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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부가 나 업고 간다고 했어요!”

 

갑작스럽게 결정된 산행, 아침밥을 먹고 산행준비를 마친 뒤 이제 막 현관문을 나서며 어린 막둥이 조카가 말한다. 다들 시댁에서 설을 쇠고 함께 모인 날 저녁, 저녁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밤늦도록 놀다가 사정상 못 가는 사람 빼고 남은 사람들은 등산을 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도 함께 가볍게 갈 수 있는 산이 어딜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남편과 함께 갔던 천태산으로 정했다.

 

"고모부가 나 업고 간다고 했어요!"

 

바로 밑에 여동생과 남편과 나, 그리고 올케와 어린 조카들 셋이서 천태산으로 갈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결혼 후 신혼 때 몇 번 산행을 해 본 뒤로 아이들 키우면서 오랫동안 한 번도 등산을 못 해봤다는 올케는 많이 설레는 듯 하다. 남동생 부부는 아이가 셋이다. 큰 딸 서연이가 11살, 둘째 도현이는 올 봄에 초등학교 입학하는 8살, 막내 재롱둥이 지혜는 5살이다.

 

총명한데다 구김 없이 밝은지 아침햇살보다 더 투명한 미소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막내는 만날 때마다 밝아서 신기할 정도다. 재롱둥이 지혜는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지 꽤 오래되었다. 지혜를 만날 때마다 잘 놀아주어서 그런지 지혜는 친구처럼 달라붙어 같이 놀자고 손을 이끌면 남편은 또 그만큼의 아이처럼 함께 점토놀이도 하고 숨바꼭질, 토끼와 거북이 놀이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놀아준다.

 

지혜와 남편이 짝짜꿍이 되어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남편은 지혜와 똑같은 어린 아이 같다. 하여튼 지혜는 고모부가 있는 동안 계속 고모부를 쌈 싸먹듯 주물럭거리며 신나게 잘도 논다. 지난밤에도 늦게까지 찹쌀떡처럼 붙어 놀던 지혜는 함께 산으로 간다고 하니 외출한다는 기쁨에 신이 나 있다. 고모부가 업어준다거나 안고 간다는 말 한 적도 없건만 당연한 듯 확신에 차 있다. 고모부는 자기를 업고, 안고 가리라는 흔들림 없는 믿음과 확신에 차서 의기양양해서 말한 것이다.

 

맑은 피부에 발그레한 볼, 늘 밝은 웃음으로 또박또박 말도 예쁘게 하는 천진함과 사랑스런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지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지혜의 맑음과 웃음이 절로 전염된다. 올케는 막내 지혜의 말을 듣고는 고모부가 힘들까봐 미리 선수를 친다. "고모부가 한 번은 업어줄 수 있어도 두 번은 안돼! 지혜가 걸어가야 돼요!" 하고 말해보지만 그런 말에 마음 흔들릴 지혜가 아니다.

 

고모부가 오로지 자기편이란 지혜의 확신을 흔들 순 없다. “아니에요. 고모부가 업어 줄 거예요!” 우린 모두 펑~하고 터지는 팝콘처럼 웃음 가득 터뜨리며 예정에 없었던 깜짝 산행을 간다. 어린 조카들은 차 안에서도 가만있지 못하고 종달새처럼 끊임없이 얘기한다. 공기라도 얼어붙게 만들던 설 연휴 강추위는 많이 풀렸고, 날은 화창하고 하늘은 구름 없이 시리도록 푸르다.

 

10년 만에 등산하는 올케와 생애 첫 산행인 조카들

 

차를 타고 달리는 시간이 좀 길어지자 아이들은 빨리 내리고 싶어 해 살살 달래가며 산으로 간다. 늘 조용하게 남편과 단둘이서 등산하면서 느끼는 호젓함을 미루고 어린 조카들과 여럿이서 함께 가니 새삼스런 시끌벅적함에 적응이 안 되기도 하지만, 또 여럿이 함께하는 즐거움이 새롭다. 우리 자매들은 올케라 잘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어 올케한테 친근감을 표시하곤 한다.

 

올케는 산을 좋아해 처녀시절 여러 번 산행도 했지만 결혼 후 신혼 때를 빼곤 아이들 키우느라 이번 산행은 10년 만이라 한다. 올케한테 산행의 즐거움을 되살려 줄 수 있어 좋고, 어린 조카들에게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보람이 있어 또한 즐겁지 않은가. 11살, 8살, 5살의 어린 조카들에겐 생애 최초의 산행이 된 역사적인 날이다. 동생에겐 또 산에 오르는 기쁨을 안겨 줄 수 있어 이래저래 좋은 날이다.

