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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심각한 경기침체에 접어든 2008년 한해가 저물고 2009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2009년 경제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올해는 물론이고 향후 수년간 장기 불황의 나락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올해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점치기도 한다.

이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2009년 대변동기의 굵직한 경제 쟁점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국민의 삶을 바꾸어갈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네르바' 박씨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미네르바' 박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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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해 12월 29일 박아무개씨가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달러 매수금지 긴급 명령 공문을 정부가 보냈다"는 글을 올리자 달러 매수세가 급등해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추가로 20억 달러를 지출해야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미네르바가 끼친 손실을 구체적인 금액으로 그럴 듯하게 계산해 발표한 것이다.

강 장관의 외환 손실은?

이 계산법의 사실 여부는 일단 덮어두자.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강만수 장관 경제팀이 지난해 환율관리를 잘못해 미친 외환 손실액은 없는가. 지난해 초 우리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 2008년 12월 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2012억20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한 해에 약 600억달러가 축난 셈이다.

한국은행 추산으로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가 45억 달러이므로 이를 감안하고,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어간 부분을 제하더라도 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2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미국과 체결한 300억 달러통화스와프 자금을 지난 연말 세 차례에 걸쳐 104억 달러를 인출해 그나마 외환보유고 2000억달러 수준에 턱걸이를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외환보유고 수준은 그 밑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물론 인출된 통화스와프 자금은 올 봄에 이자를 붙여 되갚아야할 돈이다.

그렇다면 강만수 장관은 사실상 7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축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더구나 지난해 키코(KIKO)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손실금액이 3조원을 넘는데 이에 대한 책임 역시 강 장관이 피해갈 수 있는가. 검찰이 기왕에 미네르바가 끼친 외환손실액을 계산했으니, 정부의 정책적 오류가 빚어낸 손실을 계산해 보는 것은 어떤가.

한국 금융위기는 자유화·개방화 때문

일개 익명의 인터넷 논객이 환율불안을 심하게 조장해 지난해 말부터 한국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오도하는 검찰과 정부 당국의 사고구조는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신년 초부터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금융위기가 일개 인터넷 논객으로 인해 발생하지 않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금융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째서 원·달러 환율이 이미 부도난 아이슬란드 크로나화 다음으로 크게 폭등해 한미 통화스와프까지 체결하게 된 것일까.

주가가 반토막 난 상황에서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손해를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가 방어에 쏟아 붓는 지경이 되었는가. 무슨 이유로 10조원 채권안정펀드와 20조 원 은행자금확충펀드를 긴급히 조성해 금융기관 살리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나.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대외채무 불이행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방어할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대기업 중복 과잉투자로 인한 부실화가 대형 은행 부실화로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말하자면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했고, 이를 구실로 국제 금융자본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국가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에서는 미국 금융위기와 같은 양상이 재현되지도 않았다.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의 고리를 타고 광범위한 금융위기로 번져갔던 것이 미국 금융위기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한참 추락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의 부실도 커지고 있지만, 이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금융위기로 번져 나가지는 않고 있다.

물론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와 자본시장 통합법이 실시되고 헤지펀드와 파생상품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면, 충분히 미국판 금융위기가 재현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 정책들이 실행되기 전에 금융위기가 터진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해 한국 외환시장은 환율 급등락으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사진은 서울 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룸.
 지난해 한국 외환시장은 환율 급등락으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사진은 서울 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룸.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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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이 재현되지 않았고, 미국판 금융위기도 없었음에도 세계적으로 금융충격이 가장 크게 발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가 요구한 '금융 자유화·개방화' 덕분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의 외환시장은 완전히 자유화되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제한은 사라졌으며 은행은 민영화되고 외국인 소유로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한국에 들어왔던 외국 금융자본은 본국의 유동성 부족이 극심해지자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신속히 회수하기 시작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50조 원 이상의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주가는 대폭락했고, 주식매도 자금을 달러로 바꾸어 송금하면서 달러부족과 환율폭등에 시달린다.

여기에 외국의 환투기 세력과 주식시장의 공매도 공세로 위기는 더 증폭된다. 단기 해외차입을 급격히 늘린 은행들은 해외자금 차입이 불가능해지면서 달러 유동성 부족에 빠진다. 외국은행들처럼 수익성 경쟁을 해온 은행들의 과잉 대출이 늘어나고, 대출자금 마련을 위해 CD나 은행채와 같은 시장성 수신을 늘린 결과 원화 유동성마저 부족해진다.

