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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가 지나가니 매서웠던 추위도 살그머니 물러났습니다. 한없이 내리던 눈도 멈추고 한가득 쌓였던 새하얀 눈덩이도, 오후의 겨울 햇살에 녹아 음지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봄이 왔다고 말하기에는 성급하겠지만, 설날과 어제, 오늘은 봄날씨처럼 포근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가족들이 모두 돌아간 뒤 설날 연휴의 마지막날인 어제 오전에 아랫밭에 나가셨습니다. 농부에게 연휴나 휴가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일을 해야 하고 땅을 일궈야 하기 때문입니다.

 

암튼 지난 20일 고추씨 싹을 틔워놓은 것이 자라서, 그동안 고추모종을 재배해 온 아랫밭 비닐하우스의 밭을 갈아 플라스틱 모판에 흙을 얇게 깔고 떡잎과 뿌리가 난 고추씨를 뿌려놓고 상토로 덮어두었습니다. 반나절 그렇게 일하고 돌아오셔서는, 외갓집에서 돌아온 어린조카의 재롱과 장난에 어울려 나머지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살금살금 봄이 오는 날 고추씨를 뿌렸다 하시길래, 점심을 훌쩍 넘겨 도서관으로 가던 길에 아랫밭을 둘러봤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니 호젓한 들녘에는 놀란 까치와 산비둘기 무리가 날아오르며 논밭의 주인을 자처하고 있었고, 눈부신 햇빛이 내리쬐는 논둑길에서는 초록빛 싹들도 검불속에 숨어있는게 보였습니다. 비닐하우스와 논과 밭 그리고 마을 뒤로는 눈이 녹아 짙은 겨울빛으로 잠들어 있는 계양산도 보였습니다. 짧은 해는 찬찬히 서쪽바다로 게걸음질 치고 있었고, 오랜만에 찾은 아랫밭은 예전의 생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슴이 짠하게 비닐하우스 2동의 비닐이 군데군데 찢겨 나가 있었고 녹슨 뼈대가 세찬 겨울바람을 맞고 있었고, 하우스 앞에 심어놓은 포도나무와 대추나무도 앙상한 줄기를 흔들어대며 선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고추씨를 뿌려놓은 하우스에 들어가니 갑자기 밀려든 뜨거운 열기에 안경 렌즈는 한증막에 들어온 듯이 뿌옇게 변해 한참동안 눈을 치켜뜨고 주변을 둘러봐야 했습니다. 뜨거운 열기와 습기는 비닐에 알알이 맑은 이슬을 맺혀 놓았고, 꼬챙이를 꽂아 반달 모양의 길쭉한 비닐로 덮은 고추씨를 뿌려놓은 판도 그러했습니다.

 

 

 

 

 

후레지아 한 단 한 단을 묶기 위해 겨울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고추씨가 뿌려진 희뿌연 비닐하우스를 둘러보다 보니 옛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부모님과 가족들은 겨울철에 꽃재배를 했었습니다. 마을 대부분이 겨울에는 후레지아를 비닐하우스에 재배해서는 새벽에 서울 깡으로 내보냈습니다. 봄.여름에는 톱밥을 넣은 나무상자(나중에는 플라스틱 상자로)에 일일이 꽃씨를 골라 차곡차곡 넣어 냉동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가을쯤 그러니까 추수를 하기 전에 하우스에 줄간격을 맞춰 꽃씨를 또 일일이 심어두면 그것이 겨우내 자라나게 됩니다.

 

그 때 아침 저녁으로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꽃씨를 심은 비닐하우스의 거적과 비닐을 아침에는 열어주고 저녁에는 닫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가을철 벼베기를 끝낸 뒤 집으로 가져온 짚단을 톱니로 "착착착" 물어버리는 이름 모를 기계로 하얀 비닐 실로 엮어 두툼하게 만든 거적을, 일일이 하우스 뼈대에 매달아 그것을 손으로 힘주어 잡아댕겨 덮었다 작대기로 뒤로 넘겼다를 반복해야 했었습니다. 짚으로 거적을 엮는 일도 손이 많이가서 여러 사람이 매달려야 했고, 거적을 제 때 열고 닫지 않으면 꽃이 뜨거운 열기에 늘어지거나 추위에 얼어붙어 무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집단 거적 대신 그물망 같은 검은 비닐망 속에 솜이 들어간 솜 거적을 덮어서 거적덮는 일이 수월해졌지만 농삿일이 다 그렇듯이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94년도까지 꽃재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벼농사처럼 꽃농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고 부모님 두 분이서 꽃농사를 계속하는게 쉽지 않아 접고 말았습니다.

 

아참 겨울 저녁에는 오전 오후에 부모님이 사우나와 같은 뜨겁고(어머니는 하우스 안의 열기 때문에 두통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일명 하우스병) 비좁은 하우스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가위로 잘라온 후레지아 꽃줄기와 잎사귀를 깡에 내보내기 위해 포장하는 일을 온 가족이 매달렸습니다. 저나 동생도 고사리 손으로 그 일손을 도와드렸고요. 그래서 겨울밤에는 일찍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꽃 한 단 한 단을 묶어내기 위해 꽃대 수를 10~15개씩 세어 놓고(할머니와 저와 동생의 일.) 그것을 잎사귀를 감싸서 끈으로 묶어내는 일이 그리 만만찮아서 꽃이 많을 때는 새벽까지 해야했습니다. 그렇게 새벽까지 후레지아를 한 단씩 묶어 100개 씩 한 묶음의 꽃짐으로 만들어 물을 채운 고무대야에 넣어두었다가 깡으로 떠나는 용달 트럭에 싣기 위해 아버지는 몇 시간도 채 주무시지 못하고 대문을 나서야 했습니다. 어머니도 그 때까지 주무시지 못하고 꽃짐을 떠나 보낸 뒤에야 꽃 부스러기와 지푸라기가 나뒹구는 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아침이 오기전까지 잠시 눈을 부치셨습니다. 그 때 동생과 저는 할머니와 함께 건너방에서 꽃짐을 만드는 안방 한편에서 지쳐 잠들곤 했습니다.

 

샛노란 짙은 후레지아의 향기처럼 떠오른 20년 전의 일들이, 봄을 기다리는 고추씨를 뿌린 밭에 고스란히 뿌리내리고 있는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과 밭을 떠날 수도 없고 떠나도 다시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연어가 다시 거친 물살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그곳을 찾아가듯이.

 

그런데 현 정부와 인천시는 각종 규제완화 특히 부동산규제 완화와 무분별한 개발사업을 통해 황당한 경제살리기(삽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린벨트와 군사시설보호구역까지 해제해 부동산투기와 난개발을 조장하고 있어서, 지금 밟고 있는 이 땅과 밭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걱정스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추씨, #비닐하우스, #밭, #땅, #후리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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