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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영웅' 일지매가 6개월 만에 다시 안방극장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7월 이준기 주연으로SBS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누렸던 <일지매>에 이어 오는 21일부터 MBC가 같은 캐릭터를 모델을 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제목부터가 <돌아온 일지매>, 마치 속편 같은 인상을 주지만, 엄연히 두 작품은 전혀 별개의 시리즈다.

 

불과 6개월 만에 같은 소재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은, <돌아온 일지매>가 넘어야할 가장 큰 부담이다. 분명히 다른 이야기임에도  전작의 완성도와 비교되며 '아류작'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인데다, 한번 흥행한 소재라 할지라도 대중적으로 다시 통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1993년 장동건의 <일지매>, 2008년 이준기의 <일지매>

 

SBS <일지매>와 MBC <돌아온 일지매>는 모두 조선 시대에 활약한 의적 '일지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지만, 스토리 전개와 캐릭터 묘사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에 가깝던 <일지매>와 달리, <돌아온 일지매>는 1975년부터 2년간 스포츠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우영 화백의 '원작 만화'를 기초로 전개되는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일지매>는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과 함께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의적이자 토종 영웅 캐릭터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이러한 토종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대거 늘어났다.

 

KBS에서 지난해 <쾌도 홍길동>과 <최강칠우>를 선보였으며, SBS도 지난해 <일지매>를 통해 신세대 취향으로 재해석한 토종 영웅들을 선보였다.

 

<일지매>가 다른 토종영웅 캐릭터와 다른 점이라면 어떤 집단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지 않고 홀로 움직이는 개인주의형 영웅이라는 점이다. 고우영 화백의 원작에서 <일지매>는, 당시 기존의 마초적이고 남성적 영웅상과는 전혀 다르게, 여성스러운 외모를 갖춘 꽃미남으로 묘사되어 있다.

 

힘이나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들지도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의 개념이 분명하고 집단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기존 영웅에게서는 볼 수 없는 다중적인 요소가 일지매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MBC는 지난 1993년 이미 <일지매> 시리즈를 한 차례 제작한 바 있다. 주인공인 일지매 역은 톱스타 장동건이 맡았다. 당시 드라마는 어두운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일지매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봉건적 질서의 붕괴를 꿈꾸는 반정 세력과 기득권 세력 간의 대결을 다뤘다. 여기서 일지매는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의적'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급진적인 혁명가 내지는 테러리스트에 가깝다.

 

사실 1993년작 <일지매>는 당시 보기 드문 '괴작'으로 꼽힌다. 밝고 희망적인 영웅상을 그려내던 당시의 추세와 비교했을 때,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데다 후일 친부를 살해하는 멍에까지 짊어지게 되는 일지매의 비극적인 캐릭터는, 영웅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어둡고 음울했다. 일지매의 활약상 역시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통쾌한 활극의 카타르시스보다는 등장인물들 간 꼬이고 꼬인 사연들에 집중하며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난해한 스토리였다.

 

결국 이야기는 반정세력이 모두 관군에 전멸당한 뒤, 복수심에 눈이 먼 일지매가 조정의 탐관오리이던 친부를 살해하게 되고 그 멍에로 인하여 세상을 떠나 은둔하게 되는, 다소 엉뚱한 결말로 마감했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서구형 미남에 가깝던 장동건의 사극 연기도 지금 보면 예능 프로그램의 굴욕 자료화면으로나 어울릴 만큼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

 

최근의 토종 영웅들을 내세운 사극은, 과거의 진중하고 모범적인 영웅상을 벗어나 스스로의 욕망과 자기표현에 충실한 개인주의적인 캐릭터를 내세우는데 중점을 둔다. 거창한 시대적 화두보다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는 주인공들은 고전적인 영웅이라기보다 시대를 앞서가는 반항아나 신세대 젊은이의 이미지에 가깝다.

 

15년 만에 부활한 2008년만 SBS <일지매>는 달라진 시대상만큼이나 가볍고 경쾌해진 토종 영웅으로서의 일지매를 그려냈다. 이준기의 일지매는 인조와 기득권 양반계층으로 대표되는 악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지만, 신분질서의 모순이나 시대적 부조리 같은 거창한 화두에 깊숙이 발을 담그기보다는 뒤틀린 세상에 저항하는 일지매의 자유분방한 활극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2009년 정일우의 <일지매>

 

고우영 화백의 원작을 34년 만에 부활시킨 <돌아온 일지매> 역시 일지매의 영웅적 활약상 못지않게 인간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1993년판보다는 경쾌하고, 2008년보다는 진중해질 새로운 일지매는 봉건사회의 억압된 현실에 저항하는 영웅이면서도, 내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는 고독한 인물이기도 했다.

 

<궁> 등에서 유려한 영상미를 선보였던 황인뢰 PD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는 점은 <돌아온 일지매>가 내세울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황인뢰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보다 섬세한 캐릭터 구축과, 감정 선이 살아있는 아기자기한 멜로드라마에 있다. <궁>에 이어 또 한번 만화 원작 작품을 드라마화한데 이어, 정일우라는 신인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 사전제작기간 확보로 이야기 구성과 영상미에 충분한 공을 들일 수 있었다는 점 등도, '황인뢰판 일지매'에 기대를 걸게 하는 원인.

 

일지매를 연기하게 될 정일우는 SBS판의 이준기와는 또 다른 토종 영웅을 어떻게 창조해낼까. 이준기의 경우, <일지매>를 연기하기 이전부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스타급이었던 것과 달리,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하여 갓 주목받기 시작한 정일우는 이 작품이 첫 단독 주연작이며 첫 사극 도전이기도 하다.

 

당초 주연으로 내정되었던 이승기가 하차하면서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 정일우는 이준기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던 일지매에게서 자신만의 특성를 입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일우의 일지매는 어릴 적 청나라로 입양된 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친부모의 소식을 접한 후 고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는 인물.

 

꽃미남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자유분방한 반항아 이미지가 묻어나던 이준기와는 달리 귀공자 이미지를 간직한 정일우의 일지매 연기에 관심이 끌리는 이유다.

 

<돌아온 일지매>는 원작의 스토리와 감수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차별화에 나설 전망이다. 볼거리와 오락 요소가 강화된 신세대 취향의 '퓨전 사극'에 가깝던 SBS판에 비하여, MBC판 일지매가 고우영 화백의 원작이 지니고 있는 사회 풍자와 해학 요소를 얼마나 현대적 감각에 맞게 녹여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태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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