이들 요인이 지난해 9월 이후 총체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외환시장·주식시장·채권시장·대출시장이 마비되었고, 그 충격으로 자금조달 통로가 막힌 기업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판 금융위기의 실체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며 IMF의 요구를 받아 한국 금융시장에 도입한 자유화·개방화가 바로 10년 만에 다시 한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에 가장 취약한 동유럽 국가들도 이른바 경제자유지수가 가장 많이 오른 국가들로 분류된 것을 보아도 입증된다. 지난 13일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표한 '2009 세계 경제자유지수(IEF: Index of Economic Freedom)'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그루지야·보스니아·몰도바·리투아니아·루마니아 등이 경제자유지수가 20포인트 이상 상승한 나라들이다. 한결같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들이다.

'금융허브 선배' 아이슬란드 파산에서 배워야 해

이처럼 한국의 금융위기는 주택담보대출 부실이나 이를 기초자산으로 설계된 각종 파생금융상품 부실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개방과 자유화의 후과였다. 한국과 같은 이유로 경제 전체가 파탄난 사례가 다름 아닌 아이슬란드이다.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4141달러로 세계 3위(한국 24위)를 기록한 유럽의 강소국이자, 유엔의 설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되기도 한 인구 31만 명의 작은 섬나라가 아이슬란드이다. 이랬던 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정점이던 2008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가경제가 무너져 IMF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몰락한 이유는 바로 금융의 자유화, 개방화 때문이었다.

수산업으로 먹고살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금융자유화를 추진하고 은행을 민영화했다. 그러자 아이슬란드의 고금리를 쫓아 전 세계 금융자본이 몰려들어 외국자본으로 넘쳐났다. 수산업 중심의 낙후한 경제가 졸지에 세계 금융허브로 변신하게 되었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온 자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고 고급 자동차를 사는 등 이른바 부채로 과잉소비를 시작하며 '번영(?)'을 누리게 된다.

짧은 번영을 누린 뒤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국자본은 일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아이슬란드 경제는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이 나라 통화인 크로나화는 1년 만에 무려 82.7%나 폭락했고, 5000포인트를 넘던 주가는 800선으로 주저앉았으며 1% 남짓하던 실업률은 6%까지 치솟았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더미 위에 앉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이슬란드 위기는 금융자유화에 따른 은행의 과잉성장과 그것을 제어할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금융허브의 꿈은 악몽으로 끝났다. 그 대가는 비싸다"(<경향신문> 2008년 11월 26일자)고 자조한 아이슬란드 국립대 교수의 발언은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문제였다.

결국 민영화되었던 은행은 줄줄이 다시 국유화되고 외환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또 다른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실직 위기에 몰린 은행원보다 당장 가족들 배를 채워줄 수 있는 피자가 낫다"는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었다. 기나긴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국민들은 연초부터 경제를 망가뜨린 정부에 대한 시위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아이슬란드가 IMF 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한 <뉴욕타임즈>
 아이슬란드가 IMF 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한 <뉴욕타임즈>
ⓒ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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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구속? 외부 금융충격 제어할 장치마련이 시급

"지금 세계의 금융시스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정비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금융산업이 자율규제를 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규제자본주의만이 해법이다."

진보적 학자나 정치가가 한 발언이 아니다. 보수 우익으로 정평이 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진단하며 한 말이다. 2009년의 글로벌스탠더드는 적어도 '금융규제'로 방향을 선회할 거라는 얘기다. 규제의 폭과 강도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규제는 세계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 거론되는 규제는 주로 대내적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나 파생상품과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 또는 이를 국제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하는 규제에 국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가, 제3세계 국가에서 정작 중요한 규제는 대내적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의 규제 차원을 넘어서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에 대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우리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유화, 개방화된 한국 금융시장의 위험성은 하다못해 보수적인 기업연구소들 조차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와 같은 금융시장 개방이 신흥시장 국가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므로 일정한 조건하에 국제 자본이동을 규제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함을 설파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LG경제연구원, "2009년 국내외 금융시장 전망", 2008.12.31)는 완곡한 지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9년 1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 규제에 대한 어떤 논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도, 그리고 은행에 대한 규제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금산분리 완화나 자본시장 통합법과 같은 규제완화가 진행되고 있고 헤지펀드 허용 등이 예고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규제를 이야기하고는 있다. 미네르바와 같은 온라인 논객에 대한 규제와 사이버 공간에 대한 규제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차제에 강만수 경제팀은 일찍이 금융허브의 유럽판 선구자였던 아이슬란드를 직접 방문해 보고 자본시장 통합법을 밀어붙일지 여부를 재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올라푸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 내외가 신년 초에 경제를 망가뜨린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 몇몇을 대통령궁으로 초대해 커피를 대접했다고 해 화제가 되었다. 커피 대접은 고사하고 경제위기를 고발한 미네르바를 구속까지 해대는 정부에게서 우리 국민은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이 썼습니다.



태그:#금융자유화, #미네르바,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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