 

서창을 지나 양산을 거쳐 삼랑진을 지난다. 삼랑진역을 지나 안촌마을을 스쳐간다. 꼬불꼬불 산간도로를 달린다. 점점 경사가 높아지고 산중턱까지 이어진 산간도로 아래 산이 품고 있는 아늑한 작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삼랑진양수발전소에서 50미터도 채 안가서 안태호가 나온다. 양수발전소는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진 두 댐으로 이루어져 낮은 곳에서는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렸다가 필요할 때 이 물로 발전하는 방식을 말한다.

 

삼랑진 양수발전소는 하부댐인 안태호와 상부댐인 천태호로 이루어져 있다. 우린 차에서 잠시 내려 안태호를 구경한다. 아이들도 올케도 동생도 모두 좋아한다. 안태호 넓고 깊은 호수에 푸른 하늘이 내려앉아 있다. 오랜 만에 나온 여동생도, 올케와 조카들도 상쾌한 바람과 정오의 햇살 아래서 산 중턱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탄성을 내지른다.

 

아이들은 호수를 바라보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야호! 하고 외친다. 모두들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표정이다. 올케 영이는, “딱 10년만이네요. 오랜만에 나오니까 정말 좋아요. 산에 갈 땐 같이 가줘요!”하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등산을 해야겠어요!” 이젠 천태호로 간다. 천태호는 안태호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천태호 옆 천태공원에 차를 세우고 천태호를 돌아본다. 천태호 물빛 또한 쪽물을 들인 듯 짙푸르다. 눈에도 가슴에도 온 몸에도 쪽빛 물이 들 것 같다. 조카들도 신이 나 있다. 천태호는 해발 500미터 지점인 7부 능선과 계곡에 위치한 산정호수다. 안태호를 옆에 끼고 돌아 천태호로 오르는 산간도로는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어 드라이브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태호를 둘러본 뒤 다시 천태공원으로 와서 산행준비를 하고 천태산 등산로로 접어든다. 오늘은 아이들에겐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산을 하게 된 날인데다 천태산은 이 아이들에게 첫 산행지가 된다. 마른낙엽이 수북이 깔린 흙길 따라 아이들 손을 잡을 잡고 둘이서, 혹은 혼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다.

 

막내둥이 5살 조카 지혜는 고모부 손을 붙잡고 몇 걸음 걷는 시늉을 하더니 금방 두 팔을 높이 쳐들고 고개를 들어 고모부를 보고 ‘힘들어요!’하며 안아달란다. 남편은 등에는 등산배낭을 매고 앞에는 지혜를 안고 걷는다. 제법 무거울 텐데도 싫은 기색 없이 즐거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남편, 산행하다 지칠까봐 나는 내려놓으라 해도 괜찮다며 낑낑대며 걷는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걷던 남편은 지혜를 내려놓으며 걸어가자고 구슬리고 지혜는 조금 걷는 시늉을 한다. 조금만 비탈진 곳을 보아도 조카의 눈에는 아주 벼랑 끝처럼 위태로워 보이나 보다. 주춤하며 선다. 낙엽을 밟으며 주의를 환기시켜보지만 약발이 먹히질 않을 때가 더 많다. 걷다가 안고 가다가 하면서 제법 오르락내리락 천태산 정상이 나올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조카들은 등산화를 신지 않아 자주 미끄러질 뻔 해 조심스럽게 걷는다. 첫째 서연이는 제 엄마 손을 붙잡고 힘들다 내색 않고 조용히 걷는다. 둘째 도현이는 내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아이, 힘들어~’ 한다. “도현이 힘들어?” 하고 물었더니, “아니오, 결코 포기하지 않을거에요!” 자신한테 다짐하듯 결의에 찬 말 한마디 던지더니 이젠 아예 내 손을 놓고 혼자 앞서 걸어간다. 엄마와 누나, 고모부와 고모를 제치고 맨 선두로 가 앞장서 걷는다.

 

“도현아, 천천히 가! 혼자 가다가 길 잃는다.”

 

“안 잃어버려요. 리본 있잖아요!” 한다.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산행리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도 기특해서 올케한테 도현이가 한 말을 해 줬더니 올케는 “어? 그건 서연이가 가장 잘 쓰는 서연이 전용 멘트예요!” 하고 말한다.

