단팥빵, 바게트 등이 있고, 과자는 재료로 베이킹파우더(일명BP)라고 하는 재료가 들어가서 제품의 부피를 팽창시키고 맛을 좋게 하는데, 카스텔라, 쿠키, 케이크 등이 있다.

그런데 호두과자, 건빵, 호떡, 붕어빵 등은 딱히 그 이유를 찾기보다는 고유명사 정도로 이해하시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도 난 호떡보다는 오뎅을 더 즐겨 먹는다.


태그:#호박호떡, #오뎅, #붕어빵, #겨울철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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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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