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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거리는 어디일까? 바다가 보이는 자갈치 시장일까, 아니면 영화의 거리 남포동일까, 탁 트인 수평선이 보이는 해운대 해수욕장일까. 사실 부산은 어느 곳을 찾아도 바다가 가까이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가장 부산 사람들의 인정과 부산의 삶이 묻어나는 거리는 중앙동의 뒷골목 거리가 아닐까. 그 옛날의 집과 건물들은 상전벽해처럼 변했지만, 6. 25 전쟁 당시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사십계단 문화관과 오래된 적산가옥과 낡은 건물들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옛골목길이 드물게 남아 있다.
 
아주 옛날은 사십계단이 있는 계단 밑까지,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다고 한다. 피난민들은 '경상도 아가씨'의 노래비의 가사처럼 이곳에 앉아 실향의 그리움을 달래었다고 한다.
 

 
이따금 이 거리에 바람처럼 찾아오면 문득 어려웠던 보릿고개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아쉬운 것이 없는 지금이지만, 몹시 가난했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던 어린 시절의 가난한 행복이 그립기만한 것이다. 정말 무엇 하나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한 인심을 동네마다 감꽃냄새처럼 풍기고 다니면 티밥 장수 아저씨랑 주름진 얼굴의 엿장수 아저씨 얼굴도 선하게 눈 앞을 그리움처럼 지나간다.
 
우리나라의 6. 25 전쟁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분명히 있다. 우스개 소리지만, "6. 25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아버지가 어린 자식에게 이야기하니, 전쟁이 무엇인지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없는 자식은, "아버지,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그랬어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6. 25 전쟁은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전쟁의 아픔과 뼈에 사무친 이산의 고통 등이 있다. 사십계단은 당시 피난민들의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이기도 했다.
 

 
만약 6. 25 전쟁이 없었다면, 부산은 어떤 도시가 되어 있었을까. 한국동란으로 수도임시정부가 옮겨와 있었고, 중앙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피난민으로 내려와, 부산문화의 튼튼한 뿌리 구실을 했다.
 
피난민들의 애환이 깃든 중앙동에는, 예술문화인들이 자주 들락이는 아지트 같은 술집과 음식점 그리고 인쇄소와 출판사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인쇗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부산의 명물 40계단 층층대는, 이명세 영화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없다> 영화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빛 바랜 사진처럼 거리 한 가운데서 티밥을 튀기는 뻥 튀기 아저씨와 아이들의 동심을 표현한 조각상과 물동이를 이고 사십 계단을 올라가는 흑백사진과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자상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지게를 지고 내게로 걸어오는 듯하다.
 
'40계단 문화관광 테마 거리'는 현재에는 부산역과 제법 거리가 있지만, 당시는 바로 근방에 부산역사가 있었다. 피난민 열차에서 물밀듯이 쏟아진 실향민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멍하니 갈매기 우는 바다를 내려다 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40 계단. 나도 무거운 피난보따리 같은 마음을 내려 놓으니, 어디선가 손풍금에 맞추어 부르는 옛노래가 들려온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가려나

 

<경상도 아가씨> 중


태그:#거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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