 

“그래? 역시 그 누나에 그 동생이네!” 나는 남편 옆에 가서 지혜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걷는다. 산길을 걸으며 철늦은 도토리를 발견하고 줍기도 하고, 둥글레도 찾기도 하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서 즐겁게 걷는다. 지혜는 조금만 비탈진 곳을 만나도 무서움을 탄다. 그때마다 남편은 덥석 안아서 안고 낑낑대며 걷는다. 무겁고 힘들어도 남편은 지혜의 재롱에 푹~빠진 지 옛날 옛적 일이라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다.

 

보는 내가 무거워보여서 나는 조카를 내려놓고 손잡고 걷기를 시도하면서 가다 쉬다 가다 쉬다 하면서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새 천태산 정상에 다다랐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천태산 정상에 오른 기쁨에 탄성을 내지른다. 천태산(631미터)는 낙동강을 끼고 있어 산세가 수려한데다 산정호수 천태호 내려다보고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천태산 정상에서는 낙동강과 삼랑진 양수발전소댐과 배내골 등이 조망된다.

 

천태산 정상 바로 밑에 천태호가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다. 큰조카 서연이는 ‘엄마, 나 오늘 등산한 걸 집에 가서 동시 지을래요!’하고 말하자 둘째 도현이도 등 달아서 똑같이 말한다. ‘엄마, 나 오늘 천태산 동시 지을래요!’ 한다. 10년 만에 처음 산에 올라 본 올케는 천태산 정상까지 올라와서 짧은 시간만 있다가 내려가면 항상 후회가 된다면서 정상에 오른 감회를 오래 감상했으면 한다.

 

천태산 등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땀 흘리며 올라온 천태산 정상, 땀이 식고 시간이 지나면서 찬 공기가 이젠 예민하게 와 닿는다. 점점 추워지기 시작해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간식을 먹고 일어선다. 하산 길은 좀 수월하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만날 때마다 막내조카는 주춤하며 업히려 한다. 몇 번을 업고 걷던 나는 무거워서 힘든 나머지 ‘지혜야~ 고모가 좀 힘들거든’ 하면서 같이 걷기를 권해보려고 시도해볼라치면 지혜는 '안~힘들~다!'하면서 웃음을 터드린다.

 

또다시 ‘지혜야 고모~’하고 말을 시작하자마다 ‘안~힘들~다!’ 말하며 까르르 웃는다. 우린 그냥 웃을 수밖에. 얼마쯤 내려오면서 다시 걷도록 유도하고 미끄러운 곳에서는 ‘와우~미끄럼~틀’하면서 즐거운 시늉을 하자 이젠 일부러 길에 미끄러지는 시늉을 하며 손잡고 신나게 걷는다. 남편과 나는 지혜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붕 띄웠다 내려놓았다하면서 비행기를 태우니 까르르 웃으며 지혜는 즐거워한다.

 

하산 시간은 등산할 때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다. ‘야~애들과 함께 가도 어른 등산시간이나 별 다를 게 없네‘하며 남편은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등산을 한 뒤 모두들 배가 고픈 모양이다. 천태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가스버너에 큰 냄비를 올리고 라면을 끓인다. 아이들은 배가 많이 고픈 듯 라면 솥 옆에 바짝 다가가 앉는다.

 

얼마나 배가 고플까. 우리가 올랐던 지리산보다 아이들에겐 더 길고 높은 고난도의 산행이었을 것이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먹는 라면 맛은 그 어느 때보다 맛있다. 차가운 공기 속에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라면을 먹는 풍경, 보기만 해도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에너지 넘치는 어린 조카들은 피곤한 줄 모른다.

 

올 때와는 달리 국도를 타고 삼랑진 고갯길을 넘어 원동을 지나 화제에서 물금, 물금에서 양산으로 오는 길을 택해 간다. 해가 진다. 그럼 그렇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야!’하면서 씩씩하게 산에 올랐던 도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고른숨을 내쉬며 깊은 잠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들 때까지 남편과 나의 대화 주제는 오늘 산행이야기다.

 

귀염둥이 조카들의 사랑스런 모습과 웃음소리가 눈에 보이는 듯 귀에 들리는 듯 하다. 10년 만에 산행해 본다는 올케와 생애 최초의 등산을 한 어린조카들,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어서 뿌듯하고, 그리고 산행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동생과 함께 한 천태산 등반… 재롱둥이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봐야겠다.

 

천태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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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산행수첩

 

1. 일시:2009년 1월 27일

2. 산행기점: 경남 양산시 천태공원

3. 진행:양산IC-삼랑진IC-삼랑진읍-삼랑진양수발전소-안태호-천태공원(오후1:15)-천태산 정상(2:35)-하산(2:55)-천태공원(3:40)


태그:#천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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